기로에 선 서남표식 학사개혁 이렇게 끝나나

김소정 기자 (bright@dailian.co.kr)

입력 2011.04.08 18:49  수정

´세계 최고 대학´ 목표로 개혁드라이브, 학생 잇단 자살로 급제동

침묵하던 카이스트 교수들 “학생들 자괴감 준 총장 책임져야”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생 4명이 연이어 자살하는 사태를 몰고온 8일 이들의 자살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 서남표 총장의 학사개혁에 대해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거세다.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않던 카이스트 교수들 사이에서도 서 총장의 일방통행식 학사 정책에 대한 비난이 제기되면서 개혁정책 계속 추진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때 개혁과 혁신을 내세운 서 총장의 영향력은 교육·과학·산업 등 전 분야로 확산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서 총장의 대표적인 학사개혁 정책이 결국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비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날 카이스트의 한 보직 교수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학점에 따라 돈을 내는 것이 어떻게 보면 타당성이 있어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 학생들이 갖는 부담감은 컸다”며 “전체 학생 중 40% 정도가 최소한 60만원 정도를 내면서 개인의 경제 사정과 상관없이 자괴감을 느껴왔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울증이나 우울증을 앓는 학생들은 당연히 자살을 생각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교수들이 반대할 채널을 만들어주지 않는 서 총장의 독선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일 인천의 한 KAIST 휴학생이 올들어 네번째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KAIST가 개교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가운데 서남표 총장이 긴급 기자간담회장에서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사실 카이스트에서 서 총장의 학사개혁이 시작될 당시부터 총학생회의 건의나 교수들의 반대의견이 있어왔다는 것. 그러나 서 총장의 교수들의 의견을 필터링할 수 있는 채널을 모두 폐지한 채 인사권부터 학칙까지 독단적으로 처리해왔다는 비판이 있다.

국적이 미국인 서 총장은 18살 때 미국으로 유학가 메사추세츠 공대(MIT), 카네기멜론대 등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해외파 학자다. 그는 메사추세츠 공대에서 교편을 잡아 학과장까지 역임하고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공학담당 부총재로 지내는 등 명성이 높았다.

서 총장은 2006년 7월 카이스트의 총장으로 취임한 뒤 ‘세계 최고의 대학’을 목표로 학사 개혁을 밀어붙였다. 강의 평가가 나쁜 교수는 강의에서 제외시켰고, 연구 실적이 좋은 교수는 더 많은 보너스를 받았다. 정년보장 심사에서 신청 교수의 43%가 탈락해 파란을 몰고 오기도 했다.

학생들에 대한 변화도 컸다. 모든 강의가 영어로 이뤄졌고, 과학영재 육성 취지로 전액 국비로 면제됐던 등록금도 선별적으로 납부하게 되었다. 학점이 3.0 이하면 최고 1500만원까지 성적에 따라 등록금을 내도록 한 ‘차등 등록금제’의 도입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극한 경쟁 시스템 도입은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 많은 반발을 낳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서 총장은 자신의 구상을 밀어붙이는 저돌성을 발휘해왔고, 이제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 사태로 인해 그 성과를 논할 기회까지 잃어버렸다.

서 총장은 연임 초기인 지난해 7월에도 “기존 제도 등이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는 데 부족하기에 개혁하는 것이다. 반대의견을 귀담아듣겠지만, 목표를 바꿀 수는 없다”며 완고한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이제 서 총장의 징벌적 등록금제 폐지 선언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총학생회는 이날 오후 7시부터 서 총장과 난상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학생들은 서 총장의 또 다른 개혁 정책의 하나인 ‘전과목 100% 영어 수업’마저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는 △차등등록금을 적용하되 수준 조절 △재수강 개수제한 폐지 △엄격한 부·복수 전공신청 및 유예기간 제공 △전 과목 영어강의 폐지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 등의 요구가 나왔다.

한편, 지난 3월 새롭게 꾸려진 카이스트 교수협의회에서도 이번 사태와 관련한 대책 마련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카이스트 학생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세금을 내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라는 서 총장의 성과 지상주의가 기로에 선 것은 분명해보인다.[데일리안 = 김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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