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캅이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타격가가 된 배경에는 명품 ´하이 킥(High Kick)´의 영향이 컸다.
누구보다도 강하고 누구나 우러러보는 초인이 되고 싶었던 한 남자가 있었다. ´불꽃 하이킥´ 미르코 크로캅(37·크로아티아) 이야기다.
크로캅은 고국 크로아티아에 닥친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죽어가는 것을 본 후 "강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철칙을 가슴에 새기고 오직 전진만을 거듭해왔다. 강직한 성격만큼 거센 시련이 종종 그를 덮쳤지만 언제나 당당하게 맞섰다.
물론, 현재의 그는 반쪽 파이터라는 비아냥거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노쇠화 탓에 전성기의 화려함을 되찾기도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이런 현실 때문인지 그는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팬들은 그가 완벽한 선수여서 전폭적인 사랑을 보낸 게 아니다. 자신의 꿈을 향해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뜨거운 열정과 집념이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기 때문이다.
종합무대 접수한 ´명품 하이킥´
미르코 크로캅(37·크로아티아)은 K-1에서 활약하던 정통입식 타격가다. 끈적끈적하게 달라붙거나 가까운 거리에서 난타전을 벌이는 것이 아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날렵한 스텝으로 치고 빠지다가 기회다 싶으면 결정타를 날리는 ´저격수형 아웃파이터´다.
어쩌면 종합무대의 그래플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뿌리부터 입식타격가의 피가 흐르는 선수라 할 수도 있다. 때문에 스타일만 놓고 보면 그가 MMA에서 성공했다는 사실에 많은 팬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크로캅은 레이 세포(40·뉴질랜드)-마크 헌트(37·뉴질랜드) 같은 맷집좋고 힘 좋은 인파이터가 아닌 상대적으로 깔끔한 타격전을 선호한다.
최대한 상대와 엉키지 않고 거리를 두는 스타일은 종합무대에서도 여전했지만 공격패턴에서는 상당한 변화를 줬다. 각종 컴비네이션 등 다양한 공격무기를 고르게 사용하는 대신 묵직하게 한방씩 꽂아 넣는 형태로 화력을 재점검했다. 그래플링이 좋지 못한 스트라이커가 MMA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변신이었다.
크로캅의 수비는 철저히 그래플러 위주로 만들어졌다. K-1에서도 정상급으로 인정받았던 타격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그에게 어차피 종합무대의 타격가들은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했다. 넘어지지만 않는다면 누구도 크로캅을 스탠딩에서 당해낼 수 없었다.
크로캅은 자신만의 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상대의 태클을 스텝으로 흘리거나 힘으로 뿌리치는 형태로 막아냈다. 그리고 스트레이트나 어퍼컷으로 카운터를 먹였고 상대가 충격을 받고 주춤하다싶은 순간에는 벼락같이 들어가 경기를 끝냈다.
뭐니 뭐니 해도 크로캅이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타격가가 된 배경에는 명품 ´하이 킥(High Kick)´의 영향이 컸다. 하이킥은 다른 기술에 비해 준비동작과 유연성, 테크닉 등 부수적인 요소가 많이 필요해 쉽게 구사할 수 있는 공격기술은 아니다. 더욱이 상대의 방어에 막혀 제대로 공격이 들어가지 않을 경우, 반격의 위험이 크다는 부담도 있다.
하지만 크로캅은 누구보다도 빠르고 정확하게 하이킥을 찰 수 있었다. 무사의 ´발도(拔刀)´를 연상시키듯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상대를 강타하던 그의 하이킥은 ´스쳐도 KO´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무수한 선수들을 넉아웃 시킨 바 있다.
전형적인 ´사우스포(southpaw)´의 특성상 그의 무기는 대부분 왼쪽에 집중돼 있다.
물론 아무리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무기라도 맞추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크로캅은 이른바 상대를 속이는 ´타이밍´을 통해 하이킥의 적중률을 높였다. 하이킥보다 파괴력은 적지만 정확성이나 안정감은 더 높은 미들킥으로 끊임없이 상대를 괴롭힌 후 주의가 분산됐다 싶은 순간에 결정타를 날리는 것이다.
대부분은 원거리에서 예리하게 파고드는 묵직한 미들킥의 위력 앞에 상당한 충격을 받기 쉽지만, 이때쯤 크로캅은 천천히 하이킥 타이밍을 잡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통을 참지 못한 상대가 또다시 미들킥이 들어온다고 여기고 몸통을 방어하려 가드를 내리는 순간 하이킥을 폭발시킨다.
때로는 미들킥에 로우킥을 병행하기도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준비사격을 생략한 채 바로 하이킥을 터뜨릴 때도 있다. 주로 상대가 충격을 받고 어정쩡하게 뒤로 물러서는 타이밍에서 이런 공격이 시도된다.
킥 자세가 전체적으로 비슷해 상대 입장에서는 하단-중단-상단 중 어느 쪽으로 공격이 날아올지 예측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북방의 최종병기´ 이고르 보브찬친, ´도끼살인마´ 반더레이 실바 등 KO를 허용했던 상대들은 하나같이 다른 쪽에 신경을 쓰다가 하이킥에 얻어맞았다.
어찌 보면 굉장히 단순한 타격패턴이다. 펀치나 킥을 내는 스타일등이 딱 정해져있는 것은 물론 매 경기 바뀌지도 않았다. 더욱이 전형적인 ´사우스포(southpaw)´의 특성상 그의 무기는 대부분 왼쪽에 집중돼 있다. 이 같은 스타일은 스피드와 운동신경이 현격하게 줄어든 지금까지도 변화가 없다.
크로캅의 이런 스타일은 일찌감치 간파됐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전성기엔 워낙 빠르고 강력해 상대들이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의 그와 맞섰던 상대들은 타격전을 시도해볼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어지간한 그래플러들조차 자신감을 가지고 스탠딩에서 맞불을 놓는 실정이다. 크로캅은 이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해볼 만한 상대로 바뀐 셈이다. 과연 크로캅에게 부활의 기회는 열려 있을까.[데일리안 스포츠 =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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