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 그는 누구인가

입력 2005.06.20 17:24  수정 2005.06.20 17:27

"나는 아무데나 좌판펴고 팔릴만한 물건파는 사람"

무역회사 출신으로 ´대중소설가´자처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이원호씨가 건네는 자신의 명함에는 ‘소설가 이원호’라는 검은 글씨 앞에 ‘大衆(대중)’이란 한자가 파란 색으로 눈에 띄게 다른 글자보다 큰 글씨체로 박혀 있다. 명함의 주인이 마치 “나 이원호는 소설가 중에서도 ‘대중’소설가요”하고 소리를 지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한번 펴면 끝까지 눈을 뗄수 없는 재미있는 소설 써

이씨는 대중소설가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순수’ 문학가들을 존중하고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처럼 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다.

그는 스스로를 좌판에서 잡다한 물건을 파는 노점상에 비유한다. “등단 과정이나 문단의 추천을 받은 ‘정통’ 문학가들이 정식으로 번듯한 점포를 열고 전문화된 품목을 판매하는 사람들이라면, 대중소설가란 아무데서나 좌판을 펴고 팔릴 만한 물건이면 아무거나 파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의 소설 역시 잡다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은 재미있다. 재미는 소설의 제1 전제 조건이다. 많은 독자들은 “이원호의 소설은 일단 펴면 접을 때까지 눈을 뗄 수 없다”고 말한다.

기업소설·조폭소설·정치소설에서 SF, 만화, 시나리오까지 다뤄

그런 이씨가 그동안 다룬 작품은 기업소설을 비롯, 조폭소설 정치소설 연애소설 역사소설 등 다양하다. 또 최근에는 SF소설에도 손을 댔고 심지어는 만화와 시나리오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좌판을 벌이면서 소비자들이 찾지 않는 상품을 내놨다간 장사는 그 날로 끝이다. 그래서 항상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고 대중이 흥미 있게 생각할 소재를 찾는다. 이씨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가 구사하는 문체도 여느 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짧은 대화체, 간결한 심리 및 상황 묘사를 통해 사건을 빠르게 전개시킨다. 하나의 사건이 끝나면 숨쉴 틈 없이 또다른 사건이 일어나는 식으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따라서 독자들은 그의 작품을 한번 펼치면 빠른 속도로 마지막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된다.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는 문화일보 연재소설 ´강안 남자´의 조철봉이 그렇듯이 그가 소설에서 그리는 주인공들은 거의 남성적 환타지를 자극하는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들이다.

남성적 환타지 자극하는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주인공

그의 소설은 대부분 강력한 육체적 힘을 가진 주인공이 어려움을 지혜와 용기로 물리치고서 결국에는 부와 사랑을 손에 넣게 된다는 해피엔딩으로 그려진다. 주인공은 겉으로는 독사같이 냉혹하지만 내면에는 따뜻한 감성과 촉촉한 눈물을 간직한 인물이다. 도박이면 도박, 암투면 암투 모든 싸움에서 주인공은 반드시 이긴다.

이는 복잡한 사회에서 날로 왜소해져 가는 현대의 독자들에게 상상으로만 생각했던 대리체험을 하게 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한다는 이씨의 의도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서민들이 꿈과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 독자들이 얼핏 동화같은(?)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은 실은 모두 자신의 진한 체험에서 모티브를 찾은 것들이다. 이씨는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무역업을 하면서 세계 곳곳을 누볐다. 무역회사 사원으로, 또 경영자로 활약하며 세계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 부대낀 경험은 그가 쓰는 작품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샐러리맨 기업가 외판원 사기꾼 깡패 등 수많은 인간군상도 모두 진한 경험의 소산이다. 1년에 10권 가까운 소설을 쓰고 그동안 쓴 책이 27종 140여권이나 되는데도 소재의 빈곤을 느껴본 적이 한번도 없는 이유도 그가 겪은 경험의 폭의 워낙 넓기 때문이다.

20여년의 무역업 경험이 큰 재산, 마흔다섯 돼서야 소설쓰기 시작

1947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출생한 그는 전주고와 전북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했다. 아버지는 시골 초등학교 교장이었고 어머니는 신문기자이자 수필가였다. 대학 재학 중에 대학생문예작품 공모에서 두 번이나 당선되기도 하는 등 그럭저럭 글재주는 있었지만 소설가가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수더분한 외모에다 덜렁대는 성격으로 봐서 이씨는 소설가 타입은 아니다. 터프하고 두주불사다. 친구들도 “너같은 놈이 어떻게 소설가가 됐느냐”며 놀라워 한다. 하지만 그는 “내가 원래 사기성이 있지 않느냐”는 대중 소설가다운(?) 대답으로 응수한다.

그는 마흔다섯살이 돼서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백양메리야스라는 회사의 무역부장으로 잘나가던 이씨는 지난 1986년 예상치 않은 실수로 회사에 큰 손해를 입힌 뒤 퇴사해 그 해 아예 ‘경제무역’이라는 의류 무역회사를 차렸다. 몇 년동안 직원이 120명이나 됐고 해외지점도 냈다. 공장도 두 개나 될 정도로 사업은 잘 됐다. 그렇지만 1990년 8월 걸프전이 터지며 거래선의 80%가 넘는 중동으로의 무역길이 봉쇄되고 말았다. 컨테이너 300개 분량의 물건이 쓰레기더미가 됐고 돈이 뻔히 보이는데도 주워 담지를 못하는 상황이었다.

사업 실패 뒤 수배자로 도망다니며 쓴 소설이 대박

결국 그해 10월 부도가 났다. 당좌수표 발행액만 10억원이 넘었다. 부정수표단속법으로 수배자가 돼 1년동안 도망을 다녀야 했다. 공장과 땅 등 전 재산도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렸다. 자살을 생각하던 그는 도망자 신세이던 1991년 말 ‘자서전이나 내고 인생을 끝내자’는 생각으로 꼬박 한달간 자전적 소설을 썼다. ‘도시의 남자’라는 제목에서 ‘할증여행’으로 이름이 바뀐 이 소설이 결과적으로 오늘의 ‘소설가 이원호’를 있게 만든 계기가 됐다.

그는 이 소설을 인세를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별 생각없이 한 출판사에 건넸다. 그렇지만 이 소설이 제법 반응이 좋아 “재미있더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다른 출판사에서 다른 작품을 한번 써보자는 작품요청이 들어왔다.

“내가 쓴 소설도 읽는 사람이 다 있구나”하는 마음에서 3개월만에 써내려간 작품이 조폭 소설인 ‘밤의 대통령’. 이 책은 250만부가 팔리며 단숨에 대박을 터뜨렸다. 그러나 하필이면 이때 형사에게 붙잡혀 서울 영등포의 유치장에서 보름을 보냈다. 출판사는 유치장에 수감 중인 대박 작가의 일을 처리해 주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4억원 정도의 ‘빚잔치’를 한 끝에 1992년 8월 그는 유치장에서 풀려나왔다.

이후 그는 기업 소설 ‘황제의 길’을 내 또 대박을 터뜨렸다. 이때부터 소설을 내는 족족 대박이 이어졌고 그는 ‘대박 소설가’로 확실한 자리를 굳혔다. 그동안 700여만권의 책이 팔려나갔다. 돈도 많이 벌었다. 밀리온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이씨는 “남들은 내가 100억원쯤 벌었을 거라고 하더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이씨는 낙천적이다. 그러나 꼼곰하다. 분당 400~500타를 치는 컴퓨터 실력임에도 원고는 꼭 펜으로 쓴다. 오자가 나오면 펜으로 지익 그어버리지 않고 일일이 화이트물감으로 덧칠을 한다.하루 15시간 정도 글을 쓰면서 원고지 70장을 메우는 게 기본이다. 일주일에 하루는 꼭 술을 마시지만 술마셨을 때는 절대 글을 쓰지 않는다. 글을 쓸 때엔 손을 씻고 의자에 단정히 앉는다. 손톱도 가지런히 정리한다. 나름대로의 ‘의관정제’인 셈이다.

쓰는 책마다 베스트셀러, 700만권 팔려나간 밀리언셀러 작가

"무역도 오더가 끊기면 그 틈새를 다른 상품이 비집고 들어간다. 소설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오더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영원히 퇴장당한다. 그래서 난 쉴 새 없이 쓴다" 무역업에 종사하던 옛날이나, 유명한 소설가가 된 지금이나 이씨는 ´리피트 오더´를 따기 위해 늘 쫓기는 심정으로 산다.

죽을 때까지 대중 소설가로 남고 싶다는 그는 그래서 오늘도 ´대중소설´을 쓰며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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