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2년 새 10% 넘게 올라…데이터센터 규제 표심으로
개발 제한안 잇단 통과…전력망 확충 비용도 사업자 부담 강화
삼성·SK하이닉스 수요 변수…효성·HD현대일렉 수주 영향 주목
지난 9월 16일(현지 시간) 미 미주리주 제퍼슨시티 미주리주 의사당에서 앞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집회를 준비하며 구호가 적힌 팻말 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퍼슨시티=AP/뉴시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미국 가정의 전기요금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불만이 중간선거 표심으로 이어졌다.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발전소와 송전망을 확충하면서 그 비용을 일반 가정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데이터센터 건설을 제한하는 주민투표가 통과됐고, 전력 공급 비용을 사업자에게 더 부담시키려는 움직임도 구체화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에 힘입어 성장해 온 국내 반도체·전력기기 업계에도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5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미국 가정용 전기요금은 2024년 이후 전국적으로 10% 이상 올랐다. 오하이오주에서는 상승률이 20%를 웃돌았다. 전기요금 상승에는 연료비와 전력망 유지·보수 비용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지만, 데이터센터의 급증하는 전력 소비도 추가적인 요금 인상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 같은 불만은 지난 3일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도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후보들은 전기요금 동결과 데이터센터 개발 제한, 대규모 전력 사용자에 대한 비용 부담 강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광고 분석업체 애드임팩트에 따르면 이번 중간선거 본선에서 데이터센터 관련 광고에 투입된 금액은 1억7300만 달러(약2324억원)에 달했다.
선거 결과에서도 데이터센터 규제 요구가 확인됐다. 텍사스주에서는 신규 데이터센터 개발의 일시 중단을 주장한 민주당 지나 이노호사 후보가 공화당 소속 그레그 애벗 현 주지사를 꺾고 당선됐다. 오하이오주에서도 데이터센터 규제 강화를 지지하는 민주당 에이미 액턴 후보가 주지사에 당선됐다.
지역 주민투표에서는 규제 요구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오하이오주 선버리에서는 대형 데이터센터 건설 금지안이 잠정 집계 기준 78.64%의 찬성률로 통과됐다. 트렌턴에서도 찬성률이 79.68%에 달했다. 현지 매체 더 블레이드에 따르면 대형 데이터센터 건설 금지안을 표결에 부친 오하이오주 10개 지역 모두에서 관련 조치가 가결됐다.
다만 데이터센터에 대한 반감이 미국 전역의 건설 중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방 차원의 전면 금지보다는 주정부와 지방정부가 개발 허가를 제한하거나 전력 공급 비용을 사업자에게 더 부담시키는 방식이 현실적인 규제 수단으로 꼽힌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AI·데이터센터는 중단이 아닌 비용·지연·입지 재편"이라고 분석했다. 데이터센터 건설 자체가 중단되기보다는 전력 공급 비용이 늘어나면서 착공이 늦어지거나 전기요금 부담이 적은 지역으로 투자처가 옮겨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6 데이터센터 코리아에서 관람객들이 전력인프라 설비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전력 공급 비용을 둘러싼 규제도 구체화하고 있다. 플로리다주 공공서비스위원회(PSC)는 지난 3일 듀크에너지 플로리다가 제출한 대규모 전력 사용자 대상 요금제를 만장일치로 부결했다. 데이터센터 등 대형 전력 사용자가 전력 공급에 필요한 비용을 충분히 부담하도록 한 주법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플로리다주는 올해 제정한 법률을 통해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전력 사용자의 전력망 연결과 발전·송전설비 확충 비용이 기존 소비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사업이 중단되거나 전력 사용량이 예상보다 적더라도 관련 비용을 일반 가정이 떠안지 않도록 하려는 취지다. 이에 듀크에너지는 기존 요금제를 그대로 시행할 수 없게 됐다.
앞서 플로리다 파워앤드라이트(FPL)도 대형 데이터센터 고객에게 신규 발전설비와 변전소 구축 비용을 부담시키는 요금 구조를 마련했다. 장기계약과 최소 사용요금을 통해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할 위험을 줄이는 방식이다.
이 같은 규제 움직임은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변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대형 기술기업들의 AI 투자 확대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 수요가 늘면서 수혜를 보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센터 사업자의 전력망 구축 비용이 늘어나 건설 일정이 늦춰지면 AI 서버 도입과 반도체 수요 증가세도 둔화할 수 있다.
다만 규제 강화가 곧바로 반도체 주문 감소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대형 기술기업들이 규제가 덜한 지역으로 투자처를 옮기거나 기존 데이터센터의 연산 성능을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력기기 업계 역시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 여부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사업이 지연되면 변압기와 차단기 등 관련 설비 발주도 밀릴 수 있어서다. 반면 사업자가 전력망 확충 비용을 직접 부담하더라도 투자를 이어간다면 전력기기 수요는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은 미국 데이터센터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지난 9월 미국 대형 기술기업 2곳으로부터 총 3865억원 규모의 초고압 변압기를 수주했다. 미국 남부와 북부 지역에 새로 건설되는 AI 데이터센터에 각각 765킬로볼트(kV)와 345kV급 변압기를 공급하는 계약이다. 데이터센터 관련 전력설비 사업 확대를 위한 전담 조직도 신설했다.
HD현대일렉트릭도 북미 시장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회사는 최근 3분기 실적발표에서 북미 대형 기술기업을 중심으로 전력변압기와 배전기기를 함께 공급하는 장기 계약이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AI 데이터센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청주 배전캠퍼스에 1980억원을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조연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전력 인프라 투자 지속의 핵심은 기존 고객들의 전기요금 인상 부담이 없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데이터센터 사업자가 전력망 확충 비용을 직접 부담하면 일반 가정의 전기요금 인상 부담을 줄이면서도 전력설비 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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