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업무 지원엔 사전 승인 절차
계열사 대출·공동 자금관리도 보안협정 적용
오스탈USA 인수 땐 기밀접근 요건 변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 필리조선소 전경. ⓒ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미국 방산 자회사 한화디펜스USA(HDUSA)가 한국 계열사와 업무 지원을 주고받을 때 회사 정부보안위원회(GSC)와 미 국방방첩보안국(DCSA)의 사전 승인 절차를 거치도록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열사 간 대출과 공동 자금관리에도 보안협정에 따른 통제 절차를 명시하고, 보안인가를 받은 직원은 한국을 비롯한 해외 출장 전후 보안책임자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한국 본사와 미국 자회사 사이에 인력과 기술뿐 아니라 업무 지원과 자금 흐름까지 관리하는 '보안 방화벽'이 마련된 셈이다. 3일 HDUSA의 현지 채용공고와 공개자료를 종합한 결과다.
HDUSA의 보안 담당 부사장 채용공고에는 회사와 계열사 사이의 모든 업무 지원을 감독하고 정부보안위원회와 DCSA의 사전 승인을 확보하는 일이 명시돼 있다. 기술통제계획(TCP)과 전자통신계획(ECP), 방문 절차를 운영하는 것도 주요 업무다. 인수합병이나 신규 자회사 설립 또는 외국인 지배구조 변경에 따른 보안 영향을 검토하는 것도 이 자리의 몫이다.
조선부문 재무이사 공고에는 자금거래에 관한 구체적인 통제 요건이 담겼다. 재무이사는 미국 법인과 한국 계열사 사이의 거래와 용역계약 및 비용 흐름을 통제·보고해야 한다. 계열사 간 자금 지원과 대출 및 자금 공동관리(캐시풀링)도 보안협정에 맞춰 운영하도록 했다. 공고는 이 조직을 '방화벽이 쳐진 법인'이라고 표현했다.
기술과 인력 교류에도 별도 절차가 적용된다. 탄약사업 계약관리자 공고에 따르면 모회사나 계열사와 거래할 때 통신·방문·기술 통제 규정을 지켜야 한다. 한국 본사와 기술이전이나 인력 지원 계약을 맺을 때도 보안 요건을 준수해야 한다. 아칸소주 파인블러프 탄약사업장의 사무관리자 공고에는 한국을 포함한 해외 출장 전후 보고 절차가 명시돼 있다.
이처럼 보안 총괄, 조선 재무, 탄약 계약, 현장 사무 등 서로 다른 조직의 채용공고에서 한국 본사와 미국 법인 사이의 통제 절차가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다만 채용공고만으로 개별 거래의 승인 여부까지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계열사 간 모든 자금거래에 DCSA의 개별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는 의미도 아니다.
이 같은 통제체계는 HDUSA가 미국 국방부와 맺은 특별보안협정(SSA)에 따른 것이다. HDUSA는 앞서 미국 재무부에 제출한 서한에서 SSA 체결과 DCSA 감독 사실을 밝혔다. SSA는 외국 기업이 미국 군사기밀을 다루는 회사를 소유하되 기밀 접근은 제한하는 장치다. 독일 라인메탈과 에어버스의 미국 방산법인도 이 협정 아래 국방부 사업을 하고 있다.
외국 본사는 미국 자회사 경영에 참여할 수 있지만 기밀정보와 통제 대상 기술에는 허가 없이 접근할 수 없다. 회사 정부보안위원회가 이를 감독한다. HDUSA도 한국 본사와 독립된 시설·전산망을 쓰고 고위 임원을 모두 미국 시민권자로 둔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9월 21일 미국 파인 블러프 아스널(PBA) 사무소 개소식에 이부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왼쪽에서 2번째)와 마이클 쿨터 HDUSA 법인장(오른쪽에서 2번째), 세라 허커비 샌더스 아칸소 주지사(오른쪽에서 4번째) 등 관계자들이 테이프 커팅식을 진행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보안체계의 중요성은 한화의 미국 조선사업 확대와 맞물려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 축적한 기술과 인력을 미국 사업에 활용하면서도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보안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화시스템은 미국 종속회사가 가진 필리조선소 지분 60%를 한화디펜스USA 쉽빌딩(Hanwha Defense USA Shipbuilding, LLC)에 넘기는 거래를 추진하고 있다. 지분을 넘겨받는 법인은 HDUSA와 한화퓨처프루프가 참여한 합작법인이다. 지분 처분 예정일은 당초 10월 31일에서 12월 7일로 미뤄졌다.
앞서 확인한 재무이사 채용공고도 이 조선사업 조직에 관한 것이다. HDUSA는 조선사업 보안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DCSA를 상대할 보안이사 채용공고도 냈다. 다만 필리조선소가 지분 이전과 동시에 기존 협정의 적용을 받는지, 별도 절차가 필요한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HDUSA는 최근 미 해군의 선박건조관리자인 토트서비스로부터 필리조선소에서 미 해군·해병대용 중형상륙함(LSM) 1척을 건조하는 2억6900만 달러 규모 사업의 건조사로 선정됐다. 추가 3척의 옵션도 포함돼 있다. 한화가 미국 현지 조선소를 통해 미 해군 함정 신조사업을 수주한 첫 사례다.
한화가 인수를 추진하는 오스탈USA도 보안협정이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 미 해군 핵잠수함 모듈을 만드는 이 회사는 호주 모회사 아래 자체 SSA를 운영해 왔다. 오스탈은 지난달 한화와 거래 계약서 협의 단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SSA 기업이 일급비밀이나 핵 관련 정보 등 특정 고급 기밀에 접근하려면 원칙적으로 별도의 국가이익결정(NID)을 받아야 한다. 호주와 영국 등 미국의 국가기술산업기반(NTIB) 회원국에 모회사를 둔 기업은 일정 요건 아래 이 승인을 면제받는다. 한국은 NTIB 회원국이 아니다. 호주 기업 소유일 때 인정될 수 있는 면제가 한국 기업으로 소유주가 바뀌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오스탈USA가 현재 이 면제를 적용받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한화 인수 이후 추가 보안 요건이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화의 인수 조건에는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와 DCSA의 승인이 포함돼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보안 방화벽은 한국 본사와의 협력을 끊기보다 미국 군사기밀을 보호하면서 한국의 기술과 자본을 들여오기 위한 통로에 가깝다"면서 "한화의 미국 사업이 커질수록 이 통로를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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