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레이’ 이어 ‘라파엘’ 개봉 예고…AI 기술로 대사 보완에서 장편 영상 제작까지
제작 중에도 바뀌는 도구…인물·서사 일관성과 비용·일정 관리 과제
연기·배경 나눠 수정하는 기술도…생성 이후 창작자의 연출이 완성도 좌우
영화 속 대사와 배경을 보완하던 인공지능(AI)이 장편 영화 전체의 영상 제작에까지 쓰이고 있다. 활용 방식이 다양해진 만큼 영화계의 논의도 도입 자체의 찬반에서 작품에 맞는 사용 범위와 기준을 정하는 단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어떤 작업을 AI에 맡기고 창작자가 결과물을 어떻게 다듬어 관객에게 전달할지 구체적인 제작 경험을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
제작사 마테오AI스튜디오에 따르면 MBC C&I AI콘텐츠랩과 공동 제작한 ‘라파엘’이 오는 25일 롯데시네마에서 개봉한다. 생성형 AI로 인물과 배경, 전쟁 장면 등을 구현한 장편 영화로, 감정이 통제된 미래 사회에서 안드로이드 전쟁병기가 인간성을 깨닫고 자유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앞서 지난달 21일 개봉한 ‘스틸레이’도 전체 영상을 AI로 만든 장편 영화다. 인간을 위협 요소로 판단한 로봇에 맞서 실종된 아버지를 찾는 윤강이 AI 아라와 전투 수트를 활용해 위기에 대응하는 SF 액션 영화다. 실사 촬영 없이 인물과 공간, 움직임을 생성하고 이를 선별·편집해 90분을 구성했다.
‘라파엘’ 포스터 ⓒ마테오AI스튜디오
연초까지만 해도 영화 산업에서 AI가 맡는 작업의 범위는 한정적이었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망내인: 얼굴 없는 살인자들’은 고(故) 강서하 배우가 마치지 못한 후시 녹음을 생전 음성 자료를 활용해 보완했다. 해외에서는 2024년 개봉한 ‘브루탈리스트’가 배우의 헝가리어 발음을 AI로 보정했고, 같은해 ‘에밀리아 페레즈’ 역시 작곡가와 배우의 목소리를 결합해 노래를 보완했다. 촬영한 연기를 바탕으로 필요한 부분을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올해 4월 CJ ENM이 공개한 ‘아파트’(The House)는 배우의 연기를 실내에서 촬영하고 모든 배경과 시각효과를 AI로 구현했다. 촬영 기간은 4일. 배우의 감정 표현은 촬영으로 확보하고 그 연기가 놓일 공간은 생성하는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 이후 ‘스틸레이’와 ‘라파엘’에서는 인물의 영상까지 생성 대상이 됐다. 무엇을 촬영하고 무엇을 생성할지 정하는 선택이 촬영 규모와 일정, 화면의 표현 방식을 함께 바꾸고 있다.
활용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창작자의 권리를 둘러싼 이견도 있었다. 지난 1월 대한민국 창작자 연대는 정부의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안)’에 담긴 저작물 학습·활용 방안을 비판하며 재검토를 요구했다.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창작물을 학습에 활용할 길을 넓히고 창작자의 통제권과 보상은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어떤 자료를 사용하고 권리자와 어떻게 협의할지도 제작 기준에 포함돼야 하는 이유다.
제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모든 범위에서 AI 기술 사용이 불가피해지면서 변화를 수용하고 함께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열린 제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새 시대, 새 피부’(NEW ERA NEW SKIN)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AI를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다뤘다. AI 영화 국제경쟁 부문인 ‘부천 초이스 AI 영화’는 상영 대상을 단편에서 장편까지 확대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와 ‘프로토타입’을 선보였다. ‘부천 AI 콘텐츠 서밋’도 처음 열어 창작자와 기술기업, 투자자가 제작 경험을 공유하고 협업 가능성을 논의하도록 했다. 한 영화 관계자는 “제작 환경과 기술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만큼 영화계도 결국 시대에 맞춰 AI를 자연스럽게 도입하고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AI 활용이 실제 제작과 상영으로 이어지면서 영화계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제작 도중에도 성능과 이용 조건이 바뀌는 도구를 쓰면서 작품의 완성도와 일정·비용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9월 7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스틸레이’ 시사회 및 간담회에서 설우인 감독 등 제작진은 “90% 정도 만들었을 때 더 좋은 생성 툴이 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화가 상당 부분 완성된 뒤 개선된 도구로 일부 장면을 다시 시험하고 수정했다는 설명이다. 해외 생성형 AI 서비스의 업데이트와 이용 정책 변화는 제작비와 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성능이 좋아진 도구가 나올 때마다 이를 반영하려면 이미 완성한 장면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새로 생성한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이 나아져도 앞뒤 장면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술 발전의 효과를 작품에 반영하려면 개선할 부분과 유지할 부분을 구분하고 결과물을 확정할 시점을 정해야 한다. 개봉 일정과 예산이 정해진 상업영화에서는 수정 범위를 예측할 수 있는 제작 체계가 중요해진다.
이에 필요한 것은 완성된 장면에서 원하는 부분을 고치면서도 기존 연출을 유지할 수 있는 작업 방식이다. 제작 도구에서도 생성한 인물과 연기, 배경을 분리해 다루며 창작자의 수정 범위를 넓히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새 기술을 적용할 때 어떤 요소를 바꾸고 무엇을 유지할지 구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스틸레이’ 스틸 ⓒ라온컴퍼니플러스
영상·3D 제작 소프트웨어 기업 오토데스크는 지난 9월 ‘플로 스튜디오’ 시연에서 이런 방식을 선보였다. 영상에서 가져온 연기와 생성한 캐릭터·환경을 결합하면서 인물과 연기, 카메라, 배경을 각각 수정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연기를 유지한 채 카메라를 바꾸거나 장면 전체를 다시 만들지 않고 배경을 교체하는 방식이다.
이런 접근은 수정할 때마다 원하는 연기나 구도까지 달라지는 문제를 줄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미 확보한 요소를 유지하면서 필요한 부분을 다듬을 수 있다면 장면 간 일관성을 관리하기도 수월해진다. 영화 제작에 쓸 AI를 평가할 때 생성 속도와 화질에 더해 결과물을 얼마나 정교하게 수정할 수 있는지 살펴야 하는 이유다.
장편 AI 영화가 다른 상업영화와 함께 관객의 선택을 받으려면 인물의 감정과 이야기의 흐름으로 설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작품에 필요한 기능을 고르고 기술이 바뀌는 동안에도 연출의 기준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작업에서 효율을 높였고 어디에서 수정이 반복됐는지 경험을 공유하며, AI를 작품의 완성도로 연결하는 구체적인 활용 기준을 쌓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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