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게티이미지뱅크
스포츠윤리센터의 체육인 인권침해·비리 통합 실태조사가 마무리 됐다. 체육 현장에서 어떤 피해가 발생하는지 파악하고, 예방과 대응 정책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조사다. 피해 경험을 수치로 드러내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조사에 응한 선수가 정작 도움을 청할 때 무엇이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없다면, 그 취지는 현장에서 힘을 잃는다. 선수에게 피해를 묻는 일만큼, 기관이 피해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답하는 일이 중요하다.
언론에 크게 보도되고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진 사안이었다. 그런데 스포츠윤리센터 콜센터를 통해 안내된 절차는 신고 접수 후 담당자 배정과 첫 조사까지 약 한 달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사건이 공론화된 뒤에도 첫 조사부터 이만큼 기다려야 한다면, 피해 회복까지 얼마나 더 걸릴 것인가. 신고 대상자와 같은 훈련장을 사용하거나 보복을 걱정해야 하는 선수에게 한 달은 너무 길다.
실태조사와 개별 사건의 신고·조사는 서로 다른 절차다. 실태조사 응답과 정식 신고를 같은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한 차례의 콜센터 안내로 모든 사건의 처리 속도나 실제 보호 여부를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두 절차를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실태조사를 통해 개선하려는 현장이 바로 선수가 신고하고, 기다리고, 다시 운동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가 정책으로 이어졌는지는 그 현장에서 검증돼야 한다.
피해자에게 신고하라는 안내만 되풀이해서도 안 된다. 신고는 필요한 절차지만, 접수됐다는 사실만으로 폭력이 멈추거나 일상이 회복되지 않는다. 신고를 준비하는 단계부터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까지 상담과 치료, 안전한 훈련 공간, 법률 지원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어디에 신고할지를 알려주는데 그치지 말고, 당장 위험을 피하고 운동을 계속할 방법까지 안내해야 한다.
사건 처리 통계에서는 개선이 확인된다.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해 국정감사 자료로 공개한 수치를 보면, 센터의 평균 사건 처리 기간은 2024년 152일에서 2025년 122일로 줄었다. 기한 내 처리율도 61.6%에서 73.2%로 높아졌다. 신고가 851건에서 1,536건으로 늘어난 가운데 처리 건수도 757건에서 1,250건으로 증가했다. 임 의원 역시 속도 개선의 의미를 인정하면서 조사 역량과 피해자 보호, 신고부터 피해 회복까지의 사건 관리를 함께 점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성과를 인정하더라도 평균 122일이라는 시간은 신고한 선수가 언제부터 안전해졌는지 알 수 없다. 첫 연락과 첫 진술, 위험한 환경에서 분리된 시점은 각각 다를 수 있다. 사건이 빨리 종결됐는지와 그동안 피해자가 보호받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실태조사가 체육인의 삶을 바꾸기 위한 정책 자료라면, 처리 건수와 기간의 개선이 실제 보호와 회복으로 이어졌는지도 중요한 평가 대상이어야 한다.
법이 요구하는 초기 대응은 이미 명확하다. 국민체육진흥법은 선수 폭력 신고를 받으면 ‘곧바로’ 피해자 긴급 보호 등 필요한 조치를 하고 조사하도록 규정한다. 시행규칙은 접수 후 30일 안에 조사에 착수하고, 착수 후 90일 안에 처리하도록 정한다. 불가피한 경우 처리 기간을 한 차례, 30일 이내로 연장할 수 있다. 조사와 처리를 위한 기한을 보호의 유예기간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긴급한 위험을 줄이는 일은 사건의 결론이 날 때까지 미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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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에는 공간 분리, 직무 정지, 접촉 금지 등을 권고하고 상담·법률·의료·임시 보호를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 기존 제도를 실제로 작동시키되 지원과 제재는 구분해야 한다. 상담과 기초 법률 안내를 제공했다고 피신고자의 책임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직무 정지 등 권리를 제한하는 조치는 법적 요건과 필요성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접수부터 첫 지원까지 걸린 시간도 공개해야 한다.
허위 신고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초기 지원을 늦춰서는 안 된다. 미입증이나 무혐의를 고의적인 허위와 같게 취급해서도 안 된다. 고의로 지원 요건을 속인 부정수급이 객관적으로 확인된 경우만 환수할 수 있도록, 소명과 이의 제기를 보장하는 명확한 근거와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체육단체의 후속 징계 절차에서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충주 수영부 학생 선수 성폭력 사건에서 충주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지난해 11월 18일 증거 부족과 관계 기관 간 판단 차이 등을 들어 형사재판 1심까지 징계를 미뤘다. 올해 9월 3일 두 명에게 출전 정지 6개월, 세 명에게 견책 처분을 내리기까지 약 열 달이 흘렀다. 피해 학생은 수영을 그만뒀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재 양측은 재심을 신청해 처분의 적정성을 다시 다투고 있다.
재심의 판단과 별개로, 절차가 이어지는 동안 선수의 운동 생활을 어떻게 지켰는지는 물어야 한다. 어떤 보호가 제공됐고, 운동을 계속할 선택지가 있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피해 경험을 파악한 뒤 선수가 운동을 떠난 경위는 놓친다면, 정책이 막아야 할 손실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사건의 발생 여부와 함께 신고 이후의 생활, 훈련 중단과 이탈, 복귀를 가로막는 사정도 실태조사의 분석과 정책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
실태조사가 다뤄야 할 현실은 폭력의 발생 순간에만 있지 않다. 피해를 알린 뒤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지, 보호 조치는 언제 실행됐는지, 신고 때문에 불이익을 겪거나 운동을 포기하지는 않았는지도 중요하다. 신고하지 않았다면 무엇이 망설이게 했고 어떤 지원이 필요했는지 살펴야 한다. 이러한 경험이 설문 설계와 결과 분석에 충분히 반영되는지 점검하고, 확인된 문제를 어떤 정책 과제로 옮겼는지 공개해야 한다. 응답한 선수에게 피해를 더 자세히 설명하라고 요구하는 데서 끝내서는 안 된다.
실태조사만으로 모든 사건의 경과를 확인할 수는 없다. 접수부터 첫 연락과 진술, 보호 결정과 실행까지 걸린 시간을 따로 관리해야 한다. 장기 대기 사건의 수와 지연 사유도 밝혀야 한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며 설문과 사건 관리 자료를 함께 분석하면, 어느 단계에서 지원이 끊기는지 살필 수 있다. 분리 조치로 신고한 선수만 훈련 기회를 잃었다면 실행 건수만으로 드러나지 않는 문제다.
조사 결과에 따른 후속 조치도 다음 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문제를 확인했고 어느 기관이 무엇을 고쳤는지, 약속한 개선은 언제 이행됐는지 공개해야 한다. 징계 요청 이후에는 누가 이행을 확인하고 미이행에 책임을 묻는지도 분명해야 한다. 피해자에게는 사건 진행과 보호 이행을 끝까지 안내할 연락 창구가 필요하다. 절차가 끝난 뒤에도 치료와 상담, 훈련 복귀 지원이 이어져야 조사와 신고를 독려한 말에 책임을 다할 수 있다.
실태조사는 피해 경험을 반복해서 수집하기 위한 사업이 아니다. 그 경험을 근거로 체육 현장을 바꾸기 위한 제도다. 지난해의 응답이 올해 어떤 개선으로 돌아왔는지, 신고한 선수는 그 변화를 실제로 누렸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선수 등 체육인에게 피해가 있었냐고 다시 묻기 전에, 이미 들은 피해에 무엇을 바꿨는지 답하라. 선수는 다음 실태조사까지 기다렸다가 안전해질 수 없다.
안덕기 대한체육회 홍보미디어위원회 부위원장. ⓒ 데일리안
글 / 안덕기 대한체육회 홍보미디어위원회 부위원장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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