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체 기둥 없애고도 천장 강도 14톤 확보…차체 구조 전면 재설계
레이스카 롤케이지 원리 적용…첫 강도 시험 실패 딛고 안전성 완성
3t 넘는 차체 충돌 에너지 분산…배터리·탑승 공간 보호 기술 집약
울산 EV 신공장서 정밀 제조…모터 소음까지 잡아낸 기술력
제네시스 GV90 네오룬ⓒ제네시스
"차 기둥이 없는데 정말 안전합니까?"
지난 8월 제네시스가 초대형 전기 SUV 'GV90'를 처음 공개했을 때, 제네시스 개발진이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앞문과 뒷문 사이에 있어야 할 기둥(B필러)이 사라지고, 양쪽 문이 활짝 열리는 파격적인 구조 때문이다. 제네시스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동차의 차체 구조부터 충돌 안전 설계, 제조 공정까지 사실상 새로 만들었다.
지난 28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서 열린 'GV90 테크데이'에서는 이 같은 기술적 도전의 과정이 공개됐다. 이날 행사에는 GV90 개발에 참여한 연구개발·제조 부문 실무 책임자 12명이 참석해 기존 자동차의 설계 상식을 뒤집어야 했던 이유와 해결 과정을 직접 설명했다.
GV90는 올해로 출범 10년을 맞은 제네시스의 최상단에 위치한 플래그십 모델이다. 그동안 현대차의 럭셔리 브랜드로 출발해 세단과 SUV를 중심으로 제품군을 확대해왔다면, GV90는 그동안 축적한 기술력과 브랜드 역량을 최상단에 집약한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GV90에는 그간 현대차그룹에서 선보인 적 없던, 또 전세계 자동차 브랜드에서 선보인적 없던 최초 기술이 총집약됐다. 겉으로 드러나는 '충격적인'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속까지 전부 뒤집어 엎었다는 설명이다.
GV90의 대표 기술이자, 시그니처 기술인 세계 최초의 독립 개폐형 코치도어 '네오룬 아치 게이트'가 대표적이다. GV90 네오룬 모델에 탑재된 기술로, 일반적인 자동차의 앞문과 뒷문 사이에 위치하는 B필러를 도어 내부로 숨기면서도 두 문이 서로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열리는 구조를 세계최초로 적용했다.
B필러는 자동차의 지붕과 바닥을 연결하는 핵심 골격이다. 차량이 전복되거나 측면에서 충돌했을 때 충격을 견디고, 차체가 뒤틀리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이를 없애면 승하차 공간은 넓어지지만 안전성과 강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진다.
제네시스 개발진은 기존 구조를 유지하면서 디자인을 수정하는 대신, '처음부터 B필러가 없는 차'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B필러를 단순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도어와 차체 내부로 분산하는 방식을 택했다.
최동욱 제네시스클로저설계팀 팀장은 "B필러를 없애는 것은 마지막 선택이 아니라 첫 번째 선택이었다"며 "혁신적인 실내 공간 경험을 위해서는 B필러가 반드시 없어져야 했고, 그 의사결정이 가장 먼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1열 스위블링 시트를 뒤로 180도 돌린 모습 ⓒ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이를 위해 개발진은 경주용 자동차에서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롤케이지' 구조에 주목했다. 차체 내부에 강철 골격을 추가해 탑승 공간을 감싸는 방식이다.
GV90 네오룬은 이 원리를 응용해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히든 롤케이지'를 구현했다. 지붕 측면의 차체 골격 안에 길이 2.5m의 고강도 스틸 튜브를 넣고, 구조용 폼을 채워 결합 강성을 높였다. 도어 내부에는 1.8GPa급 초고강도 스틸 빔을 수직과 수평으로 배치해 기존 B필러가 담당하던 역할을 대신하도록 했다.
특히 도어 상단과 하단에 각각 잠금장치인 래치를 설치했다. 문이 닫히면 도어 내부의 강철 빔과 차체 골격이 하나로 연결돼 충돌 시 발생하는 하중을 여러 방향으로 분산하는 구조다.
개발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시뮬레이션 기법을 보완하고 차체 구조를 여러 차례 수정하는 등 수많은 실패 끝에, 최종적으로 GV90 네오룬은 자체 시험에서 지붕을 위에서 누르는 하중을 14톤포스(tf) 이상 견디는 천장 강도를 확보했다. 시속 60km 측면 직각 충돌 시험에서도 차체가 밀려 들어온 이후 최소 320mm의 탑승객 생존 공간을 남겼다.
최석준 제네시스차체설계팀 파트장은 약 4년 전 진행한 첫 루프 강도 시험을 떠올리며 "많은 해석을 했지만 선행 개발 차량의 첫 시험은 실패였다"고 말했다.
문을 움직이는 방식도 완전히 새로 개발해야했다. 약 70kg에 달하는 뒷문을 앞문과 관계없이 열기 위해서는 기존 힌지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개발진은 자동차 업계에서 해법을 찾지 못하자, 가구 박람회와 산업용 기계 분야까지 살펴봤다. 결국 산업용 로봇 등에 사용되는 초정밀 부품인 '리니어 모션 가이드'를 활용해 문이 바깥쪽으로 미끄러진 뒤 회전하는 '듀얼 모션 힌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3t 넘는 전기차, 무조건 단단하게 만드는 게 답은 아니었다
28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서 열린 'GV90 테크데이'에서 GV90 개발진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GV90 개발진이 풀어야 했던 또 다른 숙제는 초대형 전기차의 무게였다. GV90는 123.5kWh 대용량 배터리와 고출력 모터, 각종 첨단 장비를 탑재한 3t 이상의 초대형 SUV다. 차체가 무거울수록 사고 규모도 커지는 만큼, 기존 자동차와는 다른 안전 설계가 필요했다.
제네시스는 충격을 무조건 버티는 것이 아니라, 충돌 에너지가 흘러갈 방향까지 미리 설계하는 방법을 택했다. 대표적인 기술이 '슬라이드 어웨이' 구조다. 차량 앞부분의 일부만 장애물에 부딪히는 스몰 오버랩 충돌이 발생하면, 차체 전방에 설치된 디플렉터가 충격을 측면으로 유도한다. 차량이 장애물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대신 비껴 지나가도록 만들어 탑승 공간으로 전달되는 충격을 줄이는 원리다.
박지웅 제네시스바디아키텍처개발팀 팀장은 "충돌 시 차량의 움직임까지 계산한 설계는 가벼운 차량에서는 비교적 쉽게 구현되지만 무거운 전기차에서는 매우 까다롭다"며 "3t이 넘는 차량도 충돌 순간 설계한 대로 움직이며 탑승객을 보호하도록 만드는 것이 럭셔리 플래그십이 갖춰야 할 진짜 품격"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초로 적용한 루프 에어백도 같은 고민에서 출발했다. GV90는 넓은 유리 지붕을 통해 개방감을 높였지만, 차량이 뒤집혔을 때 탑승객이 유리 지붕에 부딪히거나 차량 밖으로 이탈할 위험까지 고려해야 했다.
제네시스는 전복 사고가 발생하면 에어백이 지붕을 따라 약 1.4m 펼쳐지도록 설계했다. 전개 시간은 0.08초에 불과하다.
공간 늘리려 부품 위치까지 바꿨다…울산 EV공장서 제조 기술 집약
제네시스 GV90 네오룬 ⓒ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새로운 차체 구조와 충돌 안전 기술을 구현하는 과정은 차량 플랫폼과 생산 방식의 변화로도 이어졌다.
GV90에는 현대차그룹의 플래그십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MP가 처음 적용됐다. 기존 전기차 플랫폼을 단순히 확대한 것이 아니라 초대형 SUV에 필요한 공간과 주행 성능,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하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변화는 실내 바닥이다. 제네시스는 1열부터 2열까지 발에 걸리는 턱이 없는 평평한 바닥을 구현하기 위해 기존 바닥 아래에 있던 통합 충전 제어 장치(ICCU)를 전방 구동 시스템 공간으로 옮겼다. 대시보드에 있던 공조 장치 역시 전방으로 이동시키고, 2열 시트 레일은 차체 안쪽에 숨겼다.
후방에는 모터와 서스펜션, 후륜 조향 장치를 위아래로 입체적으로 배치하는 '3차원 PE 모듈 구조'를 새롭게 적용했다. 고출력 구동계와 복잡한 하체 부품을 담으면서도 실내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다.
차체 경량화에도 공을 들였다. GV90는 차체 구조물의 72%에 알루미늄을 적용했다. 강한 충격이 집중되는 부위에는 여러 개의 폐단면을 하나로 주조하는 '할로우 캐스팅' 공법을 활용해 접합부를 줄이고 강성을 높였다.
전에 없던 새로운 구조를 양산차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제조 과정에서의 변화도 불가피했다. 제네시스는 GV90 만을 위해, 울산 EV 신공장에 새로운 생산 설비와 품질 관리 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GV90의 달항아리처럼 이음매 없이 매끄러운 차체를 구현하기 위해 고정밀 프레스와 이종 소재 접합 기술을 적용했다는 설명이다.
제네시스개발담당 허광훈 상무는 "엔지니어링은 흔히 타협의 기술이라고 한다. 조용하게 만들면 무거워지고, 넓게 만들면 약해지기 때문"이라며 "GV90는 그 순서를 뒤집어 고객을 위해 양보할 수 없는 기준부터 새로 세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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