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물가 2.9%…석유류 14.8% 급등
가계 이자비용 12.1% 증가…소비여력 위축
한은 기준금리 3.00% 동결…추가 인상 여지
서울 시내 한 전통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뉴시스
반도체 수출이 차린 한국 경제의 잔칫상은 화려하다. 앞으로 이런 잔칫상을 받아볼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로 눈부시다.
그런데 이렇게 기업 실적과 성장률이 높아지는 사이 가계에는 생활비와 대출이자 고지서가 쌓이고 있다. 호황의 과실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서민들이 물가 상승에 이어 긴축의 비용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물가 상승을 억제하려면 높은 금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금리를 높게 유지하면 소비와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마주한 선택은 단순히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문제가 아니라 물가 안정의 혜택과 긴축의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가깝다.
서울 시내 한 전통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뉴시스
잔칫상 밖 가계에 쌓인 물가·이자 고지서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9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9% 올랐다. 6월 3.2%를 기록한 뒤에도 3% 안팎에서 등락하고 있다. 9월 석유류 가격은 14.8% 상승했다. 중동발 에너지 가격 충격이 가계 부담을 더했다.
물가 상승률이 다소 내려가도 이미 오른 생활비가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9월 생활물가지수는 2.5%,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2.8% 상승했다.
2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실질소득 증가율은 1.5%, 실질소비지출 증가율은 0.4%에 그쳤다. 가구당 이자비용은 전년 동기보다 12.1% 늘었다. 최근 기준금리 인상 이전부터 금융비용 부담이 커졌다는 의미다.
반도체 호황이 내수로 퍼지는 속도가 더딘 가운데 생활비와 이자 부담이 소비 여력을 제한하고 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는 수출과 투자에 비해 고용 비중이 작다”며 “일부 산업의 호황만으로 경제 전반의 소비를 끌어올리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금리를 내리기도 어렵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22일 기준금리를 연 3.00%로 동결했다. 7월과 8월 연속 인상에 따른 파급효과를 점검하면서 추가 인상 가능성은 열어뒀다. 물가뿐 아니라 가계부채와 주택가격도 고려 대상이다.
국제유가처럼 해외에서 결정되는 가격은 국내 기준금리를 높여도 직접 낮추기 어렵다. 그럼에도 물가 상승이 다른 상품과 서비스로 번지고 기대인플레이션까지 높아지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3.00%는 최소한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금리를 낮춘다고 소비와 투자가 자동으로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직장인들이 출근길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뉴시스
잔칫상 계산서의 대가…볼커 쇼크가 남긴 교훈
물가를 잡으려는 긴축이 가계에 어느 정도의 희생을 요구할 수 있는지는 역사에서도 확인된다. 1980년대 미국의 ‘볼커 쇼크’는 강력한 물가 안정 정책이 초래할 경기침체와 그 대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1979년 10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에 취임한 폴 볼커(Paul Volcker)는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강력한 통화 긴축에 나섰다. 1980년 3월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4.8%에 달했다. 볼커가 주도한 통화 공급 억제로 연방기금금리는 1981년 19% 수준까지 올랐다. 고금리에 반발한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연준 청사 앞에서 항의했다.
이후 미국은 실업률이 1982년 말 10.8%까지 상승하는 등 큰 혼란을 겪었다. 그러나 이같은 극약 처방으로 물가 상승률은 같은 해 말 4% 수준으로 내려왔다. 물가 안정을 얻는 과정에서 고용과 생산이 큰 대가를 치른 셈이다.
다만 당시 미국과 현재 한국을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미국은 두 자릿수 물가가 장기간 이어졌고 한국의 9월 상승률은 2.9%다. 볼커 쇼크는 무조건적인 금리 인상의 근거가 아니라 물가 안정의 편익과 긴축의 비용을 함께 따져야 한다는 교훈이다.
양 교수는 “금리를 올리면 내수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고 필요한 통화정책을 미루면 시장금리가 더 올라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남는 과제는 긴축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계층을 보호하는 일이다. 통화정책이 물가와 금융안정을 맡는다면 재정은 취약계층의 충격을 줄이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은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며 “재정은 필요한 곳에 선별적으로, 적절한 시기에 한시적으로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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