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유예 논의…제도 결함부터 짚어야
손실 공제·과세 형평성이 먼저
공정한 과세는 정부의 의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민주권정부 인구전략 비전선포식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뉴시스
과세 제도의 문제를 바로잡으라는 요구가 언제부터 정부의 선심을 기다리는 일이 됐나.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둘러싼 설명을 듣다 보면 정부가 투자자에게 큰 혜택이라도 베푸는 듯하다.
공정하게 세금을 매길 여건을 갖추라는 요구가 어느새 정부의 배려를 기다리는 부탁으로 바뀐 모양새다.
청와대가 청년의 자산 사다리를 존중하고 청년층의 목소리를 감안해 유예를 검토한다는 설명부터 그렇다.
청년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과세 체계가 합리적인지를 묻는 자리에 청년을 생각하는 정부의 마음이 답이 돼서는 곤란하다. 세금은 정부의 인심으로 걷거나 미루는 것이 아니다.
그토록 존중해야 할 자산 사다리였다면 그동안 유지해 온 시행 방침은 무엇이었나.
시행을 고수할 때는 과세 원칙이고, 미룰 때는 청년 존중인가.
어느 쪽을 택하든 정부는 좋은 명분을 챙긴다. 정작 기존 판단은 무엇이 잘못됐고 왜 이제 와 미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뒷전이다.
정부·여당이 유예를 추진한다면 먼저 내놓아야 할 것은 청년을 배려했다는 말이 아니다.
그동안 시행할 수 있다고 판단한 근거와 지금 미뤄야 하는 이유다.
준비가 부족했다면 무엇이 부족한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고칠지 밝혀야 한다.
유예 결정에 대한 환영이 그간의 판단에 대한 면책까지 뜻하지는 않는다.
투자자는 여러 해에 걸쳐 돈을 벌고 잃는다.
그런데 손실 이월공제가 없다면 전년도에 큰 손해를 보고 이듬해 일부를 회복한 투자자도 세금을 내야 할 수 있다.
투자자에게 남은 것은 누적 손실인데 과세 대상 소득은 생기는 셈이다.
이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시행만 늦춘다면 불합리한 과세를 나중에 하겠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자산 간 형평성도 설명이 필요하다.
금융투자소득세는 폐지했으면서 가상자산 투자소득에는 별도로 과세하려면 그 차이를 납득시켜야 한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만 반복해서는 부족하다.
어떤 투자소득에는 적용하고 어떤 투자소득에는 적용하지 않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원칙은 정부가 필요한 대목에서만 꺼내 쓰는 구호가 아니다.
손실 공제와 과세 형평성은 투자자의 나이와 관계없는 문제다.
이를 청년 배려로 설명할수록 정부가 고쳐야 할 제도의 결함은 청년층의 부담 문제로 좁아진다.
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세금 걷는 날을 늦춰줬다는 생색보다 왜 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있는 세금이다.
이번에도 유예가 이뤄지면 벌써 네 번째다.
시행과 유예가 반복되는 동안 투자자는 세금을 내게 될지, 또 미뤄질지를 계속 신경 써야 한다.
법에 정해진 시행일이 있어도 정부와 정치권의 말에 따라 다시 달라질 수 있으니 투자 계획을 세우기도 어렵다.
과세를 하겠다면 문제를 고쳐 시행할 수 있는 제도를 내놓고 약속한 일정을 지켜야 한다.
거듭 미룰 수밖에 없다면 과세 방침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
시행 여부조차 투자자가 해마다 걱정하게 만드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을 다한 모습이 아니다.
미룰 때는 신중한 결단을 내세우고, 시행을 예고할 때는 과세 원칙을 강조한다.
그 사이 투자자가 감당해야 하는 불확실성에 대한 책임은 어느 쪽 설명에도 없다.
공정한 과세 여건을 갖추는 것은 정부의 의무다.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해 시간을 더 쓰겠다는 결정을 국민에게 베푸는 선심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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