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이어 ‘실낙원’도 통했다…연상호, 저예산 영화로 연속 성과 [영화 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10.28 15:31  수정 2026.10.28 15:31
G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

12만 관객 돌파…해외 선판매로 제작비 회수 부담 낮춰

“영화 만드는 하나의 방식”…흥행 성적보다 창작 가능성에 주목

연상호 감독이 저예산 영화로 다시 한번 성과를 냈다. 지난해 순제작비 약 2억 원의 ‘얼굴’로 108만 관객을 모았고, 순제작비 약 5억 원의 신작 ‘실낙원’도 개봉 일주일 만에 12만 관객을 넘어섰다. 특히 ‘실낙원’은 해외 선판매로 제작비 회수 부담을 덜고 출발해 극장에서도 빠른 관객 동원 속도를 보이고 있다.


28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실낙원’은 전날 9419명을 동원해 누적 관객 수 12만 1610명을 기록했다. 지난 21일 개봉한 ‘실낙원’은 첫 주말 10만 관객을 넘긴 뒤 평일에도 관객을 추가하고 있다.


연상호 감독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실낙원’은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 류소영(김현주 분)에게 죽은 줄 알았던 아들 류선우(배현성 분)가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심리 스릴러다. 소영이 인공지능(AI)으로 어린 아들의 모습을 재현해 상실을 견뎌왔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기억과 현실, 가족의 관계를 파고든다. 개봉 전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과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돼 두 영화제 모두 전 회차 매진을 기록했다.


‘실낙원’은 인공지능이 재현한 존재와 실제 인간 사이의 경계를 통해 기억과 정체성, 인간다움의 의미를 질문한다. 연 감독은 그동안 ‘부산행’과 ‘지옥’ 등에서 비현실적인 상황에 놓인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모습을 탐구해 왔다. 이번에는 인공지능 기술을 가족의 상실과 결합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장르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연상호 특유의 작품 세계를 확장했다.


‘실낙원’은 촬영을 14회차로 제한하고 소규모 인력으로 현장을 꾸리는 방식으로 제작비를 낮췄다. 대규모 세트나 시각효과보다 배우의 연기와 심리적 긴장감에 무게를 뒀다. 제작 자금에는 전작 ‘얼굴’의 흥행 수익이 투입됐다. 한 작품의 성과가 다음 영화의 제작으로 이어진 셈이다. 연 감독에게 저예산 제작은 단순히 비용을 줄이는 작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상업영화의 투자 기준으로는 실현하기 어려웠던 기획을 직접 완성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는 저예산 작업에 대한 만족감을 묻자 “너무 좋다. ‘얼굴’은 오래전부터 만들고 싶었던 작품이다. 예전에 한 투자사 관계자에게 ‘얼굴’을 제안했더니 ‘원플러스원으로 하실래요?’라고 하더라.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오랜 기간 제작하지 못했던 작품이 100만 관객을 넘긴 결과는 연 감독에게도 예상 밖이었다. 그는 “‘돼지의 왕’ 때는 2만 명이 봤는데, 장르성이 더 강하면 강했지 덜하지 않은 ‘얼굴’을 100만 명 넘게 본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일종의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실낙원' 포스터ⓒCJ ENM

다만 ‘실낙원’에서도 같은 흥행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연 감독은 “‘실낙원’이 100만 명을 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렇게 영화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겠다고 느꼈다”며 “매년 하고 싶지만 매년은 못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두 작품은 저예산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수익을 확보한 경로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얼굴’이 국내 극장 흥행으로 성과를 거뒀다면 ‘실낙원’은 개봉 전 해외 판매를 통해 먼저 수익 기반을 마련했다.


‘실낙원’은 배급사 CJ ENM을 통해 118개국에 선판매되며 순제작비 약 5억 원을 웃도는 매출을 확보했다. 국내 극장 관객 수에 의존해 제작비를 회수해야 한다는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낸 셈이다. 이후 개봉 일주일 만에 12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추가 수익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시도는 한국영화계의 제작 환경과도 맞닿아 있다. 제작비 상승과 투자 위축으로 신작 제작이 어려워진 가운데, 흥행 실패에 따른 손실 위험을 줄이는 일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극장 관객 수에 따라 수익이 크게 좌우되는 구조에서는 제작 규모가 커질수록 손익분기점도 높아진다.


연 감독은 제작 규모를 줄이는 대신 작품의 기획 의도를 유지하고, 해외 판매를 통해 수익 경로를 넓혔다. 대규모 흥행을 전제로 투자받는 방식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적은 관객으로도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구조를 모색한 것이다. 흥행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던 작품을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물론 이러한 모델을 한국영화 전반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연 감독은 ‘부산행’과 ‘지옥’ 등을 통해 국내외 인지도를 쌓았고, ‘지옥’과 ‘정이’에서 호흡을 맞춘 김현주처럼 신뢰 관계를 형성한 배우들과 협업할 기반도 갖췄다. 118개국 선판매 역시 감독의 인지도와 대형 배급사의 해외 세일즈 역량이 뒷받침된 결과다. 적은 제작비만으로 투자 위험을 해소하거나 안정적인 관객 동원을 보장할 수는 없다.


‘실낙원’의 최종 흥행 규모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얼굴’의 108만 관객과 직접 비교하기에도 이르다. 다만 연 감독의 연이은 저예산 프로젝트는 제작비를 늘리고 대규모 흥행을 노리는 방식 외에도 영화를 만들고 관객에게 선보일 길이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기존 투자 구조에서 실현하기 어려웠던 기획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창작의 선택지를 넓힌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시도가 한 감독의 성과에 머물지 않고 중·저예산 영화의 제작과 배급 환경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과제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