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연간 영업익 6조원대 추락…올 3분기 한 분기에 107조원
반도체 수장 교체·'사즉생' 쇄신…HBM4 양산으로 기술 반격
AI 메모리·범용 D램 호황에 실적 급반등…파운드리 회복은 진행형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오른쪽)이 지난 2019년 8월 삼성전자 평택 2라인 건설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삼성전자
6조5670억원에서 107조4000억원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한 이후 삼성전자의 실적 성적표는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2023년 한 해 영업이익이 6조원대까지 추락했던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단 한 분기에 100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뒀다. 불과 3년 사이 벌어진 변화다.
그 사이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뒤처지며 기술 리더십에 대한 의문에 직면했다. 이 회장은 '사즉생'을 강조하며 쇄신을 주문했고, 삼성전자는 반도체 수장 교체와 차세대 HBM 개발을 통해 반격에 나섰다. 글로벌 메모리 호황까지 겹치면서 취임 4주년을 앞두고 사상 최대 실적을 예고하게 됐다.
43조에서 6조로 추락…반도체 불황에 흔들린 삼성
이 회장이 취임한 2022년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은 43조3766억원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반도체 불황이 닥친 이듬해에는 6조5670억원으로 84.9% 급감했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은 2023년 한 해에만 약 14조88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메모리 업황이 회복되면서 삼성전자의 실적도 반등하기 시작했다. 연간 영업이익은 2024년 32조7260억원, 지난해 43조6011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상반기 영업이익이 11조원대에 머물렀지만 4분기에만 20조원을 넘어서며 회복 속도가 가팔라졌다. AI 반도체 수요 확대와 메모리 가격 상승이 본격적으로 실적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들어서는 실적 개선 속도가 더욱 가팔라졌다. 삼성전자는 1분기 매출 133조8700억원, 영업이익 57조2300억원을 기록하며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새로 썼다. 특히 1분기 영업이익만으로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43조6011억원을 넘어섰다.
2분기에도 매출 171조5000억원, 영업이익 89조4900억원으로 기록을 경신했다. 이어 지난 8일 발표한 3분기 잠정 실적은 매출 195조원, 영업이익 107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사상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100조원을 돌파하면서 올해 세 분기 연속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갔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분기 기준 사상 최대다. 특히 3분기 한 분기에 거둔 잠정 영업이익은 2023년 연간 영업이익의 16배를 웃돈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43조6011억원과 비교해도 약 2.5배에 이른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만나 HBM4E·HBM5 공급 등에 대해 논의했다.ⓒ삼성전자
HBM 실기에 흔들린 기술 리더십…반도체 수장 전격 교체
삼성전자의 위기는 단순한 메모리 불황에 그치지 않았다. AI 산업이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핵심 부품으로 부상한 HBM 경쟁의 주도권을 경쟁사에 내줬다는 점이 더 뼈아팠다.
삼성전자는 오랫동안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선두를 유지해 왔다. 미세공정 기술과 대규모 생산능력을 앞세워 메모리 산업을 주도했지만, 생성형 AI 시장의 급성장으로 경쟁의 기준이 달라졌다.
AI 가속기에는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면서 전력 소모를 줄일 수 있는 고성능 메모리가 필요하다.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HBM이 핵심 부품으로 떠오른 배경이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HBM 공급을 확대하며 AI 메모리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주요 고객사가 요구하는 제품 성능과 공급 일정에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세계적인 D램 생산능력을 갖추고도 고부가 AI 메모리 시장에서는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기술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삼성전자는 2024년 5월 21일 전영현 부회장을 DS부문장으로 전격 투입했다. 정기 인사 시기가 아닌 때에 반도체 사업의 수장을 교체한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반도체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전 부회장은 과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을 맡았던 반도체 전문가로, HBM 경쟁력 회복과 조직 쇄신이라는 과제를 떠안았다.
같은 해 10월에는 전 부회장이 3분기 잠정 실적 발표 직후 이례적으로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한 실적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면서 기술 경쟁력 회복에 경영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회장도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지난해 3월 전 계열사 임원들에게 전달한 메시지에서 삼성의 경쟁력 약화를 지적하며 '사즉생'의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할 것을 주문했다. 과거의 성공 방식에 안주하지 말고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을 되살려야 한다는 요구였다.
1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28회 반도체대전(SEDEX 2026) 삼성전자 부스에 7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4E’ 구조 모형이 전시돼 있다. ⓒ데일리안DB
HBM4로 반격…범용 메모리 호황까지 겹쳤다
삼성전자가 기술 경쟁력 회복을 보여준 대표적인 성과는 올해 2월 시작된 6세대 HBM인 HBM4 양산 출하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HBM4 양산 출하를 공식 발표하며 차세대 AI 메모리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전 세대에서 경쟁사에 밀렸다는 평가를 받았던 삼성전자가 최신 제품을 앞세워 반격에 나선 것이다.
HBM4에는 10나노급 6세대인 1c D램과 4나노 파운드리 공정으로 제작한 베이스 다이가 적용됐다. 베이스 다이는 적층된 메모리 칩의 신호와 전력 등을 제어하는 반도체다. 삼성전자는 최신 D램과 첨단 파운드리 공정을 결합해 데이터 처리 성능과 전력 효율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특히 개발 초기부터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의 기준을 웃도는 성능을 목표로 제품을 설계했다. 기존에 검증된 공정을 적용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최신 공정을 선제적으로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고객사 확보에서도 진전이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올해 3월 미국 AMD의 차세대 AI 가속기용 HBM4 우선 공급업체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AMD의 차세대 AI 가속기 '인스팅트 MI455X'에 HBM4를 공급하는 협력이다.
후속 제품 개발도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HBM4E 12단 샘플을 고객사에 공급했고, 차세대 HBM5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HBM4 양산을 시작으로 차세대 제품군까지 개발 속도를 높이며 AI 메모리 시장에서 경쟁력 회복에 나선 모습이다.
다만 올해의 기록적인 실적을 HBM 경쟁력 회복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 확대로 메모리 공급 부족이 심화한 데다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급등한 것이 실적 개선의 또 다른 축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메모리 업체들이 HBM을 비롯한 고부가 제품 생산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범용 D램의 공급 여력은 상대적으로 줄었다. 여기에 AI 서버와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수요가 늘면서 D램과 낸드 가격이 동반 상승했다.
삼성전자는 대규모 메모리 생산능력을 보유한 만큼 가격 상승에 따른 수익성 개선 효과도 크게 누리고 있다. HBM4 양산을 통한 기술 경쟁력 회복과 범용 제품의 가격 상승이 함께 실적 반등을 뒷받침한 셈이다.
실제로 올해 3분기 매출은 전 분기 대비 13.7% 증가한 반면 영업이익은 20.0% 늘었다. 매출 증가 속도보다 이익 증가 속도가 빨랐다는 점에서 수익성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스페이스X 로고. ⓒ 로이터/연합뉴스
테슬라 23조 수주…파운드리 회복은 진행형
메모리 사업이 삼성전자의 실적 반등을 이끄는 가운데 파운드리는 여전히 경쟁력 회복을 추진해야 하는 사업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 글로벌 대형 고객사와 22조7648억원 규모의 반도체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계약 기간은 2033년 말까지다. 이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계약 사실을 공개하면서 상대 기업이 테슬라라는 점이 확인됐다.
머스크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공장에서 테슬라의 차세대 AI6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계약은 대만 TSMC와의 경쟁에서 고전해 온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에 중요한 수주 성과로 평가됐다. 첨단 공정 기술을 확보하더라도 실제 양산 물량을 맡길 대형 고객사가 충분하지 않으면 수익성을 개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나노 공정 경쟁력 강화와 신규 고객사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초 회사는 AI와 고성능컴퓨팅(HPC)용 반도체 수요를 바탕으로 2나노 공정의 고객사 확대와 손익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다만 테슬라 계약만으로 파운드리 사업이 반등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업계 지배적 관측이다. 계약 규모가 실제 매출과 이익으로 연결되려면 본격적인 양산과 안정적인 수율 확보가 필요하다. 대규모 시설투자에 따른 비용 부담을 줄이고 생산시설 가동률을 높이는 문제도 남아 있다.
메모리 사업의 기록적인 실적과 달리 파운드리의 수익성 회복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HBM4 양산과 범용 메모리 가격 상승에 힘입어 반도체 사업의 반등을 이뤘지만, 올해 실적 급증에는 업황 개선 효과도 크게 작용했다. 향후 메모리 시장의 호황이 꺾이더라도 안정적인 이익을 유지하려면 HBM 등 고부가 제품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파운드리의 수익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재용 회장 취임 4년 만에 삼성전자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반도체 사업의 모든 과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메모리 시장에서 회복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파운드리에서도 실질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오는 29일 3분기 확정 실적을 발표한다. 잠정 실적에서 공개되지 않은 사업부별 성적표를 통해 반도체 사업의 수익성 개선 수준을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고부가 메모리의 실적 기여와 파운드리 사업의 손익 변화가 주요 확인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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