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빙 차단·기기 이상 등 돌발 변수 극복하며 핵심 운항 데이터 확보
수에즈 항로 대비 운항 거리 35% 단축…미래 상업 항로 가능성 입증
해수부, 내빙 선박 도입 등 후속 지원 추진
북극항로 왕복 시범운항을 마친 팬스타 아크로호가 지난 11일 부산항으로 귀항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더 이상 항해를 지속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플랜B, 플랜C까지 고민해야 하나 싶었다.” - 박지정 팬스타 아크로호 일등 항해사.
지난 8월 31일 밤에서 9월 1일로 넘어가는 시간, 북극해를 항해하던 팬스타 아크로호는 유빙에 가로막혔다. 눈앞에 보이는 얼음은 크지 않았지만, 여러 유빙이 길을 막고 있었다.
해가 지면 수면 아래에 잠긴 얼음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다. 레이더에만 의존해 항해를 이어가는 것은 위험하다. 레이더는 유빙의 존재만 확인해 줄 뿐, 빙하의 단단함이나 크기는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선장과 항해사, 기관장은 논의를 거듭했다. 박지정 일등 항해사는 ‘이대로 배를 돌려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수십 년 배를 타 온 전문가들은 긴 논의 끝에 무리하게 전진하는 대신 시야가 확보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새벽 2시. 북극 얼음 위로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면서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던 바닷길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배는 속도를 낮춘 채 조금씩 얼음을 밀어내며 몸을 움직였다.
49일 10시간의 북극항로 여정은 예측불가 상황과의 싸움이었다. 사전에 많은 연구와 시뮬레이션으로 북극을 ‘상상’했으나, 현실은 상상 이상이었다. 가는 길은 유빙이 가로막았고, 오는 길은 거친 파도와 차가운 기온이 배를 붙잡았다.
현장에서 마주한 난관은 유빙에 그치지 않았다. 해수 온도가 영하 4도까지 내려가자 연료와 윤활유의 순환계통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낮은 온도에 윤활유가 굳으면서 기계 작동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선원들은 별도 보온과 히터 장치로 대응했다.
고위도에서는 GPS 위치 정보가 일시적으로 끊기거나 나침반 오차가 커지기도 했다. 통신 역시 위성통신과 저궤도 위성, 스타링크 등 여러 수단을 준비한 덕분에 비상연락망을 유지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다른 복병이 기다렸다. 북극해를 벗어난 뒤 기상이 악화하면서 컨테이너선이 10도 이상 기울어지는 ‘롤링’이 상당 시간 이어졌다. 태풍의 영향으로 항로를 바꿔 쿠릴열도 안쪽을 거쳐 동해로 빠져나오기도 했다.
22일 해양수산부 기자단과 간담회를 진행 중인 북극항로 시범운항 관계자들. 사진 왼쪽부터 팍지정 팬스타 아크로호 일등 항해사, 오행록 해양수산부 북극항로추진본부 부본부장, 김정달 팬스타라인닷컴 이사, 권영태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수. ⓒ해양수산부
혹독한 여건은 선원들도 혹사시켰다. 특히 짧은 기간에 여러 경도를 이동하면서 생체리듬이 무너졌다. 선원들은 새벽에 잠들지 못한 채 배 안을 서성였고, 오후 3시면 해가 지고 새벽 2시에 해가 뜨는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유빙을 피해 우회하고 항해 속도를 조절하면서 일정이 늦어졌다. 그럼에도 수에즈 항로보다 운항 거리 약 35%, 운항 기간 약 10일을 단축했다.
난관을 뚫은 결과는 ‘성공’이다. 다양한 예측불가 상황이 오히려 경험치를 쌓아줬다. 쇄빙선 도움 없이 바다를 헤쳐 나갔고, 사상 첫 북극항로 운항 데이터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번 시범운항은 북극항로가 미래 상업 운항로로 발전할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빠르면 2030년, 늦어도 2050년에는 북극항로는 상업운항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까지 나왔다.
권영태 한국해양수산연구원 교수는 “출항 전 오랫동안 북극항로 교육과 훈련을 준비했지만, 실제 항해 데이터 확보가 어려웠다”며 “이번에 위성으로 분석한 아이스 차트를 토대로 유빙이 밀집한 구간에 진입하기 전 우회 항로를 검토하고, 실제 항해 결과와 비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2일 열린 해양수산부 기자단 간담회에서는 북극의 여름철 해빙이 줄어드는 추세가 이어지면 2030년께 여름철 항로 활용 여건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물론 해빙이 매년 일정하게 줄어드는 건 아니고, 유빙의 밀집도와 크기, 기상에 따라 항해 조건도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어도 2050년은 북극항로 상업화가 확실하다는 게 전문가들 공통된 의견이다. 해수부는 짧은 기간 내 항해 데이터와 선원 경험, 선박 기술을 축적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향후 북극항로 운항 가능 기간과 항로 선택지를 넓힐 자료가 된다.
오행록 해수부 북극항로추진본부 부본부장은 “이번 시범운항을 통해 쇄빙선 이용 없는 북극항로 통항 실증과 참여 업계 및 관계 기관 역량 강화의 성과를 거뒀다”며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축적하고 나아가 선박과 경로, 화물 등을 다양화하는 한편, 내빙선박 도입 지원, 쇄빙 컨테이너선 기술개발 추진 등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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