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자동차·철강 등에 87억캐나다달러 규모 지원책 발표
현지 자동차 생산 투자 지원·캐나다산 철강 공공조달 우대
현대차그룹, 미국 중심 생산 확대 속 북미 공급망 전략 주목
현지 생산 여부 따라 韓기업 부담 커질 수도
지난 9월 4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 도널드슨빌에서 열린 HPLS 전기로 제철소 기공식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이 공장 건설을 알리는 첫 삽을 뜨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트로이 카터 연방 하원의원,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윌리엄 키밋 상무부 국제무역담당 차관, 이보룡 현대제철 사장.ⓒ현대제철
미국의 고율 관세에 대응해 현지 생산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북미 시장에서 또 다른 변수를 마주했다. 미국과 자동차·철강 공급망을 공유하는 캐나다가 자국 제조업 보호를 위한 대규모 지원책을 내놓으면서다.
현대차와 현대제철이 미국을 중심으로 생산기지를 재편하는 가운데, 북미 국가들이 잇따라 자국산 우대 정책을 강화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현지화 전략도 한층 복잡해질 전망이다.
캐나다 연방정부와 온타리오주 정부는 지난 21일(현지시간) 자동차·철강·핵심광물 산업에 총 87억캐나다달러(한화 약 8조2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는 산업 지원책을 발표했다.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타격을 입은 자국 제조업을 보호하는 동시에 생산시설 현대화와 공급망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분야별로는 철강산업에 52억2000만캐나다달러(약 4조9000억원), 자동차산업에 25억캐나다달러(약 2조3500억원)가 배정됐다. 이와 별도로 캐나다 연방정부는 온타리오주 북부 핵심광물 개발을 위한 도로 인프라 구축에 최대 10억캐나다달러(약 940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향후 2년간 대규모 설비투자를 지원한다. 기존 생산라인을 현대화하고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등 미래차 생산에 필요한 설비를 구축하도록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완성차 조립뿐 아니라 부품 생산 등 자동차 공급망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철강 분야에서는 생산설비 현대화와 제품 다변화, 해외시장 개척 등을 지원한다. 특히 캐나다산 철강을 공공조달에서 우선 사용하도록 하고 수입 철강에 대한 덤핑 및 불공정 보조금 감시도 강화하기로 했다.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자국 철강업체의 내수 기반을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이번 조치는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북미 제조업 공급망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발표돼 주목된다. 미국과 캐나다는 자동차와 철강산업에서 긴밀하게 연결돼 있지만, 미국이 자국 생산 확대를 압박하면서 캐나다 역시 제조업 기반을 지키기 위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미국 현지화에 집중해 온 국내 기업들의 북미 사업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생산공장을 구축하는 등 현지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는 반면, 캐나다에서는 상당한 판매 기반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생산시설은 운영하지 않고 있다. 현대차·기아·제네시스의 지난해 캐나다 판매량은 약 25만대로, 캐나다는 현대차그룹의 주요 해외 판매시장 중 하나다.
캐나다 정부가 자동차 생산시설 투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면서 완성차업체들의 경쟁 조건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현지 공장을 보유한 업체는 투자 인센티브를 활용해 생산 경쟁력을 높일 수 있지만, 수입 판매에 의존하는 업체는 상대적으로 지원 혜택에서 멀어질 수 있어서다.
현대제철 미국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 모형 사진ⓒ현대제철
현대차그룹의 철강 계열사인 현대제철에도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현대제철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제철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자동차 생산 확대에 맞춰 자동차강판 공급망을 현지화하기 위한 투자다.
캐나다가 자국 철강업체의 설비 현대화를 지원하면서 북미 철강시장의 경쟁 구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캐나다산 철강의 공공조달 우대까지 강화되면 수입 철강의 입지는 좁아질 수 있다. 현지 철강업체에 대한 대규모 지원 역시 한국산 철강의 경쟁 부담을 높일 전망이다.
현대제철은 강관사업에서도 이미 캐나다의 무역규제에 직면해 있다. 강관사업 자회사인 현대스틸파이프가 반덤핑 규제 대상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국경관리청은 지난 3월 한국산 유정용 강관에 대한 조사에서 현대제철 제품의 덤핑을 최종 판정했다. 이달에는 송유관용 강관의 수출가격 등에 대한 행정재심사 기간도 연장했다. 캐나다 시장에서 강관 수출을 확대하는 가운데 규제 부담까지 커지고 있는 셈이다.
캐나다 정부는 자국 철강업체들에게 캐나다 내수와 미국 이외의 해외시장으로 판로를 확대하도록 지원하는 등 미국 수출 의존도를 낮추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현지 업체들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동시에 수입산에 대한 규제도 강화되면서 국내 철강업체들의 수출 여건은 더욱 까다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국내 철강업체에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앞세운 차별화 전략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범용 제품의 가격 경쟁보다는 기술력이 요구되는 제품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하성용 중부대학교 교수 겸 한국자동차모빌리티안전학회 회장은 "캐나다의 이번 투자 패키지는 내수 보호와 공급망 자립이 핵심"이라며 "철강 부문에서는 공공조달 배제와 수입 규제 강화로 단순 수출 타격이 우려되는 만큼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차별화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캐나다 정부가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 기준 강화를 2029년형까지 유예하기로 한 점도 주목된다. 전기차 전환 속도를 조절할 여지가 생기면서 완성차업체들의 생산·판매 전략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하 교수는 "자동차 부문에서는 북미 현지 공급망 내에 얼마나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에 따라 명암이 갈릴 것"이라며 "2029년까지 전기차 전환 관련 규제가 동결되는 만큼 이에 맞춘 유연한 품목 대응이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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