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성분 대신 전달 기술로 개발 부담 낮춰
2033년 '730조' 시장 놓고 빅파마도 선점 경쟁
대웅바이오 3공장 ⓒ대웅제약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들이 '약물 전달 기술(DDS)'에서 새 승부처를 찾고 있다. 신약 개발은 시간과 재원 측면에서 막대한 투자가 불가피하다. 반면 검증된 약물 성분에 치료 편의성을 더한 전달 기술을 적용하면 부담은 낮추고 경쟁력은 높일 수 있다. 새로운 제형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DDS만 전문적으로 개발해 제약사에 기술수출(L/O)하는 바이오텍도 늘어나고 있다.
'마이크로니들' 생산기지 세우는 대웅제약
21일 업계에 따르면 대웅제약은 경기 화성 대웅바이오 3공장에 마이크로니들 전용 무균 제조소를 설립할 예정이다. 생산 품목은 대사질환 신약 후보물질 ‘DWRX5003’의 임상용 시제품이다. 비만약 위고비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를 마이크로니들 패치에 담아 투약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마이크로니들은 주사나 경구제(알약)을 대체할 차세대 약물전달기술(DDS)로 꼽힌다. 피부 각질층에 파고든 미세바늘이 분해되면서 약물이 몸 안으로 흡수되는 구조다. 바늘이 짧아 주사와 달리 통증이 없다. 환자가 직접 부착할 수 있어 편리하고 위장관을 거치지 않아 약물 흡수율도 높다.
투여 횟수를 줄이는 방향도 꾸준히 주목받고 있다. 당뇨 같은 만성질환일수록 투약 주기를 늘리면 치료를 꾸준히 이어가기 쉽다. 동국제약은 미립구 기술을 20년 넘게 발전시켜왔다. 약물을 마이크로 크기의 생분해성 알갱이(미립구)에 담아 체내에서 천천히 흡수되도록 하는 방식이다.한미약품도 약물이 몸에서 분해되는 속도를 늦춰 반감기를 늘리고 약효를 오래 유지하는 장기 지속형 플랫폼 '랩스커버리'를 개발했다.
이처럼 DDS는 약물이 체내에 흡수되는 속도나 경로를 바꿔 치료 효과와 편의성을 높이는 기술이다. 이점은 환자에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다른 제약사가 ‘신약’으로 출시한 성분이라도 제형을 바꾸면 ‘개량신약’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서다. 개량신약은 제네릭 등 복제약보다 높은 약값을 받을 수 있다.
국내 제약사를 넘어 글로벌 빅파마까지 DDS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특히 마운자로 이후 차세대 비만 치료제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가열되면서 관련 수요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카이퀘스트는 2033년 글로벌 DDS 시장이 약 730조원(5489억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지수 다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빅파마가 장기지속형 기술 도입과 적용 약물 확대에 나서면서 DDS 플랫폼 수요는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며 "다만 약물마다 특성과 필요한 용량이 다른 만큼 기존 물질에서 확보된 성과가 다른 물질에서도 재현되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테오젠 본사 ⓒ알테오젠
알테오젠 쫓아 '기술수출' 노리는 바이오텍
수요가 늘어나면서 DDS 기술만 별도로 개발하는 바이오텍도 늘어나고 있다. 바이오텍의 자금과 인력 구조 등을 감안하면 특정 기술에 집중하는 것이 유리하기도 하다. 일단 기술을 확보하면 여러 제약사에 반복해서 기술수출할 수 있는 만큼 안정적인 수익도 기대된다.
좋은 선례가 알테오젠이다. 알테오젠은 정맥주사(IV)를 피하주사(SC)로 바꾸는 재조합 인간 히알루로니다제 플랫폼 ‘ALT-B4’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까지 알테오젠이 글로벌 빅파마와 맺은 기술수출 계약은 누적 11건에 달한다. 올해 체결한 계약만 최대 6조원이다. ALT-B4를 적용한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SC 제형에서는 이미 판매 로열티도 나오고 있다.
다만 알테오젠처럼 판매 로열티까지 받는 DDS 기술 바이오텍은 아직 드물다. 지투지바이오는 미립구 기반 DDS 기술 '이노램프'를 적용한 비만 치료 신약 후보물질 2종을 삼성바이오에피스에 기술수출했다. 인벤티지랩은 유한양행과 함께 미립구 기반 DDS 기술 'IVL-드럭플루이딕'을 도입한 월 1회 비만약 'IVL3021'을 개발하고 있다.
유망한 기술이 기술수출로 이어지려면 검증이라는 관문을 넘어야 한다. DDS 기술이 몸속에서 설계대로 작동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균일한 품질로 대량생산이 가능한지도 보여줘야 한다. 자금과 인력이 빠듯한 바이오텍이 홀로 넘기에는 어려운 과제다. 임상 검증과 생산공정 개발을 개별 기업에 맡기지 말고 정책 차원에서 함께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오기환 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 센터장은 “유망한 DDS 기술이 수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개별 바이오텍 대상의 연구개발(R&D) 지원과 함께 임상 시험을 통한 기술 검증, 생산 공정 개발, 품질관리 역량 확보 등을 연계하는 정책적 지원이 중요하다”며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바이오텍 간 협업 기회를 확대하는 방식의 산업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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