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실험 넘어 임상까지 'HARP 2.0' 확장 추진
로슈 '3.2조' 기술수출로 AI 신약 개발 역량 입증
한미약품 본사 ⓒ한미약품
한미약품이 자체 인공지능(AI) 플랫폼 ‘HARP’ 기반 신약 파이프라인의 성공을 계기로 앞으로 임상시험 단계까지 HARP의 적용 영역을 넓힌다. 나아가 비만약을 넘어 항체약물접합체(ADC) 등 차세대 모달리티(약물 유형)까지 적용 대상도 넓힌다. 이번에 글로벌 빅파마 로슈에 ‘HM17321’을 약 3조2000억원(23억 달러) 규모로 기술수출한 성과를 올린 만큼 충분한 기술력을 갖췄다는 자신감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자체 AI 신약개발 플랫폼을 ‘HARP 2.0’으로 고도화할 방침이다. 아직까지 HARP는 신약 후보물질 발굴(설계)과 동물 대상 전임상 실험 단계에만 사용되고 있다. 이제 본격적인 임상 단계까지 포괄해 신약 파이프라인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AI를 활용해 신약 개발에 나서는 건 글로벌 제약 바이오 업계의 공통된 흐름이다. HARP의 강점은 동물 대상 전임상 단계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물 실험에서 나타나는 약효와 독성은 명확한 법칙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실험 데이터도 적다. 전임상 실험까지 활용 가능한 신약 개발 AI 플랫폼이 적은 이유다.
한미약품은 실험실과 AI 플랫폼을 연계하는 구조로 공백을 채웠다. HARP로 발굴한 유망 후보물질을 직접 합성해 동물 실험으로 약효를 검증한다. 도출된 실험 결과를 다시 AI 플랫폼에 학습시켜 시간이 지날수록 예측 정확도를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전임상 실험 결과를 가장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는 제약사의 장점이 십분 발휘됐다.
적은 데이터만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다. 신약 후보물질의 핵심은 단백질 등 병의 근본 원인에 약물이 얼마나 잘 달라붙어 작용하느냐다. HARP는 메타의 단백질 언어모델 ‘ESM-2’에 한미약품이 자체 실험으로 쌓은 수십 건의 데이터를 더해 완성했다. 목표 적응증(치료 범위)에 맞는 유망 신약 후보물질을 설계하는 데 강점을 보인다.
이번에 로슈 계열사 제넨텍에 기술수출(L/O)한 ‘HM17321’도 HARP로 설계했다. 비인크레틴 계열 비만약인 HM17321은 CRFR2 수용체를 자극해 근육은 살리고 지방은 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문제는 약물이 작동하는 과정에서 표적이 아닌 CRFR1 수용체에도 달라 붙기 쉽다는 점이다. 이때 HARP는 물질의 서열을 정교하게 다듬어 목표 수용체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도록 도왔다.
대표적인 도입 효과는 개발 속도다. 실제로 적응증에 가장 잘 맞는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선도물질’ 발굴 단계는 이전보다 3배 이상 빨라졌다. 임상 시험에 들어가기 위한 임상시험계획(IND) 제출까지 걸리는 기간도 2배 이상 짧아졌다. 예시로 HM17321은 다른 파이프라인과 비교해 임상 1상에 진입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절반까지 줄였다.
초기 임상 시험은 신약 개발의 가장 큰 문턱으로 꼽힌다. 동물 실험에서 확인됐던 약효가 임상 시험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흔해서다. 임상 시험에 진입한 신약 후보물질이 품목허가까지 받을 확률은 10%가 안 된다. 동물 단계에서 임상 시험의 성패를 미리 예측해 연구개발(R&D)에 투입되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미약품은 영국 바이오뱅크로부터 약 5만 명의 혈액 단백질(프로테옴) 데이터를 확보해 AI 모델을 구축했다. 신약 후보물질을 투약한 동물의 프로테옴을 뽑아 사람 프로테옴 기반 AI 모델에 대입하면 사람에게서 어떤 효과가 날지 미리 예측할 수 있다. 별도 보정으로 종의 차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줄이는 구조다.
신약 개발 범용 AI 플랫폼으로 키우기 위해 다양한 약물 유형으로 활용 범위도 넓힌다. 지금까지 HARP는 펩타이드 기반 대사질환 신약 파이프라인 설계에 주로 적용돼 왔다. 앞으로는 항체약물접합체(ADC), 메신저리보핵산(mRNA) 등 다양한 차세대 약물 유형까지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HM17321는 펩타이드 작용제로써 AI로 설계한 물질이 임상에 도달한 글로벌 첫 사례”라며 “이를 발굴한 HARP는 AI 예측과 실험 검증, 재학습을 반복하는 '랩 인 어 루프(lab-in-a-loop)' 방식을 적용해 수십 건의 데이터만으로도 예측력을 끌어올린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토대로 전임상 실험에서 초기 임상 시험 단계까지 필요한 AI 도구들을 모아 HARP 2.0 이라는 프랜차이즈로 개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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