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AI·융복합 K뷰티 육성 본격화
민간과 사업 중복·실효성에 의문 제기
업계 "규제 완화·금융 지원에 집중해야"
올리브영 미국 패서지나점 개점 첫날 매장을 찾아 K뷰티 제품을 구매하는 현지 소비자들ⓒ올리브영
정부가 K뷰티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AI)과 데이터 기반의 맞춤형 화장품 육성 등 전방위적인 지원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지원 방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민간기업들이 이미 기술 개발과 시장 개척을 주도하고 있는 만큼 기존 사업과의 중복을 최소화하고, 규제 완화와 금융 지원 등 기업들의 실질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는 정책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4일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서비스산업발전 태스크포스(TF)에서 'AI·융복합 K-뷰티 서비스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화장품 제조 중심의 K-뷰티 산업을 AI·데이터와 관광·쇼핑, 의료 서비스 등이 결합한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으로 확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정부의 이 같은 지원 방향에 대해 업계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맞춤형 화장품 시장이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만큼 기술 개발과 규제 개선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업계는 이미 민간기업들이 관련 기술 개발과 시장 개척을 주도하고 있는 만큼, 정부 정책이 민간의 성과를 뒤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산업의 실질적인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 아모레퍼시픽은 AI 피부 진단과 맞춤형 화장품 제조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4월 문을 연 '아모레용산'에서는 고객의 피부톤과 취향에 맞는 파운데이션과 쿠션 등을 즉석에서 제조하고, 6월 개장한 '라네즈 서울'에서는 AI 피부 분석을 기반으로 25가지 조합의 맞춤형 스킨케어 제품을 제공한다.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들도 독자적인 기술과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한국콜마는 AI를 활용한 피부 진단과 맞춤형 화장품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콜마는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얼굴 사진을 분석해 맞춤형 화장품을 추천하는 AI 피부 진단 플랫폼 '아임(I'MMM)'과 피부 미생물의 균형을 분석해 개인별 스킨케어 솔루션을 제안하는 '카이옴(CAIOME)' 등을 개발했다.
특히 피부 상태와 색상을 분석해 개인에게 맞는 화장품을 분사하는 뷰티 디바이스 '스카(SCAR)'는 올해 CES에서 뷰티테크 부문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코스맥스는 2011년부터 피부 마이크로바이옴(미생물 생태계) 연구를 진행하며 AI를 활용해 피부 미생물을 분석하고, 개인별 피부 상태에 맞는 화장품을 개발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최근에는 건강보험 데이터 등을 연계한 AI 기반 원형탈모 진단·예측 기술로 연구 범위를 확대했다.
지난해에는 AI 피부 진단을 바탕으로 기초·색조 화장품을 맞춤형으로 제조하는 콘셉트 기기를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에서 선보여 수상하기도 했다.
이처럼 민간기업들이 자체 기술과 데이터를 축적하며 시장 확장에 나서고 있는 만큼 정부의 지원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책적 디테일을 보완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정부는 홍대·명동·부산의 K-뷰티 체험·홍보관에서 AI 피부진단과 가상 메이크업 등을 제공하고, 경주와 제주에는 뷰티 체험·홍보와 해외 바이어 상담을 결합한 K-뷰티 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충북 오송에는 2027년 상반기 K-뷰티 아카데미를 열어 연평균 1900명의 전문인력을 양성한다.
그러나 이미 아모레퍼시픽 등이 주요 화장품 기업들이 AI 피부진단과 맞춤형 화장품 체험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공 체험관이 민간의 서비스를 반복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역 클러스터 조성의 효율성 역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충북 오송·오창, 경기 오산·화성, 경북 경산, 전북 남원 등 전국 곳곳에 화장품 산업 기반이 구축돼 있는 상황에서 경주와 제주에 새로운 클러스터까지 조성할 경우 정책 역량과 예산이 분산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신규 거점 확대보다는 기존 인프라를 연계하고 지역별 역할을 명확히 해 지원 효과를 높여야 한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 예산으로 새로운 시설을 늘리는 것보다 기존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기업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분야에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피부 데이터 지원 역시 기업들의 실제 활용 가능성이 관건이다.
정부는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이 2011년부터 축적한 18개국 1만7000여명의 피부 특성 정보를 AI 학습에 적합한 형태로 개편해 기업에 제공하기로 했다. 2027년까지 조사 대상국도 19개국으로 확대한다.
다만 업계에서는 데이터의 양을 늘리는 것 못지않게 기업들이 연구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의 질과 구체성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미 주요 기업들이 국내외 소비자의 피부 데이터를 자체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만큼 기존 자료와 차별화된 심층 정보가 제공돼야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표본이 1만명이라고 해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가령 인도네시아인 1000명의 피부를 지성이나 건성 등으로 분류한 수준이라면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확보한 데이터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부 질환 등 보다 구체적인 정보가 포함돼 있다면 활용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며 "결국 데이터의 질을 살펴봐야 개별 기업에서 활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5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서울국제화장품·미용산업박람회를 찾은 외국인 관람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자료사진). ⓒ뉴시스
이에 업계에서는 이번 대책에 포함된 규제 완화와 금융 지원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간기업들이 이미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만큼 기술 지원사업 등을 확대하기보다는 기업들이 확보한 기술을 실제 사업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2026년부터 2027년까지 72억원을 투입해 맞춤형 화장품의 품질·공정 관리를 지원하는 AI 에이전트를 개발할 계획이다.
또 AI·자동화기기를 활용할 경우 맞춤형 화장품 조제관리사 1명이 여러 매장의 원료·기구 등에 대한 품질·위생 관리와 완제품 안전성 관리를 맡을 수 있도록 규제 개선도 추진한다.
현재는 매장마다 조제관리사가 상주해야 하지만, 규제가 완화되면 기업들의 인력 운영 부담을 줄이고 맞춤형 화장품 서비스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 지원도 확대한다. 정부는 한국콜마·코스맥스와 공동 조성한 430억원 규모의 글로벌 K-뷰티 공동펀드 투자를 이어가는 한편, 뷰티테크 스타트업과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의 협업을 촉진하기 위해 250억원 규모의 오픈이노베이션 벤처펀드를 조성한다.
우수 기술을 보유한 화장품 기업에는 올해 1200억원 규모의 우대보증을 지원한다. 보증비율은 기존 85%에서 최대 95%로 높이고 보증료율은 0.2%포인트 낮춘다.
이 같은 지원은 기술 개발에 성공하고도 사업화에 필요한 자금이나 인력 운영 부담 등으로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맞춤형 화장품은 오래전부터 연구개발을 진행해 왔지만 소비자들에게 아직 낯설고 고객사들도 사업화에 주저하는 시장"이라며 "정부 지원을 통해 맞춤형 화장품 시장이 대중화되고 규모가 커진다면 긍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