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위기론, 유행 좇는 기획은 책임 없나…이수만 걸그룹이 던진 질문 [가요 뷰]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10.19 08:27  수정 2026.10.19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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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세계시장 확장 논의 속 음악과 무대의 경쟁력도 점검해야

‘니온’·뉴진스의 다른 선택이 보여준 기획자의 역할

좋은 인력과 예산을 결과물로 완성하는 안목의 중요성

케이팝(K-POP)의 성장 한계를 논할 때, 음악을 만드는 기획자의 책임도 함께 물어야 한다. 시장을 넓힐 시스템과 정부 차원의 지원 플랫폼을 마련하는 일만큼이나 소비자가 새로운 팀을 선택해야 할 명확한 음악적 이유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수만 A2O 프로듀서가 제작한 신인 걸그룹 에이투오 라이트(A2O LITE)의 반응은 지금의 기획자들이 어떤 음악과 무대를 내놓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A2O LITE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18일 음원 플랫폼 멜론에 따르면 에이투오 라이트의 데뷔곡 ‘니온’(NEON)은 이날 오후 8시 기준 멜론 TOP100 1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11시 공개된 지 29시간 만에 정상에 오른 에이투오 라이트는 2021년 8월 차트 개편 이후 신인 그룹 데뷔곡으로는 최단기 1위 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성과가 더욱 눈에 띄는 이유는 최근 업계 전반에 퍼진 ‘케이팝 위기론’과 정부 차원의 지원 논의가 국회에서 불거진 직후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는 “케이팝이이 세계적 인기를 얻어가는 과정에서 이제 성장 한계에 다다랐다는 위기의식을 가요계가 공통으로 느끼고 있다”며 “대형 4대 기획사의 연합과 민관 협업을 통해 대형 글로벌 플랫폼 및 시스템을 구축해 다음 단계로 도약해야 한다”고 국회에 피력했다.


그러나 박진영 프로듀서가 피력한 ‘성장 한계론’과 민관 협업 논의 속에서 등장한 에이투오 라이트의 돌풍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시장 확장과 제도적 지원에 앞서 케이팝의 본질인 음악의 퀄리티와 제작자의 안목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점이다. 기존에 성공한 콘셉트를 안일하게 반복하거나 화제가 될 만한 숏폼 요소를 조합하는 것만으로는 소비자가 새로운 팀을 선택할 이유를 만들어낼 수 없다.


A2O LITE 아이찡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니온’의 폭발적인 반응에서 주목할 부분 역시 음악과 무대의 완성도다. 에스파(aespa)의 ‘슈퍼노바’(Supernova), 엔시티 127(NCT 127)의 ‘영웅’(Kick It) 등을 만들어온 뎀 조인츠(Dem Jointz)와 H.O.T부터 에스파까지 SM엔터테인먼트의 대표곡을 작곡한 유영진이 참여한 ‘네온’은 묵직한 베이스와 반복되는 후렴을 중심으로 멤버들의 보컬과 화음을 정교하게 배치하고 아카펠라를 더한 것이 특징이다. 고음과 후반부의 연쇄적인 변화는 곡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네온’이라는 같은 문구가 반복되는 가운데 목소리를 쌓고 전개를 바꾸면서 듣는 감각을 달리하는 구성이다.


무대에서는 아홉 멤버가 대형을 끊임없이 바꾸며 음악의 전개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초반부터 휘몰아치는 고난도의 댄스 브레이크에서는 군무의 압도적인 힘을 드러내고 표정과 동작의 강도를 곡의 분위기에 섬세하게 맞춘다. 보컬이 만들어내는 음색의 변화와 여러 사람이 합을 맞춰 움직이는 장면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하나의 팀이 어떤 음악을 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수만 A2O 프로듀서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이러한 보컬과 군무의 결합은 이수만, 유영진 프로듀서가 오랫동안 발전시켜온 클래식한 표현 방식이다. 과거 케이팝을 견인했던 제작 문법이 현재 신인의 선명한 정체성을 설명하는 핵심 재료가 된 셈이다. 유행하는 요소를 얼마나 많이 그러모았느냐보다 제작자가 가장 잘하는 음악을 어떤 완성도로 끌어올렸느냐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 프로듀서 역시 지난 1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에이투오 라이트 글로벌 데뷔쇼에서 “케이팝 그룹이 가수라고 불리는 한 결국 가장 중요한 시작은 ‘곡’이라고 생각한다”며 “기존과 다르다는 느낌도 곡에서 시작해야 하며 차이를 만드는 데서 나아가 사람들이 결과물을 좋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진스 ⓒ어도어

제작자의 독창적인 안목과 선택이 시장의 흐름을 바꾼 사례는 2022년 뉴진스(NewJeans)의 데뷔에서도 이미 확인된 바 있다. 강한 걸크러시와 거창한 세계관을 내세운 팀들이 시장을 점유하던 당시, 민희진 어도어 전 대표는 소녀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듯한 영상과 자연스러운 스타일링, Y2K 이미지를 음악과 결합했다. ‘어텐션’(Attention)과 ‘하입 보이’(Hype Boy)의 뮤직비디오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춤추는 모습은 팀의 음악적 색채를 직관적으로 구체화했고 옷차림과 영상, 음악을 하나의 일관된 방향으로 연결해 가요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이후 뉴진스는 후발 그룹들의 성패를 비교하는 기점이 됐다. 특히 2024년 빌리프랩 소속 아일릿(ILLIT)의 기획을 두고 뉴진스의 콘셉트와 스타일링을 답습했다는 논란이 일며 케이팝 업계는 유례없는 소송전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논쟁은 성공한 공식을 어디까지 복제할 것인지와 함께 새로운 팀의 정체성을 어떻게 구별하고 설명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남겼다. 성공한 팀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많을수록 제작자는 자신의 선택이 왜 필요한지 대중에게 더 구체적으로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뉴진스와 에이투오 라이트가 제안한 음악과 이미지는 극과 극으로 다르다. 그러나 두 사례의 공통점은 제작자의 명확한 취향과 소신 있는 판단이 결과물 전반에 짙게 반영되어 있다는 데 있다. 뉴진스의 성공에서 배울 점을 단순한 ‘Y2K 스타일링’으로 좁혀 받아들이거나 ‘네온’의 인기를 단지 ‘고음과 강한 군무의 자극’으로만 해석한다면 기획자들은 또다시 껍데기만 흉내 내는 외형 추종에 빠지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체성을 가진 팀을 만들 것인지를 먼저 정의하고 음악과 무대, 이미지를 그에 맞춰 정교하게 완성해 내는 기획 역량이다.


A2O LITE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그러나 이러한 기획 역량은 유명 창작자를 섭외하거나 제작 예산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확보되지 않는다. 복수의 가요계 관계자들은 “실무진이 아무리 신선하고 기발한 방향을 제안해도 최종 결정권을 쥔 최고경영진이나 메인 프로듀서의 안목에 따라 무산되거나 기존 성공 공식대로 수정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유명 감독과 기획자를 기용하더라도 최종 결정권자의 미적 감각과 판단이 최신 트렌드와 팬들의 기대를 읽지 못하면 결과물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유행하는 이미지가 왜 관심을 얻었는지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겉모습만 가져와서는 자기 팀만의 개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또한 자신의 고집이나 취향만을 고수하는 것도 답이 아니다. 팀의 특성에 맞는 명확한 기조를 세우고, 현장 실무진의 전문적인 제안을 그 방향성에 맞춰 어떻게 구체화하고 다듬어낼지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분명한 기획 기조를 갖는 일에는 자신의 판단을 냉정하게 검토하는 과정도 포함된다. 창작자의 제안과 청취자의 반응을 다각도로 살피면서 어떤 요소를 고수하고 무엇을 과감히 바꿀지 결정해야 한다. 제작자 고유의 방향성 없이 현장의 전문성을 죽이거나 반대로 유행을 베끼기에만 급급하다면 아무리 훌륭한 인력과 자본을 투입한다 한들 케이팝의 경쟁력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


이번 ‘니온’의 반응을 보고 또다시 ‘이수만식 2000년대 SM 음악’만을 새로운 성공 공식으로 삼아 복제하려 든다면 제작의 선택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케이팝의 성장 기반을 확장하려는 산업적 노력과 더불어 각 팀이 대중에게 선택받을 명확한 음악적 이유를 만드는 기획자들의 책임감도 함께 이어져야 한다. 더 많은 글로벌 시장으로 진입할 길을 찾는 만큼 그곳에서 들려줄 음악 자체의 깊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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