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외로운 날 찾아온, 당신이 나에게 준 선물 '해피 버스데이 투' [쇼트 시네마(176)]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10.18 12:13  수정 2026.10.1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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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아무도 없는 담벼락 앞에서 한 남자(강이석 분)가 홀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축하해 줄 이 하나 없는 처지가 서글퍼져 노래를 멈춘 순간, 담벼락 너머에서 “혼자 오셨나 봐요?”라는 낯선 여자(임세미 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남자는 고등학생이지만 생계를 위해 일찍 사회로 나왔다. 또래보다 일찍 세상에 던져진 탓에 고단한 나날을 보내는 그에게 유일한 낙은 짝사랑하는 여자다. 남자가 연애 고민을 털어놓자, 담벼락 너머의 여자는 먼저 고백해 보라며 용기를 북돋운다. 얼굴도 모르는 두 사람은 어느새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해피 버스데이 투' 스틸ⓒ

이번에는 남자가 여자의 사연을 물어본다. 결혼을 앞둔 여자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추억하기 위해 아버지가 생전 즐겨 찾던 이곳을 방문했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한 사람의 아내가 될 만큼 성장했지만, 정작 가장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 아버지는 곁에 없다. 여자는 결혼식에서 아버지 대신 시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게 되었다며, 혹여 아버지가 서운해하진 않을까 마음이 쓰인다고 말한다.


남자는 아버지가 결코 서운해하지 않을 거라며 여자를 다정하게 위로한다. 딸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할 것이라는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고민을 나누고 때로는 장난스레 투닥거리던 두 사람은 짧은 대화 속에서 뜻밖의 위안을 얻는다. 여운을 뒤로한 채 얼굴이라도 보고 헤어지자며 담벼락을 넘어가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두 사람이 마주한 것은 같은 공간이었지만, 서로 다른 시간이었다. 고단한 청춘을 지나던 남자는 훗날 여자의 아버지가 될 사람이었고, 결혼을 앞둔 여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의 딸이었다. 대화 중 여자가 추천했던 딸의 이름 '예영' 역시 아버지가 지어준 자신의 이름이었다. 처음엔 촌스럽다며 웃던 남자가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라는 말에 금세 태도를 바꿔 예쁘다고 말하는 대목은,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나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이후 남자는 여자의 응원에 힘입어 짝사랑하던 상대에게 고백해 사랑을 이룬다. 시간이 흘러 딸의 탄생을 기다리는 남자는 아이의 이름을 '예영'이라 짓기로 한다. 미래의 딸이 과거의 아버지에게 자신의 이름을 선물한 셈이다.


작품은 시간의 간극을 넘어선 특별한 만남을 통해 위로의 힘을 전한다. 남자는 평생 사랑할 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고, 여자는 그리운 아버지의 가장 외롭고 막막했던 시절에 따뜻한 온기를 더해주었다. 서로의 정체를 몰랐기에 속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었고, 그때 나눈 언어들은 각자의 삶에 오랫동안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서로의 다가올 미래를 응원한다는 사실이다. 딸은 아버지가 사랑을 시작할 용기를 안겨주며 그의 앞날을 응원하고, 아버지는 딸이 죄책감 없이 행복한 결혼을 맞이하도록 그녀의 미래를 축복한다. 훗날 아버지가 딸의 삶을 지탱해 준 것처럼, 딸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젊은 날 아버지의 미래를 먼저 다독여준 셈이다.


이 작품의 참된 따뜻함은 서로를 위로했다는 것조차 모른 채 각자의 계절로 돌아간다는 데 있다. 남자에게는 낯선 여자의 응원으로 남아있을 하루가, 여자에게는 이름 모를 청년에게 받은 짧은 온기로 남는다. 하지만 관객은 안다. 그날 담벼락을 넘어 건네진 말들이, 실은 서로를 향한 가장 깊은 사랑이었음을. 러닝타임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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