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보다 창원·거제 먼저…재계가 바꾼 공연 지형 [K클래식 뒤의 기업들㊦]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6.10.18 06:00  수정 2026.10.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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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바로크 공연 창원·거제가 서울보다 먼저…지역 무대 확대

롯데는 도심 야외 무료 공연…GS는 음악제로 관객 접점 넓혀

세아는 오페라 인재 육성…에쓰오일은 장애인 연주자 고용까지

포항제철소 포스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지난 4월 포항 호텔 영일대 잔디광장에서 찾아가는 클래식 '영일대 블라썸' 연주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포스코

다음 달 22일 경남 창원 3·15아트홀. 프랑스 바로크 앙상블 '르 포엠 아르모니크'가 창단 28년 만의 첫 내한 공연을 연다. 이틀 뒤엔 거제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선다.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은 그 뒤인 26일이다. 해외 정상급 연주단체의 공연을 지방 관객이 서울보다 먼저 듣는 셈이다.


기업의 클래식 후원이 연주자를 키우는 데서 나아가 들을 사람을 찾아 나서고 있다. 서울에 집중된 공연을 사업장이 있는 지역으로 확대하고 공연장 밖 광장에도 무대를 마련한다. 무료 공연으로 관람료 부담을 덜고 오페라나 장애인 연주자처럼 지원이 필요한 영역에 집중하는 기업도 있다. 공연을 어디서 누구에게 들려주느냐가 기업별 후원 방식을 가르는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한화그룹이 11월 경남 창원·거제와 서울에서 클래식 공연 '한화클래식 2026'을 개최한다. 이번에 공연에 나서는 르 포엠 아르모니크의 모습.ⓒ한화
사업장 있는 곳으로…포스코·HD현대에서 한화까지

사업장 소재 지역에서 공연을 제공해 온 대표적인 기업은 포스코다. 포스코는 1980년 포항에 효자아트홀을, 1992년 광양에 백운아트홀을 열었다. 효자아트홀은 2024년까지 1400회가 넘는 무료 공연을 열며 제철소 도시의 문화공간 역할을 해왔다.


HD현대중공업도 1998년 문을 연 울산 현대예술관을 통해 지역 클래식 공연을 지원해 왔다.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등 유명 연주자들의 공연을 유치했고, 2007년에는 울산대학교와 협력해 USP챔버오케스트라 창단을 지원했다. 지역 음악단체에 연습 공간과 공연 무대도 제공해 왔다.


한화도 올해 주요 사업장 소재 지역으로 클래식 공연을 확대했다. 2013년부터 이어온 '한화클래식'을 처음으로 경남 창원과 거제에서 개최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오션의 사업장이 있는 곳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루이 14세 시대 프랑스 궁정음악을 테오르보 등 당시 사용하던 고악기로 재현한다.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한불 수교 140주년 기념 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도 선정됐다.


GS칼텍스는 올해 처음 평창대관령음악제 공식 후원사로 참여했다. 지난 7~8월 음악제에서는 콘서트 19회와 강원 지역을 찾아가는 음악회 등이 열렸다. GS리테일도 2024년부터 음악제를 후원하고 있다. 음악교육 프로그램 '무지개상자'로 지역아동센터 어린이 1만3000여명을 지원했고, 올해도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음악제에 초청했다. GS칼텍스재단은 전남 여수 예울마루에서도 클래식 공연을 연다.

도심 한복판 야외무대…롯데

롯데는 공연장 밖으로 나갔다. 지난 8월 23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월드파크에서 '롯데 서머 클래식 콘서트'를 처음 열었다. 롯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롯데콘서트홀과는 별개로 도심 야외에 마련한 무료 클래식 무대다.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와 디토 체임버 오케스트라 등이 모차르트부터 탱고와 영화음악까지 선보였고 이날 시민 약 4500명이 찾았다.


롯데장학재단은 2024년부터 '신격호 롯데 예술가자립지원' 사업을 통해 예술 전공 학생과 신진·기성 예술가의 자립을 돕고 있다. 올해는 클래식 전공자 12명에게 총 60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세아이운형문화재단이 지난 3월 개최한 2026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음악회의 '로베르토 데브뢰' 포스터.ⓒ세아그룹
남들이 덜 가는 곳으로…세아·SK·에쓰오일

세아그룹의 관심은 오페라다. 생전 오페라를 아꼈던 고 이운형 회장의 뜻을 기려 설립된 세아이운형문화재단은 젊은 성악가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다.


지난 3월 예술의전당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선보인 도니체티의 오페라 '로베르토 데브뢰'에서는 재단이 후원해 온 성악가들이 주역을 맡았다. 소프라노 최지은과 테너 김범진, 바리톤 최인식 등이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서울시향과 2027년까지 3년간 후원 협약을 체결해 해외 공연 등도 지원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도 발달장애인 음악가들의 무대를 지원해 왔다. 하트-하트재단과 함께 2017년부터 이어온 '전국 발달장애인 음악축제(GMF)'는 올해 10회째를 맞았다. 지난달 1일 열린 본선에서는 6개 팀이 경연을 펼쳤다. 지난 10년간 326개 팀, 3313명이 참가했고 이 가운데 약 140명이 음대 진학이나 취업·창업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거뒀다. 참가 연주단체에 국내외 공연 기회를 제공하며 음악 활동을 사회 진출로 연결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2009년부터 발달장애인 연주자들로 구성된 하트하트오케스트라를 후원해 왔다. 지원은 공연 후원을 넘어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졌다. 2021년에는 단원 일부를 직원으로 직접 채용했다.


지난해 4월에는 장애인 연주자들의 안정적인 직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장애인 표준사업장 ㈜하트하트 아트앤컬쳐에 지분 투자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단순히 공연 기회를 제공하는 데서 나아가 음악 활동을 직업으로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려는 시도다.


에쓰오일은 오는 27일 서울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클래식 판타지아' 공연도 선보일 예정이다. 공연에는 연주자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코리아쿱오케스트라가 함께한다. 지역사회와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 나눔 활동의 일환이다.

연주자에서 관객으로…넓어지는 후원의 반경

기업의 클래식 후원은 연주자 육성에서 지역 공연과 관객 저변 확대, 장애인 음악가의 자립 지원으로 반경을 넓히고 있다. 포스코와 HD현대가 사업장 소재 지역에 공연장을 마련하고 한화가 지방으로 해외 연주단체의 공연을 확대한 데 이어 롯데는 도심 야외에 무대를 세웠다. 세아는 오페라 인재를, SK와 에쓰오일은 발달장애인 음악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방식은 달라도 더 많은 사람이 클래식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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