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자배급사 흥행성 우려에 투자 난항→넷플릭스 손잡고 베니스 심사위원대상
흥행 가능성을 이유로 국내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던 영화가 2주 만에 23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다. 넷플릭스 공개를 앞두고 진행한 제한 상영이었지만, 전작 ‘시’의 최종 관객 수까지 넘어섰다. 164분에 달하는 러닝타임과 짧은 상영 기간을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성적이다. 제작 단계에서 상업성을 우려했던 국내 영화계의 판단과 실제 관객 반응 사이에 간극이 드러났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가능한 사랑’은 지난 5일 극장 상영을 마무리하며 누적 관객 23만 명을 기록했다. 지난달 23일 개봉해 2주간 거둔 성적이다. 이창동 감독의 전작 ‘시’(2010)가 기록한 약 22만 명을 넘어섰다. ‘버닝’(2018)의 약 53만 명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장기 상영 없이 달성한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가능한 사랑' 스틸 ⓒ넷플릭스
이번 개봉은 일반적인 상업영화와 성격이 달랐다. ‘가능한 사랑’은 제99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출품을 위한 극장 상영 요건을 충족하고자 2주간 제한 상영됐다.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대표 출품작으로 선정된 이 작품은 넷플릭스가 투자·배급을 맡았으며, 오는 11월 6일 글로벌 공개를 앞두고 있다.
극장 상영 기간은 2주로 한정됐고, 164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은 하루 편성할 수 있는 회차에도 제약을 줬다. 한 달 남짓 기다리면 OTT에서 감상할 수 있었지만, 관객이 먼저 극장을 찾았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에 대한 기대와 베니스국제영화제 수상, 오스카 출품작으로 높아진 관심, 제한된 관람 기회 등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이 성적이 더욱 흥미로운 이유는 제작 과정에 있다. ‘가능한 사랑’은 당초 국내 투자배급사를 통해 극장용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돼 15억 원의 지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프랑스 측 투자까지 더해 초기 자금 마련에도 진전이 있었지만, 나머지 제작비를 조달하는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이창동 감독이 연출하고 설경구, 전도연, 조인성, 조여정이 출연하는 프로젝트였음에도 국내 투자배급사들은 선뜻 투자에 나서지 않았다. 작품성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흥행 수익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의 신작조차 투자처를 찾지 못한다는 사실은 당시 영화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제작의 돌파구를 마련한 곳은 넷플릭스였다. 국내 투자 유치에 실패한 제작진은 영진위 지원을 자진 철회하고 넷플릭스와 손잡았다. 넷플릭스가 제작비 전액을 투자하면서 프로젝트는 다시 추진됐다. 당초 중예산 규모로 기획됐던 작품의 제작비는 10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감독은 앞서 제작보고회에서 넷플릭스가 제작 과정에 간섭하거나 별도의 요구를 하지 않았으며, 감독의 독립성을 인정해줬다고 밝힌 바 있다.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작품이 글로벌 OTT의 투자로 제작 환경까지 확보한 것이다.
성과도 뒤따랐다. ‘가능한 사랑’은 지난 9월 열린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심사위원대상인 은사자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 최초의 베니스 심사위원대상 수상이었다. 국내에서 상업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프로젝트가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데 이어, 제한적인 극장 개봉에서도 의미 있는 관객 수를 확보했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영화 투자 환경을 돌아보게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장 관객 감소와 제작비 상승, 잇따른 흥행 실패로 국내 투자배급사들은 투자에 더욱 신중해졌다. 특히 손익분기점 달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중예산 영화나 작가주의 작품은 제작비를 마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투자사의 판단에도 현실적인 근거는 있다. 23만 명의 관객이 100억 원대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는 흥행 규모를 뜻하지는 않는다. 제한 상영으로 확보한 관객 수를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수익성과 동일한 기준에서 비교하기도 어렵다. 다만 극장 흥행에 대한 불확실성이 작품의 제작 가능성까지 좌우하는 현재 구조에서는 다양한 영화가 관객과 만날 기회 자체를 잃을 수 있다는 문제가 남는다.
‘가능한 사랑’의 사례는 넷플릭스의 역할도 다시 보게 한다. 극장 중심의 영화산업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온 글로벌 OTT가 국내에서 투자받지 못한 거장 감독의 신작을 제작했고, 극장 상영까지 병행했다는 점에서다. 넷플릭스는 플랫폼 공개를 중심에 두면서도 베니스국제영화제와 아카데미영화상 등 국제무대를 겨냥한 유통 전략을 펼치고 있다. 국내 극장 흥행에 수익을 의존하는 투자배급사와는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글로벌 OTT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현상을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국내 자본으로 제작하기 어려운 영화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한국 영화산업의 자체적인 투자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는 우려도 함께 드러내기 때문이다.
‘가능한 사랑’의 23만 명은 이 같은 산업적 배경에서 더욱 눈여겨볼 수치다. 흥행이 어렵다는 이유로 제작에 난항을 겪었던 작품이 국제영화제 수상에 이어 극장에서도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 수익성을 둘러싼 판단과 관객 수요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다.
극장 흥행의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투자 기조가 강해질수록 새로운 작품에 자금을 투입하기는 어려워진다. 반면 ‘가능한 사랑’은 제작 단계에서 예상하기 어려웠던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번 사례는 한국영화가 다양성을 유지하고 창작의 폭을 넓혀가기 위해 어떤 작품에 투자하고, 그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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