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류 판매 규제 단계적 완화…온라인 배송은 제자리
마트·편의점은 집객력 저하 우려, 외식·도매업계도 ‘난색’
신규 수요보다 기존 소비 이동 가능성…업계 셈법 복잡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 주류 배송트럭에서 배송관계자가 트럭에서 맥주를 내리고 있다.ⓒ뉴시스
불과 몇 년 사이, 일반 주류의 온라인 배송 규제 완화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이 달라졌다.
정부가 변화한 유통 환경에 맞춰 주류 판매 규제를 제한적으로 완화해 나가고 있지만, 주류 제조사와 유통업체, 물류사, 자영업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셈법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전면 허용 논의는 오히려 동력을 잃는 분위기다.
13일 국세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일반 주류의 온라인 배송 전면 허용을 위한 별도의 공식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지난 2022년에는 업계 간담회를 열고 관계자들로부터 온라인 판매 규제 완화에 대한 의견을 직접 청취했지만 올해는 관련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 분위기다.
정부가 주류 온라인 배송 전면 허용에 신중한 배경에는 청소년의 주류 접근성 확대와 국민건강에 대한 우려가 자리한다. 온라인 판매가 허용될 경우 기존 오프라인 판매보다 주류 구매가 쉬워지는 만큼 성인인증의 실효성과 미성년자 구매 차단 문제가 따라붙는다고 보고 있다.
다만 정부는 변화한 소비 환경에 맞춰 주류 판매 규제를 제한적으로 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7년 전통주의 온라인 판매 허용이다. 전통주 산업 육성과 판로 확대를 위해 예외적으로 통신판매를 허용하면서 일정 요건을 갖춘 전통주에 한해 온라인 구매가 가능해졌다.
여기에 2020년 4월부터는 비대면 방식으로 결제한 술을 직접 수령하는 방식의 ‘스마트 오더’를 도입했다. 같은해 7월에는 배달 앱을 통해 음식 배달 주문 때 음식 가격의 절반보다 적은 금액의 술을 배송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했다.
올해 들어서도 주류 판매 방식과 관련한 제도 정비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 국세청은 스마트오더를 이용한 주류 ‘선물하기’와 관련해 온라인 주문·결제자와 실제 수령자가 달라도 성인 확인을 거쳐 술을 받아가는 방식이라면 현행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또한 주류 자동판매기 규제도 완화됐다. 산업통상부는 지난 4월 성인인증 기능을 갖춘 주류 자동판매기 사업에 임시허가를 내줬다. 2021년부터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로 운영해온 사업을 관련 고시 정비 전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정작 주류업계의 분위기는 미지근한 모양새다. 지난 2022년만 하더라도 일반 주류의 온라인 판매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주류 소비가 외식·유흥시장보다 가정으로 상당 부분 이동한 만큼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더라도 새로운 수요를 만들기보다 기존 구매 채널을 대체하는 효과에 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판매가 열리더라도 제조사 입장에서는 기존 유통채널과의 가격 문제 등 새로 풀어야 할 과제가 생긴다”며 “시장 확대 효과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이 크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오전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 주류 배송트럭에서 배송관계자가 음식점에 주류를 전달하고 있다.ⓒ뉴시스
◇ 마트·편의점도 ‘신중’…집객력 잃고 배송 부담까지
대형마트 편의점 등 유통채널 역시 달갑지 않은 분위기다. 온라인 판매가 시작될 경우 형평성 등의 문제로 인해 수제맥주와 같은 일부 제품만 풀어주기 보다는 주류 전반적으로 검토될 가능성이 높고, 소비자가 매장을 찾도록 하는 근본적인 힘을 잃어버릴수 있어서다.
배송도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업계서는 상대적으로 가격 대비 파손 가능성이 높고 파손시 타 배송품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과 책임 소재 등 피로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대형마트 3사 모두 주문한 제품에 파손 등에 문제가 생길 경우의 책임은 대형마트가 지고 있다.
특히 최근 유통업계는 오프라인 매장의 폐점을 막고 재활성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주류 특화 매장으로의 변신을 이어 왔다. 그러나 쿠팡 등과 경쟁하게 될 경우 또다시 동력을 잃을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크다. 대형마트의 경우 주류가 매출의 50%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다.
실제로 유통채널별 가격 차이는 과거에도 제조사들이 민감하게 다뤄온 문제다. 과거 코스트코와 일반 대형마트 사이에서 공급조건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이에 제조사들은 특정 채널 전용 제품을 만들거나 용량을 다르게 해 가격을 단순 비교하기 어렵게 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술은 제품 단가가 높다는 장점은 있지만 병 제품은 무게와 파손 문제를 함께 감당해야 한다”며 “가뜩이나 온라인 소비가 늘어난 상황에서 주류까지 배송이 허용되면 소비자가 대형마트를 직접 찾을 유인이 더 줄어들 수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직원이 영업 준비를 하고 있다.ⓒ뉴시스
◇ “외식 수요 빠질라”…소상공인·도매업계도 ‘반대’
특히 주류 배송은 소상공인의 이해관계까지 얽혀 있어 규제 완화가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국내에서는 가정용과 유흥용 주류의 가격 차이가 큰 만큼 온라인 판매가 허용될 경우 식당 등 외식 수요 일부가 가정으로 이동해 소상공인 매출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그간 식당들은 소주 출고가격이 수십 원 오르더라도 판매가격은 1000원 단위로 조정하는 방식으로 원가 상승분을 반영해왔다. 음식값에 즉각 반영하기 어려운 인건비와 임대료 등 각종 비용 부담을 주류 판매 마진으로 일부 보전해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술을 대량 구매해 집에 보관하고 배달음식과 함께 소비하는 방식이 확산될 경우 장기적으로 수익성 저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경우 주류 도매업체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온라인 판매 허용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한층 복잡해진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편의만 놓고 보면 온라인 판매를 확대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면서도 “주류는 일반 소비재와 달리 청소년 보호와 국민건강 문제에 기존 유통질서까지 얽혀 있어 어느 한쪽의 편익만으로 규제를 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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