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발언을 한 아시안게임 대표팀 주장 이기혁. ⓒ 대한축구협회
“군대 안 갑니다.”
지난 3일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에서 일본을 꺾은 직후, 대표팀 주장이 금메달을 들어 보이며 한 말이다. 다른 선수는 군 면제라는 보상을 앞세웠고, 또 다른 선수는 전역모를 쓴 사진을 공개했다. 선수들은 이후 사과했지만, 논란은 개인의 언행을 넘어 병역 특례의 존립 문제로 번졌다.
비판받아야 할 것은 분명하다. 병역 혜택을 기대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다른 청년들이 감당하는 의무에서 벗어나는 일을 공개적으로 자랑한 태도다. 국가대표의 성취를 스스로 군 면제의 수단처럼 설명했으니 국민이 허탈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그들의 노력과 출전 동기 전부를 병역 문제 하나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 비판은 확인된 말과 행동만으로도 충분하다.
같은 대회에서 전혀 다른 말을 한 금메달리스트도 있었다. 테크볼의 이준석이다.
“지금은 사실, 직장 이런 것 없이 그냥 무직으로서 생활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는 실업팀이 없는 종목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대회를 준비했다. 선수촌 밖에서 훈련했고, 모아둔 돈과 협회 지원으로 버텼다. 금메달을 따고도 다음 해에 어떻게 선수 생활을 이어갈지 걱정했다. 누구에게 금메달은 안정적인 프로 경력을 이어갈 기회였지만, 누구에게는 기반조차 없는 종목을 세상에 알릴 기회였다.
이 차이를 보지 않는 전면 폐지론은 거칠다. 그러나 어려운 선수의 사연만으로 제도를 지키자는 주장도 충분하지 않다. 학업과 취업, 직장생활을 멈추고 입대하는 다른 청년들의 미래도 똑같이 소중하다.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병역 혜택을 줘야 한다면 체육계 밖의 수많은 청년에게도 답해야 한다. 기준은 동정이 아니라, 특별한 복무 방식을 허용할 공적 이유여야 한다.
해외 사례도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한국만 국가가 선수를 지원하고 다른 나라는 포상금만 준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영국은 UK Sport를 통해 선수의 생활·훈련 비용을 지원하고 의료와 경기력 지원도 제공한다. 다만 선수에게 직접 지급하는 지원금에는 소득 심사를 적용한다. 지원의 필요를 구분하는 것이다. 이것을 곧바로 한국의 병역 기준으로 옮길 수는 없지만, 모든 선수에게 같은 지원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참고할 만하다.
스위스는 선발된 우수 선수가 군 복무와 훈련을 병행하도록 별도의 체육 신병교육 과정을 운영한다. 18주 과정에서 군사교육과 종목 훈련을 결합하고 체육시설과 의료 지원을 제공한다. 선수 육성과 병역 이행을 함께 설계한 사례다. 한국에도 상무가 있지만 운영 종목과 정원이 제한돼 있다. 상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선수에게 대안이 마련됐다고 할 수는 없다.
지금의 제도가 신뢰를 잃은 이유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JTBC는 국회에 제출된 자료를 토대로 2022년 이후 복무 규정 위반으로 경고받은 체육요원이 36명이며, 무허가 겸직으로 경고받은 이들이 21명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아시안게임 선수들의 위반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혜택을 받은 선수들의 복무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제도 유지론이 반드시 답해야 할 대목이다.
국방부는 점진적 축소와 궁극적 폐지를 목표로 제시했다. 정치권에서는 국제대회 성적을 누적하는 점수제와 30대 후반까지의 입영 연기도 거론된다. 아직 확정된 개편안은 아니다. 점수제는 대회 수와 출전 여건에 따른 차이를 어떻게 보정할지 설명해야 하고, 입영 연기는 선수 생활 이후의 복무 부담까지 따져야 한다. 제도를 없애고 다른 지원으로 보완하겠다는 주장 역시 재원과 적용 대상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제도적 기반이 취약한 종목에는 예산을 더 주겠다는 말이 곧바로 대안이 되지 않는다. 지원 자격과 집행 체계, 재원부터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병역 혜택도 사회적 비용이 없는 제도는 아니다. 다만 당장 확보되지 않은 예산을 약속하며 폐지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다고 해서는 안 된다.
테크볼 금메달리스트 이준석. ⓒ 뉴시스
전면 폐지에 앞서 편입 기준과 복무 내용을 함께 개편할 것을 제안한다.
먼저 메달 성적만으로 편입을 결정하는 기준을 재검토해야 한다. 종목별 국제 경쟁과 대표팀 선발 구조, 혜택의 집중 정도에 더해 군 복무 중 선수 활동을 이어갈 경로와 국내 육성 기반을 함께 평가하자. 프로와 비인기 종목이라는 이름만으로 자격을 나누지 말고, 별도 복무가 왜 필요한지 공개된 기준으로 설명해야 한다. 변경할 기준은 대회 전에 공표해야 한다. 우승 뒤 여론에 따라 자격을 바꾸는 방식은 또 다른 불공정이다.
다음으로 혜택 이후의 의무를 실질화해야 한다. 체육요원은 모든 병역의무가 사라지는 ‘완전한 면제’가 아니다. 해당 분야에서 34개월 복무하고 544시간의 특기활용 공익복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 의무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활동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학교와 지역 체육시설 등 기존 수요처에 연결해 일정 기간 같은 학생과 주민을 지도하도록 하고, 수혜기관의 확인과 활동 결과를 공개하자. 해외 활동 선수에게는 비시즌 등을 활용한 이행계획을 사전에 승인하되, 유명하거나 바쁘다는 이유로 책임을 줄여서는 안 된다. 새로운 지원사업을 크게 벌이기보다 이미 부과된 의무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접근이다.
규정 위반도 구분해서 다뤄야 한다. 단순 신고 착오와 고의적인 무허가 활동, 허위 복무 실적에 같은 잣대를 댈 수는 없다. 고의·반복 위반에는 제재를 강화하고, 중대한 위반에 대한 편입 취소 요건과 절차도 점검해야 한다. 선수뿐 아니라 관리기관이 무엇을 확인하고 조치했는지도 공개해야 한다.
물론 봉사시간을 충실히 채운다고 병역의 형평성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제도는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선수 활동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는지, 그 활동이 종목의 기반과 국민의 체육 참여에 실제로 기여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 결과로도 존속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은 축소할 수 있어야 한다.
테크볼 선수의 기회를 지키자는 주장과 프로 선수의 책임을 묻자는 주장은 함께 갈 수 있다. 선수의 속마음을 심사할 수는 없지만, 혜택의 필요성과 의무의 이행은 검증할 수 있다.
병역 혜택을 유지하려면, 유지할 만한 제도를 내놓아야 한다. 금메달로 무엇을 받았는지를 넘어 그 이후 국민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이제 체육계가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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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안덕기 대한체육회 홍보미디어위원회 부위원장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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