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빌리티, 작업형 휴머노이드 로봇 ‘빌리’ 최초 공개
150곳 현장서 쌓은 자율주행·엣지케이스가 경쟁력
올 하반기부터 CJ제일제당 등 4개 분야 PoC
단기간 수십~수백대 현장 투입 목표
29일 서울 성수동 KT&G 상상플래닛에서 공개된 뉴빌리티의 휴머노이드 로봇 '빌리'가 물건을 옮기는 시연을 하고 있다.ⓒ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사람 반, 카트 반’인 로봇 한 대가 미끄러지듯 나왔다. 동그란 눈이 달린 얼굴에 몸통과 두 팔까지 영락없는 휴머노이드지만, 허리 아래로 시선을 내리면 두 다리 대신 네 바퀴와 커다란 적재함이 붙어 있다. 뉴빌리티의 하이브리드 휴머노이드 ‘빌리’다. 맞은편 랙으로 천천히 다가간 빌리는 상체를 세우고 팔을 뻗어 물건을 집은 후, 몸통을 돌려 적재함에 물건을 내려놨다.
29일 서울 성수동 KT&G 상상플래닛에서 처음 공개된 빌리는 최근 로봇업계가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휴머노이드와는 모습부터 달랐다. 사람처럼 두 다리로 걷지도, 빠르게 뛰거나 화려한 동작을 선보이지도 않았다. 대신 바퀴로 빠르게 이동하고, 두 팔과 손으로 물건을 집고 옮겼다. ‘사람처럼 보이는 로봇’보다 ‘당장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로봇’을 택한 셈이다.
김락희 뉴빌리티 프로덕트 오너(PO)는 “최근 많은 휴머노이드 회사들이 빠르게 달린다거나 멋진 춤 동작을 선보이고 있는데 사실 이것은 상용화하고는 좀 다른 얘기”라며 “저희가 포커스하고 있는 것은 현장에 들어가서 빠르게 상용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빌리티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율주행 배달로봇 ‘뉴비’가 있다. 뉴빌리티는 국내외 150곳 이상의 실제 현장에서 뉴비를 운영하며 다양한 공간과 환경에 대한 주행·공간 데이터와 운영 경험을 축적했다. 카메라 기반 맵리스 자율주행과 V-SLAM 등을 통해 정밀지도 없이도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이동하는 기술을 고도화해왔다.
특히 실제 서비스 현장에서 마주친 수많은 ‘엣지 케이스’가 뉴빌리티가 내세우는 자산이다. 개발 단계에서 미리 가정한 환경에서만 움직인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과 섞여 다니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장애물과 공간 구조, 돌발 상황에 대응하는 데이터를 쌓아왔다는 것이다.
김 PO는 “실제 현장에서 빠르게 검증할 수 있는 이동과 조작 테스트를 연결하고 그 과정에서 성공한 케이스뿐 아니라 예외 상황, 엣지 케이스까지 모두 데이터로 축적한다”며 “이 과정은 이미 뉴빌리티가 다년간 뉴비를 통해 수행하고 검증해 온 프로세스”라고 설명했다.
뉴빌리티의 휴머노이드 로봇 '빌리'(왼쪽)와 배달로봇 '뉴비'(오른쪽) ⓒ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빌리는 이처럼 이미 상당 부분 고도화한 ‘이동 능력’ 위에 물체를 인식하고 손으로 조작하는 능력을 얹는 전략으로 개발됐다. 뉴비가 목적지까지 스스로 찾아가는 데 집중했다면 빌리는 목적지에 도착해 물건을 집고, 싣고, 다시 이동해 내려놓는 일련의 작업까지 수행한다.
뉴빌리티가 이동과 조작을 별개의 기술로 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 CSO는 “집는 성능 자체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빌리가 잘못된 위치에 서 있거나 잘못된 각도로 접근하면 작업은 성공하기 어렵다”며 “먼저 이동을 통해 최적의 위치와 자세를 확보하고 그다음 물건을 집고 운반하는 과정들이 이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최근 성수동에 피지컬 AI 센터도 구축했다. 뉴빌리티는 이곳에서 다양한 작업에 필요한 몸과 손의 학습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빌리의 VLM 모델을 고도화하고 있다. 향후 제조·물류 등의 PoC(기술검증)에서 실제 작업 데이터를 추가로 쌓아 물체 인식과 조작 능력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강기혁 뉴빌리티 대표는 “뉴비가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축적하고 있는 주행과 공간 데이터가 바로 동작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공간을 이해하는 지능을 바탕으로 정확한 위치와 자세를 통해 작업을 준비할 수 있고 이어지는 몸과 손의 움직임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두 다리 대신 바퀴를 선택한 것도 같은 전략의 연장선이다. 빌리는 360도 회전 가능한 승강형 상체와 두 팔·손, 모듈형 적재부를 갖췄지만 하체는 휠 방식이다. 실내외 공간에서 빠르고 안정적으로 이동하기 위해 두 다리보다 구동형 하체를 선택하고, 사람이 사용하는 선반 등에 대응하기 위해 두 손과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상체를 결합했다는 설명이다.
김 PO는 “빌리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사람이 작업하는 환경에 적응해서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이런 구조를 선택했다”고 강조했다.
회사는 이족보행 로봇이 현재 산업 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한지도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로봇의 다리보다 바퀴로 이동하는 편이 빠른 상용화를 위해서는 더욱 실효성 있다는 판단에서다. 향후 이족보행이 반드시 필요한 작업과 환경이 생기면 관련 폼팩터도 개발할 계획이다.
김 PO는 “이족보행이 지금 어려워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사업을 빠르게 진행하고 실질적으로 실효성이 있는 것들을 먼저 포커스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형태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빌리 개발에는 뉴빌리티가 기존 사업에서 확인한 한계도 반영됐다. 배달과 순찰 로봇은 스스로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지만 도착한 이후 실제 작업까지 수행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배달 사업과 순찰 사업을 이동 관점에서 풀다 보니까 이동만 해서는 명확하게 고객의 ROI를 달성해주기 어렵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했다”며 “도착한 위치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로봇까지 개발해야 하는데 어떤 폼팩터가 필요할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한 게 하이브리드 휴머노이드 빌리”라고 말했다.
기존 공장 자동화의 빈틈도 겨냥한다. 현재 물류·제조 현장에서는 자율이동로봇 AMR과 고정형 로봇팔 등 다양한 자동화 설비가 활용되고 있지만 서로 다른 공정을 연결하는 과정에는 여전히 사람이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뉴빌리티는 이동과 조작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빌리로 이 구간을 자동화하는 것을 주요 사업 기회로 보고 있다.
강기혁 뉴빌리티 대표와 '빌리'ⓒ뉴빌리티
상용화를 위한 첫 시험대도 정해졌다. 뉴빌리티는 올해 하반기 CJ제일제당과 식품 제조 분야에서 빌리 한 대를 활용한 PoC를 진행한다. 이외에도 정밀 제조와 물류, 대규모 교통복합시설 등 총 4개 분야에서 실증을 추진하고 이후 버티컬별로 상용화를 확대할 계획이다.
목표치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초기 실증에서는 사람 대비 30~40% 수준의 작업 성능을 확보하는 것을 시작점으로 삼고 단계를 거치면서 80~95%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현재 빌리 한 대가 업무에 따라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약 4~6시간이다. 직접 들어 올릴 수 있는 물체는 15kg 미만, 적재함에는 최대 60kg까지 싣고 이동할 수 있다.
김 PO는 “피크 시간을 제외했을 때 한 시프트에 한 사람의 작업 정도를 대체하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계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기간 수십~수백대 규모를 현장에 투입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제조·물류 등 각각의 버티컬에서 PoC를 거쳐 상용화 수준까지 학습한 뒤 같은 산업의 다른 기업으로 확산시키는 방식이다.
뉴빌리티의 승부수는 ‘휴머노이드가 얼마나 사람과 닮았느냐’보다 ‘얼마나 빨리 사람의 작업 환경에 들어가 실제 일을 할 수 있느냐’로 풀이된다. 두 다리 대신 지난 수년간 뉴비가 쌓은 이동 데이터를 택했고, 아직 부족한 손과 조작 능력은 실제 현장에서 학습시키겠다는 전략이다.
강 대표는 “모든 기술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현장에서 가장 빠르게 일을 하게 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고도화되는 기능과 스킬셋을 만들어가는 것이 빌리를 상용화하는 방식”이라며 “하나의 테스트에서 더 많은 테스트로, 하나의 현장에서 더 많은 현장으로 빠르게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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