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에펠탑 인근 트로카데로 분수대에서 한 시민이 물을 맞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AP/뉴시스
유럽 전역에 연일 40도를 웃도는 기록적인 폭염이 강타하면서 인명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현지의 극한 상황을 담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영상들과 함께 유럽의 낮은 에어컨 보급률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8일(현지시간) 이번 폭염으로 유럽에서 13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밝혔다고 CNN과 AFP 등 주요 외신들이 보도했다.
연일 40도를 웃도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가정용 에어컨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은 가정의 약 90%가 에어컨을 보유한 반면 유럽의 보급률은 약 20% 수준에 그친다.
SNS에는 폭염의 위력을 보여주는 영상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폭염 속 창밖에 내놓은 프라이팬에서 계란이 익는 모습. ⓒ SNS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이른바 '계란 굽기 챌린지'다. 한 남성이 햇볕이 내리쬐는 창밖에 프라이팬을 잠시 내놓은 뒤 계란을 깨뜨리자 곧바로 지글거리며 익기 시작하는 모습을 공개하면서 비슷한 인증 영상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이 밖에도 뜨거운 열기에 트럭 타이어가 변형되거나 자동차 랩핑 필름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 도로 위 아스팔트가 녹아 내리는 장면 등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며 폭염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냉방 문화가 상대적으로 발달하지 않았던 유럽에서는 선풍기와 이동식 에어컨을 구하려는 시민들이 대형마트 개점 전부터 길게 줄을 서는 이른바 '오픈런'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파리의 한 대형마트에서 선풍기 구매를 위해 '오픈런'에 나선 시민들.ⓒSNS
매장에 진열된 냉방용품이 순식간에 동나고 품절 안내문이 붙은 텅 빈 매대 사진도 SNS를 통해 확산되며 폭염으로 인한 혼란을 보여주고 있다.
CNN은 유럽 국가들이 에어컨 도입에 소극적이었던 배경으로 기후와 문화, 건축 방식,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사적으로 냉방 수요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장기간 폭염이 드물었던 북유럽과 중유럽에서는 에어컨이 필수품이 아닌 사치품으로 인식돼 왔다.
브라이언 머더웨이 국제에너지기구(IEA) 에너지 효율 및 포용적 전환 사무국장은 "유럽에서는 에어컨 사용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며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는 방법을 고민하는 문화 자체가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높은 에너지 비용도 보급 확대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유럽은 미국보다 전력 요금이 비싼 데다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국가도 적지 않아 에어컨 설치와 유지 비용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건축 방식과 노후 건물도 걸림돌로 꼽힌다. 남유럽 일부 국가는 두꺼운 벽과 작은 창문, 자연 환기를 활용한 구조로 실내 온도를 낮춰왔지만, 유럽 대부분의 건물은 냉방보다 겨울철 단열과 난방에 초점을 맞춰 설계됐다.
특히 영국은 주택 6채 중 1채가 1900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일 정도로 오래된 주택이 많아 중앙 냉방 시스템을 설치하기 쉽지 않다.
행정 절차도 영향을 미친다. 영국의 에어컨 업체 대표 리처드 샐먼은 "보존지역이나 문화재 건물은 실외기 설치가 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허가가 거부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의 기후 정책 역시 에어컨 보급 확대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에어컨은 실내를 냉각하는 과정에서 열을 외부로 배출하는데, 한 연구에서는 이로 인해 프랑스 파리의 외부 기온이 약 2~4도 높아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스페인은 지난 2022년 에너지 절약을 위해 공공장소의 에어컨 설정 온도를 섭씨 27도 이하로 낮추지 못하도록 규정하기도 했다.
다만 전 세계 평균보다 약 두 배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되는 유럽이 '기후 핫스팟'으로 떠오르면서 냉방에 대한 인식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오는 2050년까지 EU 내 에어컨 보급 대수가 2019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약 2억750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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