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90개국·막걸리 60개국…벌어지는 해외 판매망 격차
발효주 한계에 낮은 인지도까지…세계화 가로막는 '삼중고'
살균막걸리·현지 유통망 확대 안간힘…정부 지원 필요성도
K-콘텐츠 연계 홍보·콜드체인 구축…“문화 수출로 풀어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막걸리를 고르고 있다.ⓒ뉴시스
한류와 K-푸드 확산으로 세계적으로 ‘한국 술’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수출 성적표는 주종에 따라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소주가 전 세계 70~90개국으로 판매망을 넓히며 대표 K-주류로 자리 잡은 반면, 막걸리는 수출국 확대와 물량 증가 모두 정체된 모습이다.
KATI 농식품수출정보에 따르면 막걸리(탁주) 수출량은 2020년 1만2556톤에서 2022년 1만5396톤으로 늘며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수출량은 1만4733톤으로 줄었고, 올해도 5월까지 6120톤에 그치며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수출량 정체와 함께 해외 판매망 확대도 쉽지 않은 모습이다. 막걸리 업계가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지만 K-소주처럼 수십 개 국가로 판매망을 넓히는 데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서울장수는 2010년 롯데주류와 상생협력으로 개발한 ‘서울 막걸리’를 일본 산토리사에 공급하며 수출 사업을 확대해 현재 약 25개국에 진출해 있다. 지평주조는 2021년 10월부터 중국에 생막걸리 수출을 시작해 현재 미국·중국·일본·대만 등 16개국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나마 국순당이 가장 넓은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한 사례로 꼽힌다. 국순당은 1987년 미국 교민 시장을 대상으로 ‘생쌀발효 동동주’ 수출을 시작한 이후 1993년 국내 최초 캔막걸리인 ‘바이오탁’을 선보이며 해외 시장을 확대해 왔다. 현재는 세계 6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반면 국내 소주업계의 해외 공략은 이미 속도전에 들어갔다. 국내 주류 소비가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해외 시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과거 교민 사회와 한식당 중심이었던 판매 구조도 현지 유통망과 일반 소비자 중심으로 변화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소주 수출액은 2022년 9332만8000달러에서 2023년 1억141만달러로 처음 1억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2024년에는 1억409만2000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5년에는 9652만2000달러로 집계됐다.
수출 대상 국가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1968년 베트남 수출을 시작으로 현재 소주와 과일소주를 전 세계 90여개국에 판매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 역시 대표 소주 브랜드를 중심으로 70여개국에 제품을 수출 중이다.
올해는 오비맥주까지 소주 수출에 뛰어들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지는 분위기다. 오비맥주는 제주소주를 흡수합병한 뒤 수출 전용 소주 브랜드 ‘건배짠(JJAN)’을 선보였고, 말레이시아·싱가포르·대만·캐나다 등으로 1차 물량을 보냈다. 미국에서는 ‘찰랑(CHALANG)’ 브랜드로 판매한다.
서울 장수생막걸리 이미지ⓒ서울장수
그렇다면 막걸리 수출국이 제한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막걸리 수출이 더딘 이유로 ▲낮은 해외 인지도와 ▲유통상의 제약 ▲산업 구조의 한계를 꼽는다.
우선 막걸리는 소주와 달리 글로벌 시장에서 아직 생소한 주종에 속한다. K-콘텐츠를 통해 인지도가 높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해외 소비자들에게는 맛과 음용 방식, 음식과의 조합 등이 익숙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소주는 증류주 특성상 상온 보관이 가능하고 유통기한 부담도 적어 장거리 수출에 유리하지만 막걸리는 발효주인 만큼 유통 과정에서 품질 관리가 중요하다. 유통기한이 짧고 냉장 유통이 필수적이어서 저온 물류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국가로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박선영 국순당 생산본부장은 “생막걸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제품인 만큼 개별 기업이 아닌 공통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나라별로 냉장 기준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10도 정도를 냉장으로 보지만 미국이나 호주는 5도 이하를 냉장으로 본다. 생막걸리 수출 기준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해외 소비자 반응이나 시장 피드백도 기업들과 공유해주면 도움이 될 것”이라며 “가까운 일본·중국·동남아 시장은 생막걸리 중심으로, 미국처럼 거리가 먼 시장은 신선함을 살린 살균막걸리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산업 구조 역시 한계로 꼽힌다. 국내 막걸리 업체 대부분은 소주·맥주 대기업과 비교해 규모가 작아 해외 전략시장에서 공격적인 브랜드 마케팅과 유통망 투자에 나서기 쉽지 않다. 국내 시장 규모 자체도 크지 않아 수출을 주도할 글로벌 브랜드를 육성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막걸리 업계 관계자는 “현재 막걸리 수출은 여전히 교민시장 중심 성격이 강하다”며 “현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시장 확대는 개별 업체의 노력 만으로 한계가 있는 만큼 장기적인 브랜드 육성과 저변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과일소주처럼 과일막걸리를 앞세워 해외 대중화로 연결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과일 향을 더해 진입장벽을 낮출 수는 있지만, 막걸리 자체가 가진 발효·냉장·품질 안정성 문제는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다만 과일막걸리는 전통 막걸리 시장을 넓히기 위한 ‘가교’ 역할에 의미를 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바나나·복숭아 등 현지 소비자에게 익숙한 과일 향을 입힌 제품은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와 전통 막걸리로 소비를 확대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선영 생산본부장은 “막걸리처럼 고형분이 들어 있는 술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맛이다. 아무리 홍보를 잘해도 신선한 맛이 없으면 소비자를 설득할 수 없다”고 조언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막걸리 매대에서 한 시민이 막걸리 제품들을 살펴보고 있다.ⓒ뉴시스
◇ 막걸리업계, 기업 노력 만으론 한계…“정부 지원·K컬처 연계 필요”
막걸리 업계는 수출국 다변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생막걸리의 유통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살균막걸리 수출을 확대하는 한편, 현지 편의점과 온라인 채널 등 로컬 유통망 입점을 통해 교민 시장을 넘어 현지 소비자 공략에도 나서고 있다.
살균막걸리는 생막걸리와 비교해 발효를 멈추는 공정을 거치기 때문에 생막걸리보다 품질 변화가 적고 유통기한도 상대적으로 길다. 냉장 유통 의존도가 낮아 장거리 운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해외 수출에 유리한 제품으로 평가된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막걸리 수출 확대가 개별 업체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해외 인지도 제고와 소비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생막걸리의 맛을 유지하면서 유통기한을 늘리는 R&D, 해외 냉장 물류비 지원, 국가별 주류 인증·통관 컨설팅, 현지 한식당·대형 유통채널과 연계한 공동 마케팅 등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업계서는 업계에서는 막걸리 수출 확대를 위해 제품 판매를 넘어 ‘문화 수출’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팝과 K-드라마를 통해 한국 음식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막걸리 역시 콘텐츠 노출과 국가 차원의 홍보를 통해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떡볶이 역시 과거에는 쫄깃한 식감과 매운맛 때문에 해외 소비자들에게 다소 낯선 음식으로 인식됐지만, K-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대표적인 K-푸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업계에서는 막걸리 역시 단순한 주류가 아닌 한국의 음식·식문화와 함께 소개될 때 해외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막걸리 수출 확대를 위해서는 제품 판매를 넘어 한국 문화와 연계한 홍보가 필요하다”며 “막걸리의 역사와 제조 방식, K-푸드와의 조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 해외 소비자들의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재외공관을 중심으로 전통주 소개 행사와 시음회가 확대되고 있는데, 이러한 프로그램을 더욱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며 “막걸리를 단순한 술이 아닌 한국의 음식·문화와 연결된 콘텐츠로 소개할 때 해외 시장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막걸리를 포함한 전통주에 대한 해외 전시회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해외 식품박람회나 전시회에서 한국관 참가를 희망해도 선정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K-컬처 행사와 연계한 막걸리 홍보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해외에서 열리는 K-팝 공연이나 한류 행사 등에 막걸리 체험·시음 부스를 운영하는 등 소비자 접점을 넓힐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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