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도 대중문화계는 여전히 역동적이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냈고, 동시에 많은 문제점도 노출했다. K-컬처의 각 영역이 해외에서 보내온 수상 소식은 여전히 반갑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중문화계 역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왔다. 새로운 인물이 스타가 되기도 했지만, 스타의 몰락도 많았다. 그리고 많은 스타가 진짜 ‘하늘의 별’이 됐다. 영상 콘텐츠는 여전히 대중의 삶을 지배했지만, 텍스트를 향한 ‘힙’한 흐름도 이어졌다. 이런 2025년도 대중문화계를 가요, 영화, 방송, 공연, 출판 등 각 영역의 1년을 정리했다 <편집자 주>
2025년 한국 영화·콘텐츠 산업은 뚜렷한 대비 속에서 움직였다. 국제 무대에서는 한국 영화와 콘텐츠가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국내 극장가는 천만영화 부재와 관객 감소, 상영관 축소라는 현실과 마주했다. 베니스와 오스카 레이스에 오른 거장의 영화, 글로벌 스트리밍 기록을 새로 쓴 애니메이션, 해외 콘텐츠가 점령한 박스오피스 상위권, 그리고 폐점과 구조 재편에 들어간 멀티플렉스까지, 2025년 극장과 영화 산업의 흐름을 짚어봤다.
ⓒCJ ENM
┃ 베니스에서 오스카까지, ‘어쩔 수가 없다’가 증명한 박찬욱의 현재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는 2025년 한국 영화계를 돌아볼 때 국제 무대에서 가장 선명한 족적을 남긴 작품으로 꼽힌다. ‘헤어질 결심’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신작인 이 영화는 공개와 동시에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고, 그 흐름은 주요 영화제와 시상식을 통해 꾸준히 이어졌다.
먼저 베니스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으로 작품성과 연출력을 인정받으며 출발선을 끊었고, 이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과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북미 시상식 레이스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는 장르적 실험과 배우의 연기가 서구권 관객과 평단에도 설득력을 가졌다는 방증이다.
이어 2026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한국 대표작으로 선정된 데 이어 예비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오스카 레이스에도 합류했다. 국내 관객 수는 294만 명에 그치며 흥행 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해외 영화제와 주요 시상식에서 이어진 성과는 흥행 수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작품의 위상을 증명했다.
‘어쩔 수가 없다’는 박찬욱이라는 감독의 이름이 여전히 세계 영화계에서 유효한 브랜드임을 확인시킨 작품이자, 2025년 한국 영화의 국제적 성과를 상징하는 사례로 남게 됐다.
ⓒ넷플릭스
K팝·무속 결합 애니, 전 세계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신드롬
올해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 중 하나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다. 지난 6월 공개된 이 작품은 케이팝(K-POP)과 한국 전통 무속을 결합한 오컬트 소재로,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영어 영화 부문 1위에 오르며 빠르게 화제작으로 부상했다.
이후 전 세계 스트리밍 성과를 이어가며 넷플릭스 콘텐츠 사상 최초로 누적 시청 수 3억 뷰를 돌파했다. 공개 석 달이 지난 9월에도 영화·시리즈, 영어·비영어 콘텐츠를 통합한 기준에서 시청 수 3억 회를 넘기며 흥행 기록을 경신했다.
작품 속 캐릭터가 착용한 한복과 갓, 노리개를 비롯해 북촌 한옥마을과 남산 서울타워 등 한국적 배경과 요소들은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과 주제가상, 시네마틱 박스오피스 공로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며, 메인 OST ‘골든’(Golden)은 오스카 주제가상 후보로도 지명되며 시상식 시즌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해외 애니가 점령한 상위권, 천만 돌파 없는 한국영화
2025년 극장가는 천만영화가 단 한 편도 나오지 않은 해로 기록됐다. 이는 팬데믹 충격에서 벗어나 극장 회복 국면에 들어섰던 202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봉준호 감독의 귀환작 ‘미키 17’과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가 나란히 개봉하며 시장 반등에 대한 기대를 키웠지만, 흥행 성적은 각각 301만 명과 294만 명에 그치며 판도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작가적 성취와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확장성 면에서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한국영화 가운데 최다 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조정석 주연의 ‘좀비딸’로 563만 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역시 연간 박스오피스 1위에는 오르지 못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2’가 571만 명으로 1위를 차지했고,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568만 명으로 뒤를 이으며 상위권을 해외 애니메이션이 점령했다. 결과적으로 연간 박스오피스 1·2위 모두 외화 애니메이션이 차지하면서, 한국영화의 존재감은 수치상으로도 뚜렷하게 약화됐다.
이 같은 흐름은 상위권 구성에서도 확인된다. 올해 박스오피스 10위권에 진입한 한국영화는 ‘좀비딸’, ‘야당’(341만 명), ‘어쩔 수가 없다’, ‘히트맨2’(254만 명)까지 단 4편에 불과했다. 천만영화 부재는 단순히 대형 히트작의 실패를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관객의 선택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IP 인지도와 장르 확장성이 강한 작품으로 쏠리는 가운데, 한국영화가 중·대형 흥행 구간을 넓히지 못하고 있다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애니맥스브로드캐스팅코리아, 소니픽쳐스 코리아
박스오피스 상위권 흔든 일본 애니메이션 부상
올해는 어느 때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활약하며 흥행 구도의 변화를 이끌었다. 그 중심에는 ‘귀멸의 칼날’, ‘체인소 맨’, ‘진격의 거인’이 있다. OTT를 통해 이미 형성된 글로벌 팬덤과 극장 스케일에 최적화된 작화·연출이 맞물리며, 일본 애니메이션은 2025년 국내 극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냈다.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낸 작품은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으로, 누적 관객 수 568만 명을 기록했다. 이어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이 341만 명을 동원했고, ‘극장판 진격의 거인: 더 라스트 어택’도 94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특히 ‘체인소 맨: 레제편’은 추석 연휴 기간 한국 영화 기대작들 사이를 파고들며 연휴 후반 일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업계는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의 배경으로 완성도 높은 작화와 공격적인 연출을 꼽는다. ‘귀멸의 칼날’ 제작사 스튜디오 유포터블은 TV 시리즈에서 축적한 연출 실험을 극장판에서 극대화했고, ‘체인소 맨’ 역시 액션과 서사를 밀착시킨 연출로 관객의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단순한 시각적 자극을 넘어 감정선과 결합된 액션, 빠른 전개와 과감한 표현이 극장 경험을 강화하며, 일본 애니메이션은 2025년 국내 극장가에서 하나의 확실한 흥행 축으로 작동했다.
ⓒCJ CGV
폐점·공간 전환·합병 추진까지, 멀티플렉스, 위기 속 선택
팬데믹 이후 회복이 더딘 극장가의 현실은 멀티플렉스의 잇따른 폐점으로 구체화됐다.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는 지난 10월 영업을 종료했고, 개관 6년 만의 메가박스 성수점 역시 폐점 대열에 합류했다.
CGV는 코로나19 이후 이어진 구조적 경영난과 도심 상권 변화, 운영 효율성 등을 이유로 들며 올해에만 12개 지점을 정리했다. 순천·목포·송파·연수역·파주야당·창원·광주터미널 등 전국 곳곳에서 상영관 불이 꺼졌다.
메가박스 성수점 역시 프리미엄 특별관과 브랜드 팝업을 결합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주목받았지만 관객 감소 흐름을 넘지 못했다.
롯데시네마는 일부 상영관을 체험형 전시·공연 공간으로 전환하며 다른 돌파구를 모색했다. 월드타워점과 합정점의 ‘랜덤스퀘어’, 신도림점의 공연 프로젝트로 상영관 활용 방식의 변화를 택했다. 올해 폐점한 롯데시네마 상영관은 4곳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극장가의 위기는 관객 감소, OTT 확산, 티켓 가격 상승, 대작 부진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수익성 중심의 지점 정리는 단기적으로 합리적 선택일 수 있지만, 접근성 저하와 선택지 축소로 이어질 경우 악순환을 부를 가능성도 크다.
이런 가운데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의 합병 추진 소식도 전해졌다. 양사는 영화 제작 감소와 흥행작 부족, 관객 수 저하 등을 합병 배경으로 설명하며, 변화하는 콘텐츠 산업 환경 속에서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를 모색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현재는 기업결합 심사 사전협의 단계로, 실제 합병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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