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 감독이 첫 사극에 도전한다. 그는 아내 김은희 작가의 추천으로 이 작품을 맡았다고 밝혔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청령포를 배경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길에 오른 어린 선왕 단종 이홍위(박지훈 분)와 그를 맞이한 마을 촌장 엄흥도(유해진 분)가 만들어가는 관계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CGV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는 장항준 감독, 배우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전미도가 참석했다. 이날 자리에서 장 감독은 "단종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를 본 적이 없다"며 "한번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얘기헀더니 하라고 명이 내려왔다. (김은희 작가가) 촉이 좋다. 잘 나가는 사람 말을 들어야 한다"고 특유의 입담으로 현장 분위기를 풀었다.
유해진은 자신이 맡은 엄흥도라는 인물에 대해 "처음엔 잘 몰랐는데 엄씨 성을 가진 지인이 집안에서 크게 모시는 조상이라고 해서 그때부터 관심이 생겼다"며 "특별한 준비라기보다는 시나리오 속 인물이 그때 어떤 감정이었을지 계속 생각하려 했다"고 전했다.
박지훈은 "역사적으로도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단종이다 보니, 대본을 보며 순수하게 접근하려 했다"며 "어린 나이에 겪는 공허함과 무기력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어 "감독님과 리딩을 정말 많이 했다. 목소리 톤, 말투, 자세를 하나씩 상의하며 틀을 잡아갔다"고 말했다.
캐릭터를 위해 외형 변화도 감행했다. 박지훈은 "결론적으로 15kg 정도 감량했다. 어린 나이에 무기력함을 외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며 "말랐다 정도가 아니라 안쓰러워 보이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극 중 국궁 장면 준비 과정에 대해선 "국궁은 과녁을 맞히는 기술이라기보다 마음을 비우는 일이라고 들었다. 그걸 생각하며 계속 연습했고 덕분에 자세가 예쁘게 담겼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유해진은 박지훈과의 호흡에 대해 묻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촬영 현장이랑 분장차가 거리로 2km 정도 돼 산책하듯이 걸어다녔다. 그런데 박지훈 씨가 같이 걸어도 되냐며 따라오더라. 작품 얘기도 하고 잡다한 이야기도 하면서 정이 많이 쌓였다. 이번 연기에도 박지훈 씨 연기가 저에게 영향을 많이 줘 너무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치켜세웠다. 박지훈은 입을 뗴기도 전에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는 "감히 선배님을 입에 올리기 죄송스럽고 감사하다. 자꾸 여운이 남아 눈물이 맺힌 것 같다. 선배님과 연기하면서 단종이 아버지를 봤다면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촬영 당시가 그립다"고 회상했다.
한명회 역의 유지태는 기존 드라마나 영화에서 다루던 한명회와는 다른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는 "이전 매체에서 한명회는 교묘한 책략가로, 비주얼적으로 나약해 보이기도 했다면 이번에는 풍채가 크고 멋있는 한명회, 여성들에게도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한명회를 그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장 감독 역시 "후대에 간신으로 규정된 이미지가 강하지만, 당대 기록엔 건장하고 무예가 출중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캐릭터 설계의 방향을 설명했다.
궁녀 매화 역으로 첫 사극에 나선 전미도는 "전형적인 궁녀 모습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감독님이 말해주셨고, 현장에서 여러 아이디어를 냈다"며 "유해진 선배가 리액션으로 받아주며 장면이 풍성해졌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이어 그는 "매화를 준비하면서 궁중예법을 교육 받았는데 배우면서 궁녀들이 얼마나 통제된 곳에서 절제된 삶을 살았는지 느꼈다"며 "그런 상황에서 홍위를 향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는데, 눈빛에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캐릭터 연구 비화를 소개했다.
장 감독은 사극의 핵심인 고증에 대해서도 "기획 단계부터 여러 역사학자 교수들의 자문을 받았다. 풍속사 등 분야가 세분화돼 있어 계속 질문하고 자료를 얻었다"며 "조선시대 사람들이 몇 시에 일어났는지, 쉬는 시간엔 뭘 했는지, 뭘 먹었는지 같은 생활 디테일을 많이 찾았다. 역사의 줄기 사이 비어 있는 디테일의 간극을 어떻게 이야기로 메울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연극과 출신으로서 셰익스피어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며 셰익스피어 극의 형식을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장 감독은 "역사적 힘의 다툼과는 상관없는 곳에서 무대를 시작해 관객이 마을 사람들에 먼저 들어가게 하고, 뒤쪽에서 권력 갈등의 클라이맥스를 몰아넣는 방식으로 촬영했다"고 구성 의도를 밝혔다.
배우들은 촬영 현장의 분위기는 장 감독 덕분에 밝아졌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전미도는 "스스로의 연기에 의심이 많은데 감독님은 작은 디테일에도 칭찬을 잘해준다. 긴장하고 있는 배우에게 칭찬주는 건 여유를 만들어주는 일이다"라며 "현장 분위기가 좋아서 오히려 집중이 잘 됐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오랜만에 일을 많이 했다"고 너스레를 떨며 "옷도 자체 제작하고 고증에 신경 쓰는 등 디테일을 꼼꼼히 챙겼다. 이 영화를 통해서 작품을 대한느 마음가짐도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작품 활동은 '왕과 사는 남자' 전후로 나뉘겠다는 사회자의 말에 장 감독은 "제발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마지막으로 그는 "올해 봄 배우들, 스탭들과 함께 영월에서 합숙하며 찍었다. 서로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해줘서 감사하다"며 "이 영화가 좋은 성적을 내서 그 시절을 오래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왕과 사는 남자'는 2026년 2월 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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