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석 점 [조남대의 은퇴일기(88)]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12.17 14:01  수정 2025.12.17 14:01

소음이 멎을 때 비로소 들리는 소리가 있다. 그것은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되돌아오는 메아리다. 청송은 그런 울림의 고장이다. 복잡한 도심을 떠나 이곳에 서면, 산과 물, 고택의 숨결이 오랜 노래처럼 가슴을 두드린다. 처제가 사과 과수원을 일구고 있어 가끔 들르는 곳이고, 몇 해 전에는 처가 친지들의 모임을 하기도 했다. 청송은 조용하지만 깊은 음률로 나의 심연을 흔들어 놓는다.


빨갛게 읽은 청송 사과 ⓒ

과수원에 들어서면, 계절이 교과서처럼 흘러간다. 봄이면 가지마다 흰 꽃이 솜사탕처럼 피어나고, 여름의 햇살 아래 이파리마다 땀방울이 맺힌다. 가을에는 붉은 사과가 노을빛같이 가지 끝에 매달리고, 겨울에는 고요가 모든 수고를 덮어준다. 사과 한 알에는 농부의 땀과 바람 햇살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동서의 얼굴은 농주 기운이 스며 있어 늘 붉은 빛이 감돈다. 불그스름하게 그을린 얼굴이 있었기에 사과도 주인을 닮아 익어 가는 것이 아닐까. 올봄에는 안동, 청송, 영덕지방의 산불로 주변 과수원이 큰 피해를 보았지만, 처제네 과수원은 다행히 비껴갔다. 수시로 전화하며 산불의 진행 방향을 알아보는 마음은 벼랑 끝에서 바람을 견디는 나뭇잎처럼 떨렸다.


사과가 익어 가는 과수원 ⓒ

산골인 청송은 큰 일교차 덕분에 사과가 더욱 달다. 낮의 뜨거움과 밤의 냉기가 부딪혀 빚어낸 단맛은, 삶의 시련과 기다림이 섞인 인생의 맛과도 닮았다. 과수원에서 빨간 사과를 옷소매에 쓱쓱 문질러 한 입 베물면 혀끝에는 첫 키스처럼 상큼함이 번지고, 맑은 아침 이슬 같은 서늘한 즙이 입안 가득 퍼진다. 속살의 은근한 단맛이 목을 적시자, 가을 햇살이 산자락을 물들이듯 부드럽게 퍼져 온다. 이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처제 부부의 땀방울이 맺힌 결정체이며 한 해를 살아낸 시간과 땅의 정직한 숨결이 아닐까. 사과 한 알 속에는 비와 흙, 바람과 햇살이 버무려져 있는 듯하다. 이 맛은 기다림의 결실이요, 성실의 보답이다. 화려한 말이나 성급한 욕심이 아니라, 묵묵히 뿌리 내리고 기다릴 때 비로소 삶은 단단해진다는 것을, 붉게 익은 사과가 말 없는 철학자처럼 일깨워준다.


주왕산의 웅장한 바위 ⓒ

주왕산은 한 권의 고전이다. 웅장한 바위 절벽은 세월의 풍화를 견디며 서 있고,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물소리는 수천 년 전부터 이어진 노래 같다. 그 앞에 서면 늘 작은 존재임을 깨닫는다. 친척들과 담소를 나누며 올라가는 길 양쪽은 곱게 물든 단풍이 어서 오라 손짓하고 사과의 향기가 코끝으로 스며든다. 큰 처형이 “산은 늘 그 자리에 있는데, 우리가 늙어가는 게지”하고 웃는다. 웃음이 단풍 사이로 스며들자, 맞은편 절벽이 가을 햇살에 반사되어 은은히 빛난다. 굽이마다 바위의 표정은 달라진다. 어떤 바위는 칼날처럼 서늘하고, 다른 것은 주름 깊은 노인의 이마처럼 포근하다. 물이 흐르며 다듬어 놓은 작은 웅덩이는 거울이 되어 하늘을 비춘다. 물은 하늘을 품고, 하늘은 산을 보듬는다. 산과 마주한 순간, 한없이 겸허해진다.


주산지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고목 ⓒ

새벽의 주산지는 안개 속에서 숨을 고르는 듯했다. 수면 위 고사목은 뿌리를 잃었으나 여전히 우뚝 서 죽음을 넘어선 생명의 초상처럼 다가온다. 마음속에서 꿈틀대던 욕망과 근심도 잦아든다. 안개 속 빛의 농도가 미세하게 달라지면서 수면의 그림자 톤이 옅어진다. 먼 산 능선이 차례로 윤곽을 드러내고 고사목의 실루엣이 불쑥 나타난다. 순간 산의 풍경은 완벽한 대칭이 되어 물속에 거꾸로 선다. 장엄한 한 폭의 풍경화가 펼쳐진다. 새벽이슬을 맞으며 올라온 보람을 만끽한다.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때 느긋하게 사진을 촬영하고 내려올 때쯤 돼서야 여행자들이 삼삼오오 연못을 향해 다가온다. ‘좋은 장면은 내 카메라에 모두 담았는데 무슨 볼거리가 있을까’라는 만만한 생각이 스쳤으나, 곧 마음을 고쳐먹는다. 하루에도 수십 번 다른 표정을 짓는 곳에서 내가 건진 것은 단지 새벽 한순간뿐이 아니든가. 안개 속 주산지 앞에서 나는 ‘멈춤’의 의미를 배운다.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잊고 있던 호흡이 되살아난다. 고사목의 고요한 자세는 마치 인간에게 ‘비워야 산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송소고택 입구 ⓒ

청송의 마을 한 모퉁이에 자리한 송소고택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대문을 지나 마루에 앉으면, 세월의 숨결이 배어 나온다.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은 오랜 교향곡처럼 다가오고, 창호지 너머로 스며드는 햇살은 백 년 묵은 책 향기 같아 고즈넉한 풍경을 만든다. 오늘날 고택은 관광객의 안식처로도 활용되지만, 단순히 잠을 자는 곳을 넘어 ‘쉼’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공간이다. 스마트폰이 압도하는 현대의 일상에서, 고택의 담장은 외부의 소란을 차단하고 내면의 고요를 지켜준다. 현대식으로 단장된 고택의 깨끗한 침구에 하룻밤 몸을 눕히고, 마당을 거닐면 250년 전의 조선 시대 양반의 체취를 느껴볼 수 있을까. 고택의 공기에는 오래된 나무 향과 사람의 체온이 섞여 있다. 한때는 부와 권위를 상징하던 공간이 이제는 평범한 여행자에게 평화와 쉼을 주는 품이 되었다. 변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지붕을 맞대고 있는 송소고택 ⓒ

송소고택의 또 다른 감동은 담장을 맞대고 세 집이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삼 형제가 서로의 문과 마루를 향해 손을 내밀 듯 집을 지었다니. 깊은 형제애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대궐 같은 큰 기와집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 의지할 수 있었던 삶이 진정 행복해 보인다. 그 풍경은 도시 생활 속에서 아련한 울림으로 남는다. 문득 우리 팔 형제가 당시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담장을 나란히 맞대고 웃음과 믿음이 가득한 마을을 만들어 형제간의 우애가 담장 너머로 오갔을 것이다. 고택 앞에는 여행객을 위한 작은 편의시설도 들어섰다. 마을 입구의 깔끔한 한식당은 출출한 배를 채워주었고, 햇볕이 따스하게 비치는 카페는 아늑한 쉼터가 되었다. 이 현대적 시설조차 고택의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고 서로 어울리니 과거와 현재가 함께 숨 쉬는 풍경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송소고택 앞에 서니 ‘가깝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깨닫는다. 벽을 허물지 않아도 마음이 통했던 시대, 눈빛만으로도 정이 오가던 삼 형제간의 우애가 부러워진다. 현대의 편리함 속에서 잊고 지내던 인간의 온기가 그 담장 사이로 되살아나는 듯했다.


송소고택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처가 식구들 ⓒ

청송에서의 하루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마음이 머무는 성찰의 시간이었다. 사과 과수원에서 배운 기다림, 주왕산과 주산지에서 마주한 생명의 흐름, 송소고택의 마루에서 느낀 고요함은 서로 다른 풍경이지만 결국 한 줄기로 이어졌다. 삶이란 자연의 품 안에서 뿌리내리고, 세월의 바람 속에서 익어 가며, 고요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길임을 청송이 일러주었다. 그래서 그곳의 이름은 여행이 끝나도 오래도록 가슴 속에서 잔향처럼 남는다.


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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