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바다'→'대홍수',넷플릭스발 한국 SF 장르 실험 [D:영화 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2.16 07:13  수정 2025.12.16 07:13

한국 극장 산업에서 SF는 오랫동안 제작이 까다로운 장르였다. 기술·세트·VFX에 투입되는 비용이 높고, 국내 시장 규모만으로는 회수가 쉽지 않아 대형 투자사들도 쉽게 선택하지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SF 오리지널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는 점은 자연스럽게 눈길을 끈다.


OTT 플랫폼은 극장 흥행 수익에 직접 영향을 받지 않는 구조라, 제작비가 큰 장르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실험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공개를 통해 회수 가능성을 넓힐 수 있다는 점 역시 SF 제작의 장벽을 낮춘 요인으로 꼽힌다.


넷플릭스발 한국형 SF의 출발점은 ‘고요의 바다’였다. 이전에 ‘승리호’가 있었지만, 원래 극장용으로 제작된 뒤 팬데믹 상황에서 넷플릭스로 옮겨간 작품이었기에 플랫폼이 처음부터 기획에 관여한 사례로 보긴 어렵다.


‘고요의 바다’는 필수 자원이 고갈된 근미래, 달 기지에 남겨진 비밀을 조사하러 떠난 대원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당시 한국 시리즈물에서는 드물었던 달이라는 공간을 전면에 내세웠다. 새로운 스케일과 장르적 확장은 시도 자체로 의미가 있었지만, 세계관 대비 서사적 밀도와 감정선의 안정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며 가능성과 한계가 동시에 드러났다.


이어 등장한 두 번째 오리지널 SF ‘정이’는 폐허가 된 미래에서 전설적 용병의 뇌를 복제해 전투 A.I.를 만들려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연상호 감독의 참여로 공개 전부터 관심을 모았고, 공개 후 글로벌 톱10 1위에 오르며 강한 화제성을 입증했다.


그러나 A.I. 윤리라는 묵직한 주제 의식이 가족 감정선과 결합되면서 장르적 긴장감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설정의 규모에 비해 이야기의 중심축이 감정으로 기울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19일 공개를 앞둔 세 번째 작품 ‘대홍수’가 이 흐름의 다음 자리를 잇는다. ‘대홍수’는 대홍수가 덮친 지구의 마지막 날, 물에 잠겨가는 아파트 속에서 마지막 생존 가능성을 붙잡으려는 인물들의 사투를 그린 작품으로, 재난과 SF가 결합된 블록버스터다.


초반부는 시각 효과와 밀도로 재난 장르의 긴장을 구축하며, 일상적 공간인 아파트가 순식간에 생존 구역으로 변하는 과정을 통해 재난을 현실적 불안으로 끌어온다.


그러나 이야기를 전환시키는 핵심은 중반 이후 드러나는 이모션 엔진이다. 인공지능에 인간의 감정을 부여하는 이 설정이 서사의 축을 재난에서 감정·윤리·기억이라는 SF적 질문으로 이동시키며, 작품 전체가 새로운 방향성을 띠게 된다. 대홍수라는 거대한 재난은 결과적으로 이러한 질문을 끌어올리는 장치에 가깝다.


국내에서 제작이 쉽지 않았던 SF 장르가 넷플릭스를 통해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는 점에서 변화의 의미는 분명하다. 다만 지금까지의 결과물을 보면,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서 높은 완성도로 평가받은 작품은 아직 없었다. 그런 만큼 이번 ‘대홍수’의 성취와 반응이 향후 한국형 SF가 어떤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 가늠하는 하나의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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