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에서 피어난 ‘스마트 감귤’…한라산 남쪽을 다시 설계하다[新농사직썰-혁신의 씨앗⑨]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입력 2025.12.15 08:30  수정 2025.12.15 09:44

품종·스마트과원·부산물로 잇는 감귤 한 사이클

데이터로 지키는 감귤…가벼워진 농민의 어깨

기후위기 속, 노지 감귤의 다음 10년

제주도는 여전히 감귤 농업이 중요한 지역이다. 그러나 제주도 역시 기후변화에 피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감귤연구센터는 이런 변화에 대응하는 신품종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미래 농업의 희망이 싹 트는 현장. 농촌진흥청 연구소의 혁신적인 발자취를 따라간다. 농촌진흥청 연구소 곳곳에 숨겨진 혁신의 씨앗들을 찾아, 대한민국 농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기획 시리즈 ‘혁신의 씨앗’을 시작한다. 신농사직썰 시즌4인 혁신의 씨앗은 기초 연구부터 실용화 단계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자들의 열정과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농업 발전을 위한 주요 사업들을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데일리안에서는 ‘혁신의 씨앗’ 시리즈를 통해 우리 농업의 밝은 미래를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제주 감귤은 한때 ‘겨울이면 당연히 찾는 과일’이었다. 최근에는 값싼 수입 과일과 기후 변동, 고령화가 겹치면서 더 이상 ‘저절로 팔리는 작목’이 아닌 신세다.


감귤나무가 늙어가는 사이, 산지 가격은 출렁였다. 농가의 노동시간은 줄지 않았다. 태풍과 고온에 취약한 노지 과원은 해마다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안현주 감귤연구센터장은 “이대로라면 언젠가 제주에서 감귤을 포기하는 농가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감귤연구센터는 제주 감귤의 품종·재배·가공·인력 양성을 한 축에서 다루는 유일한 국가 연구 거점이다.


노지 온주밀감 전성기부터 만감류와 다양한 국내 육성 품종의 확산, 최근 기후위기와 시장 개방까지, 감귤 산업의 굴곡이 모두 이 센터의 연구 어젠다 속에 켜켜이 쌓여 있다.


안 센터장은 “이제 감귤은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제주 농업과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산업’으로 봐야 한다”며 “재배 기술 하나, 품종 하나가 바뀌면 농가 소득과 지역 일자리, 가공·관광까지 연결된 생태계 전체가 함께 흔들린다”고 강조한다.


감귤연구센터는 제주 감귤과 함께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노지 감귤도 스마트팜이 될 수 있을까


센터가 가장 먼저 손을 댄 지점은 노지 감귤의 ‘뼈대’였다. 비닐하우스가 아닌, 비바람을 정면으로 맞는 노지 과원에 센서와 관수·시비·방제 시스템을 입히고, 기계작업이 가능한 수형과 재식거리, 작업로를 표준화하는 ‘노지 스마트과원’ 조성 모델이 그 출발점이다.


연구진은 기존 과수원의 문제를 이렇게 정리했다. 대부분 과원이 밀식된 상태라서 수확과 전정이 모두 손에 의존하고, 열매 크기와 당도 편차도 컸다. 기상 재해가 닥치면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지 알기 어려웠다.


이에 따라 수관 높이와 폭, 가지 각도, 나무 간 간격을 계측해 기계가 드나들 수 있는 표준 수형을 제안하고, 토양 수분과 온도, 기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으는 센서를 더해 관수·시비를 자동·반자동으로 제어하는 설계를 짰다.


시험 결과를 정리한 자료를 보면, 노지 스마트과원에서 관리한 구역은 같은 품종이라도 당도와 산도 편차가 줄고, 비상품률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문영일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감귤연구센터 연구관은 “지난 2024년 여름 당시 폭염과 폭우가 겹치면서 노지감귤에서도 열과가 많이 발생했다”며 “이상기후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확률이 큰데 2024년이 그 피해를 단적으로 보여준 해”라고 말했다.


문 연구관은 이어 “노지라서 어쩔 수 없다고 여겼던 품질 편차를 데이터와 설계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바로 노지 스마트과원”이라며 “노지 스마트과원은 고령 농가에게 ‘나무를 포기하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지 감귤 스마트과원은 미래 감귤 농사의 핵심이다. 감귤연구센터는 이 연구가 상용화되면 노지 감귤의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스마트과원에서 품종 포트폴리오로


센서와 수형이 ‘뼈대’를 세웠다면, 그 위를 채우는 것은 품종과 수확 시기의 조합이다. 감귤연구센터는 2000년대 이후 다양한 국내 육성 감귤 품종을 선보였다. 출하시기를 11월부터 다음 해 봄까지 분산시키고, 당도·산도·과피색 등 품질 특성을 세밀하게 분석해 농가의 선택지를 넓혀왔다.


2023년 기준 특정 만감류·국산 품종을 조합해 11월부터 3월까지 차례로 수확하는 농가는 단일 품종 중심 농가에 비해 연중 소득 변동 폭이 낮았다. 시장 가격 하락 시 타격도 상대적으로 분산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안 센터장은 “품종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같은 면적, 같은 노동으로도 소득과 리스크 관리가 완전히 달라진다”며 “스마트과원 기술은 그 전략을 뒷받침하는 인프라”라고 설명했다.


감귤연구센터는 여러 품종의 재배 면적과 수익 구조, 비상품률을 비교 분석하며 ‘다양한 우리 감귤’이 농가 소득을 지키고 소비자 선택지를 넓히는 해법이라고 보고 있다.


안 센터장은 “소비자는 다양한 맛과 식감을 원하고, 농가는 수확 시기와 판로를 나누고 싶어한다”며 “우리가 하는 일은 그 둘을 데이터로 연결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감귤연구센터 전경.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버려지던 껍질에서 다시 시작되는 감귤


스마트과원과 품종 전략이 감귤산업의 앞단을 책임진다면, 부산물 자원화는 뒷단을 책임지는 축이다. 가공 과정에서 쏟아지는 껍질과 규격 외 감귤은 그동안 대부분 저가로 처리되거나 버려졌다. 센터는 여기서 기능성 물질과 친환경 소재, 미생물 제제를 뽑아내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감귤 껍질과 과피에서 추출한 특정 성분과 미생물 제제를 활용해 저장성 향상, 방제 보조제, 기능성 식품 소재 등으로의 활용 가능성을 시험 중이다.


감귤 부산물에서 추출한 성분을 처리한 과실이 저장 중 부패율이 낮고, 품질 유지 기간이 연장되는 경향이 관찰됐다. 폐기비용 절감과 추가 수익 창출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안 센터장은 “감귤 한 알을 끝까지 쓰는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농가 소득도, 환경도 지킬 수 없다”며 “껍질과 작은 과일이 농가에 다시 수익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안현주 감귤연구센터장은 산적한 감귤 현안을 풀어가는데 집중하고 있다. 센터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것도 감귤이 한국 과수농업 전체의 미래를 실험하는 일이라는 사명감 때문이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연구실과 농가 사이, 교육이 놓인 자리


감귤연구센터 역할은 실험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노지 스마트과원 모델과 품종 포트폴리오, 부산물 자원화 기술이 현장에 안착하려면 이를 이해하고 운영할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센터는 농가 대상 교육과정, 현장 설명회, 컨설팅 프로그램 등을 통해 농민들이 품종 선택, 가공·부산물 처리까지 한 번에 고민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안 센터장은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서 저절로 현장에 뿌리내리는 건 아니다”라며 “농민이 자신의 과원을 이해하는 눈을 키우는 교육이야말로 연구만큼 중요하다”고 밝혔다.


스마트과원 시범 농가의 성과를 바탕으로 인근 농가로 확산되는 과정, 부산물 자원화 실증 사업에 참여한 농가가 가공·체험 사업으로까지 확장하는 과정 등은 센터가 ‘연구소’이자 ‘교육 플랫폼’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안 센터장은 “감귤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은 곧 한국 과수농업 전체의 미래를 실험하는 일”이라며 “어떻게 하면 농민의 노동과 위험을 줄이면서도, 땅의 생산성을 오래 지킬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 센터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新농사직썰'을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