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용각산 기억하시나요?…시대를 담은 제약사 광고 변천사 [약간궁금]

이소영 기자 (sy@dailian.co.kr)

입력 2025.12.15 06:00  수정 2025.12.15 06:00

계몽과 신뢰, 활력과 재건, 재미와 스토리, 가치와 공감까지

대중에게 익숙한 슬로건 내세워 직접적 매출 확대 기여

전문 의약품 광고 제한에 ESG 및 사회적 책임 강화 나서



약(藥)과 소비자 사이(間) 장벽을 허무는 코너입니다. 병원에서 처방 받는 전문 의약품부터 편의점에서도 구매 가능한 일반 의약품, ‘약’이 아니지만 제약 회사들이 만드는 건강기능식품까지, 약간이라도 궁금한 게 있으면 진지하게 물어보고 답을 구해 쉽게 풀어드립니다.



1936년 12월 27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유한양행 안티후라민 광고 ⓒ유한양행

TV를 켜거나 유튜브를 볼 때,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광고와 마주합니다. 그중에서도 제약 기업의 광고는 우리의 일상과 꽤 밀접하게 맞닿아 있죠.


“피로는 간 때문이야”라는 멜로디를 흥얼거리거나, 두통이 올 때 특정 브랜드의 진통제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 광고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놀랍게도 약과 여러 잡화를 팔던 독일계 기업 세창양행의 1886년 ‘고백’ 광고입니다. 당시 세창양행이 수출입하던 품목 목록을 나열한 형식으로 소개됐습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의약품 광고 이야기’를 펼쳐보면 우리 광고사의 흥미로운 기원을 마주하게 됩니다. 과연 우리나라 최초의 의약품 광고는 무엇이었을까요? 1896년 독립신문에 등장한 세창양행의 말라리아 치료제 ‘금계랍’이 주인공입니다.


당시 위생 환경이 열악했던 조선에서 ‘학질’이라 불리던 말라리아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과거 학질에 걸리면 고열과 오한에 시달리다 사망하는 일이 다수였기 때문입니다.


이때 등장한 금계랍 광고는 그야말로 혁신적이었습니다. “한 번만 먹으면 학질이 즉시 떨어진다”는 직관적이고 강력한 문구는 당시 사람들로부 서양 의학의 효능을 강렬하게 각인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창양행은 금계랍 신약의 용도와 효능을 문자로 설명했죠.


단순 약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서양 문물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공존하던 시기에 ‘과학적 효능’을 앞세운 마케팅이 시작된 것입니다. 금계랍 효능에 대한 신뢰가 과도해지면서 말라리아 치료를 넘어 해열 진통제로 오용, 위조약 유통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죠.


1930년대에도 흥미로운 사례가 등장합니다. “무조건 낫는다”는 식의 신문 광고가 판을 치고 있을 당시 유한양행은 ‘안티후라민’ 제품의 작용 원리와 용법을 의사가 환자에게 알려주듯 과학적 근거와 함께 설명했죠.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이 광고는 대중을 단순한 소비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지식을 전달해야 할 ‘계몽의 대상’으로 존중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드는 것이 곧 애국”이라 믿었던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철학이 광고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셈이죠.


1960년대 산업화 시기, 제약사는 대중 매체의 ‘큰 손’으로 떠오릅니다. 이때 우리에게 익숙한 명카피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동아제약 박카스D 토끼와 거북이 광고편 ⓒ동아제약

동아제약의 ‘박카스’는 ‘젊음과 활력’이라는 간결한 문장으로 고단한 산업 역군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국민 드링크로 자리 잡았습니다. 대중 인기에 동아제약의 ‘박카스D’는 1966년 단일 품목으로 국내 전체 의약품 생산 실적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쾌거를 거두죠.


일동제약은 ‘체력은 국력’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아로나민’을 통해 시대적 메세지를 담았죠. 당시 아로나민의 흥행에 힘입은 일동제약의 매출은 1967년 1억원에서 1977년 50억원으로 증가합니다.


1970년대로 접어들며 광고는 제품의 기술력을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보령제약의 진해거담제 ‘용각산’은 1973년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라는 카피를 선보였습니다. 미세한 분말 입자를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청각적 요소로 증명한 이 광고는 제품의 기술력을 강조하며 소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1980년대에는 대중문화와 결합한 광고가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보령제약의 위장약 ‘겔포스’는 당시 국민 드라마였던 ‘수사반장’을 패러디해 “위장병, 잡혔어!”라는 명대사를 탄생시켰습니다.


드라마 주인공들이 직접 출연해 범인을 잡듯 위장병을 잡는다는 설정은 겔포스의 효능을 유쾌하고 직관적으로 전달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후 의약 분업과 디지털 시대를 거치며 광고의 트렌드는 다시 한번 바뀝니다. 전문 의약품의 대중 광고가 금지되면서 제약사들은 단순한 효능 홍보를 넘어 사회적 가치와 ESG 경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죠.


동아제약 박카스D 모두의 피로를 위해 광고편 ⓒ동아제약

한미약품은 1981년부터 이어온 ‘사랑의 헌혈’ 캠페인을 통해 인간 존중의 가치를 꾸준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동아제약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익숙한 박카스 광고를 통해 의료진과 국민을 응원하는 ‘회복’의 메시지를 전한 바 있죠.


말라리아 약 한 알에서 시작해 과학적 계몽을 거쳐, 이제는 사회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대한민국 의약품 광고. 오늘 저녁, 무심코 지나쳤던 제약사 광고를 한 번 유심히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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