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릿 ‘낫 큐트 애니모어’…멜라토닌 먹고 자면 꾸는 꿈 [MV 리플레이 16]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5.12.11 08:53  수정 2025.12.11 08:55

쇼츠, 릴스 등 짧은 길이의 영상물들만 소비되는 현재 가수가 곡 안에 담아낸 상징과 그들의 세계관, 서사를 곱씹어 볼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아티스트가 담아낸 ‘작은 영화’인 뮤직비디오를 충분히 음미해보려 합니다. 뮤직비디오 속 이야기의 연출, 상징과 메시지를 논하는 이 코너를 통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고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재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빌리프랩

그룹 아일릿(ILLIT)이 11월 24일 싱글 1집 ‘낫 큐트 애니모어’(NOT CUTE ANYMORE)를 발매하고 이제껏 본 적 없는 색다른 매력을 발산 중이다. 동명의 타이틀곡 뮤직비디오는 발매 하루만에 1000만회를 넘겼는데, 귀여움에 가려진 진짜 ‘나’의 다양한 모습을 이야기하는 아일릿의 모습이 묘한 중독성을 일으킨다.


줄거리


뮤직비디오는 ‘큐트 이즈 데드’(CUTE IS DEAD)라고 적힌 핑크색 묘비를 응시하는 멤버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귀여움 단절 선언’을 한멤버들은 다양한 장소에서 더 이상 귀엽지 않음을 증명하는데, 가방 속 키링, 손거울, 날개달린 케이스를 낀 핸드폰 등을 하나씩 꺼내는 민주와 아기자기한 방 안 무표정의 이로하 등을 비추다가 이로하의 방에 미러볼이 들어오면서 아일릿 특유의 독특한 장면이 연출된다. 그 미러볼 속에서는 아일릿 멤버들이 나와 절제된 동작과 무표정으로 군무를 선보인다. 1절이 끝나면 원희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는데, 방 안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는 스크림 가면을 날리니 그 속에서 이로하가 나오고, 어둑해진 바깥에서는 모카가 스타트건을 쏘며 스포츠카의 경주가 시작된다. 갑자기 그 차들끼리 충돌하는데 하루가 지난 건지 어스름한 새벽, 경찰이 조사를 나와보니 그 차 안에 타있던 건 아일릿 멤버들이었다. 조사를 받고 난 후 운전자 원희는 킥보드를 타고 도로를 내달리며 끝이 난다.


해석


아프거나 피곤할 때 약을 먹고 푹 자면 꾸는 꿈 같은 장면들이 계속해서 연출된다. 예를 들어 아빠의 양복이 떠오르는 ‘대디 코어’ 룩을 입은 윤아가 하이힐 대신 모카가 강에서 배를 타고 낚시하다가 건진 굽이 낮지만 반짝이는 젤리슈즈를 신고 근엄한 포즈와 표정을 짓는데 이처럼, 소녀들이 느끼는 ‘나도 날 모르겠는 감정’을 시각화해 풀어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메인 테마로 잡은 만큼 계산된 엉뚱함이 곳곳에 배치돼 있는데, 이는 인위적이기보다는 독특함을 불러일으킨다. 곡 자체가 밝고 통통 튀는 메인 비트에 몽환적인 사운드가 한 스푼 첨가되면서 오묘함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의도한 장치더라도 신비로워보이는 것이다.


뮤직비디오 후반부 차 사고를 내고 억울함을 표출하는 원희의 과장된 모델 포즈와 열을 맞춰 앉아 그 모습을 응시하는 멤버들의 모습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상황의 연속에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그러나 아일릿의 귀여운 모습을 아직 떠나보내기 싫은 팬들에겐 반가운 장면일 것이다. 슈퍼카로 거하게 사고를 친 원희는 이후 인형, 비즈, 털뭉치 등 요즘 학생들이 가방에 달고 다니는 ‘귀여운’ 아이템을 단 핑크색 킥보드를 타고 도로를 질주한다. 이는 아직 아일릿이 귀여움을 버리기엔 이르기에 다음 활동에선 기존 아일릿 콘셉트로 컴백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빌리프랩
총평


아일릿은 데뷔곡 ‘마그네틱’(Magnetic)부터 ‘틱택’(Tick-Tack), '빌려온 고양이'(Do the Dance) 등 대놓고 귀여운 콘셉트의 곡에 맞게 안무를 맞추고 의상을 입었다. 아일릿 멤버들은 1년 간 “세상 사람들이 다들 귀엽다고 하는데 진짜 ’나‘의 모습은 뭘까“라는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 의문을 담은 ‘낫 큐트 애니모어’는 “난 이제 더 이상 귀엽지 않고, 남들과 다른 취향이 있다”고 어필하는데, 사춘기 소녀의 이런 투정이 얼마나 ‘귀여운지’ 이번 곡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서브컬처의 미학을 적극 활용해 현실을 초월한 소녀들의 상상과 엉뚱함을 표현한 ’아일릿 코어‘ 역시 잘 살렸다.


인상깊은 점은 뮤직비디오 속 원희의 비중이다. ‘큐트 이즈 데드’라는 묘비를 처음 마주하는 모습, 2절 시작 파트를 맡아 거울 속 스크림에게 펀치를 날리는 장면, 마지막 차 사고를 내고 억울해하는 제스처 이후 킥보드를 타는 것까지 뮤직비디오의 굵진한 흐름을 원희가 끌고 간다. 아일릿의 귀여운 이미지에는 원희의 기여도가 높은 반면 소화 가능한 팔레트가 좁아 강렬하거나 어두운 콘셉트의 곡에 어려움이 생기는 것도 같은 멤버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이번 활동을 통해 원희는 팬들에게 멋진 ’기니오빠(원희의 팬 커뮤니티 ’위버스‘ 닉네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낫 큐트 애니모어‘가 멤버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려는 시도로도 읽힌다.


한줄평


‘아일릿은 더 이상 귀엽지 않아요!’라는 꿈을 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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