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은 늘지만...신조선가 이미 높다는 신중론
직접 운용 선사들 ‘선가 더 오른다’는 베팅 없어
한미 마스가 협력, 글로벌 장기 발주 구조 변수로
지난 2월 한화오션이 세계 최초로 건조한 200번째LNG운반선.ⓒ한화오션
고부가가치 선종인 액화천연가스 운반선(LNGC) 발주가 내년 다시 본격화될 전망이다. 다만 글로벌 신조 수요가 눈에 띄게 줄어든 상황에서 신조선가(조선사가 새 선박을 제작해 판매하는 가격)가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 있는 만큼, 선가 추가 상승을 전제로 한 낙관론보다는 신중한 기조가 유지하고 있다.
8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내년 LNGC 대규모 발주의 단기 수혜보다는 중장기 수요 질과 선가 흐름을 더 주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의 ‘해운·조선업 2025년 3분기 동향 및 2026년도 전망’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누적 글로벌 신조선 발주량은 3264만CGT(표준선 환산톤수)로 작년 동기보다 46.9% 감소했다. 2021년 이후 발주된 선박의 인도가 본격화된 데다 미국 관세 정책 강화 등으로 해운 시황과 신조 수요가 함께 위축된 결과다.
선종별로는 컨테이너선을 제외한 모든 선종에서 발주가 줄었다. 컨테이너선 발주는 1538만CGT로 7.7% 증가했지만 탱커(445만CGT·69.4%↓), 벌크선(350만CGT·70.9%↓), LNG 운반선(194만CGT·73.4%↓) 발주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컨테이너선만 미·중 관세 이슈에 따른 물동량 쏠림으로 예외적 회복세를 보인 셈이다.
이 같은 발주 부진에도 신조선가 지수(클락슨 기준)는 지난달 기준 184.33포인트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발주 둔화로 완만한 하락세를 보였지만 과거 10년 평균 대비 30%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국내 조선사가 제한된 공급 능력 범위에서 충분한 일감을 확보해 가격 협상력이 유지되고 있고 친환경 선박 중심 고가 수주가 이어진 영향이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고선가·수익성 개선 기조 위에 내년 이후 LNGC 발주 회복이 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 선박공학회사 GTT는 올해 확정된 8400만톤(t) 규모의 신규 액화 프로젝트를 감안하면 약 150척의 LNG 운반선 수요 창출이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한국 조선사의 LNG 운반선 연간 생산능력(70척 안팎)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내년 LNGC 대규모 발주의 단기 수혜보다는 중장기 수요 질과 선가 흐름을 더 주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그러나 발주량 증가와 선가 반등을 단순히 연결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LNG선을 직접 운용하는 글로벌 선사들이 실제 비용에 가장 민감한 이해당사자인 만큼, 향후 선가 상승이 명확히 예상됐다면 2028년 인도 슬롯(선박 건조 공간)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게 나타났어야 한다는 논리다.
김용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국내 조선업체들은 2028년 인도 슬롯을 대부분 채운 상태로, 인도 스케줄상으로도 2028년 인도량은 내년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다만 마감된 2028년 인도 물량 중 LNGC 비중은 2025~2027년 대비 상당히 낮은데, 주요 선사들이 내년 LNGC 발주 회복을 알고 있음에도 2028년 납기 슬롯의 직접적인 발주가 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환경 규제 강화로 노후 LNG선 교체 수요 증가가 예상되지만 이 역시 신조선가 지수의 지속적인 상방 요인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글로벌 LNG선 선복량의 23%를 차지하는 구형 스팀터빈 LNG선은 연료 효율이 낮아 점진적 폐선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이들 선박 상당수가 장기 용선이 아닌 스팟(단기) 시장에 몰려 있어 교체 발주는 스팟 운임 개선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조선업계는 물량 회복 가능성에는 긍정적이면서도 가격 반등에 대해선 경계심을 거두지 않는 모습이다.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도 대형 LNG 프로젝트를 비롯한 장기 발주 시장의 주요 변수로 꼽힌다.
박현준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미국은 한국 대비 높은 인건비와 숙련 인력 부족, 근로 문화 차이로 인해 생산성 저하 리스크가 존재한다”면서 “해양엔지니어와 용접공 등 주요 직종 임금을 비교하면 미국이 1.7~2배가량 높은 수준으로, 잔업·특근에 대한 거부감도 커 현지 생산성 관리 수준에 따라 대미 진출 성패가 좌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선업계는 결국 대규모 LNG선 발주 재개를 단기 호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중장기 수요와 선가의 방향, 해외 사업 리스크까지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내년 이후 LNG선과 친환경 선박 발주, 미국발 상선·함정 수가 차례로 열리면 한국 조선사의 일감과 수익성은 당분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면서도 “선가가 이미 높은 만큼 ‘더 비싸게 받는 것’보다 공정 효율과 리스크 관리로 이익을 지키는 전략이 중요한 국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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