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통과로 더욱 불안해진 국내 노사관계
정부 지원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 경영혁신으로 슈퍼스타기업 되어야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같은 경영혁신 방법을 벤치마킹해야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8월 20일 모임을 하고 '슈퍼스타기업 만들기'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우리나라에서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슈퍼스타기업들이 쏟아진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하지만 국내외 여건을 보면 걱정부터 앞선다.
국내에서는 재계의 눈물 어린 호소에도 불구하고 8월 24일 국회를 통과하고 9월 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큰 걱정거리다. 노란봉투법은 △하청 기업 노조가 원청 기업과 단체협상을 할 수 있게 길을 열고 △불법파업 손실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문제는 아직 법 시행이 6개월 남았는데 벌써 조선·자동차·철강 등에 파업의 불길이 번진다는 사실이다. 현대차는 7년 만에 파업에 돌입했고, 포스코 노조는 창사 57년 만의 첫 파업을 검토 중이다. 봄 파업을 뜻하는 춘투(春鬪)에서 그치지 않고 가을 파업인 추투(秋鬪)도 본격화하게 됐다.
여당과 고용노동부에서 노란봉투법의 취지를 설명해도 시장은 정확하게 안다. 노란봉투법은 결국 기업인들이 인력 고용을 피하고 대체 수단을 쓰게 되리라는 것을…. 노란 봉투 법 통과 이후 주식시장에서 로봇 관련주들이 급등한 것은 슬픈 코미디다.
정부·여당을 보면 이재명 대통령은 “기업이 있어야 노동자가 존재하고 노동자 협력이 전제돼야 기업도 안정된 경영환경을 누릴 수 있다”라고 했지만, 대통령 주변 관료들이나 80년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져 보인다. 순간의 착각이었겠지만 국회 답변에서 1.0 수준인 PBR(주가순자산비율)을 10 정도라고 대답한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더욱 불안하다. 앞으로 5년 내내 기업들로서는 긴장하고 걱정할 수밖에 없다.
미국 법원에서 불법이라는 판결이 있었지만, 여전히 트럼프의 관세 포화가 무섭다. 국내 경기는 좀처럼 살아날 줄 모르고, 나라 경제성장률도 0%대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슈퍼스타(Superstar)기업'은커녕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서바이벌(Survival)기업'만 늘어나는 상황이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슈퍼스타기업이 되고 싶다면, 자기 나라 기업을 애지중지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의 정부 지원을 기대하면 안 된다. 그리고 국제 경제 환경의 유리함 같은 것도 애당초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스스로의 경영혁신으로 불안을 내공으로 극복하고 불황을 대박의 기회로 삼는 회사만이 슈퍼스타기업이 될 수 있다.
경제단체들이 말하는 '슈퍼스타기업'이란 '초일류기업'과 비슷한 의미 일 게다. 경영 컨설턴트인 마이클 트레이시는 "초일류기업이란 창의적 제품개발력, 효율적 생산력, 고객지향의 마케팅 등 3가지 경쟁력을 만족시키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거나, 제품이나 서비스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는 기업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재계가 간절하게 슈퍼스타기업을 소망하는 것은 기업의 실제 수명은 생각보다 짧은데 우리나라 기업들의 위상은 정체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2005년 만해도 엑슨모빌·GE·MS·시티은행·월마트 등이 10대 기업(시가총액 기준)에 들어갔으나, 2025년에는 인공지능(AI)을 선도하는 엔비디아·MS·애플·아마존·알파벳 등이 대신 채웠다. MS를 제외하고 모두 바뀐 셈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10대 그룹(자산총액 기준)에서 상위권이 삼성·SK·현대차·LG·롯데 등으로 20년간 거의 변하지 않은 채 KT와 한진이 빠지고 HD현대와 농협의 진입이 있었을 뿐이다. 지난 20년간 10대 수출 품목도 반도체·자동차·무선통신기기·선박·석유제품 등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디스플레이와 정밀화학원료가 새로 들어가고 컴퓨터와 영상기기가 빠진 정도다.
그나마 현재 우리나라에서 확실한 슈퍼스타기업으로 꼽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삼성전자다. 그래서 슈퍼스타기업 만들기는 곧 '삼성전자 같은 기업 만들기'로 바꿔 말할 수 있겠다. 삼성전자의 성공 스토리를 참조하면 도움이 된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新聞)는 지난해 주요 상품·서비스 71개 분야 가운데 한국기업은 4개에서 점유율 1위였다고 9월 1일 밝혔다. 4개 품목은 모두 삼성전자가 1위였는데, 2위도 모두 한국기업이었다. D램 반도체 점유율은 삼성전자 41.1%, SK하이닉스 33.8%였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은 삼성전자 41.7%, LG디스플레이 23.8%로 집계됐다. 낸드플래시 메모리는 삼성전자 34.8%, SK하이닉스 21.3%로 나타났다. 초박형(超薄型)TV는 삼성전자 16.3%, LG전자 14.6%였다. 미국기업은 27개, 중국기업은 18개, 그리고 일본 기업은 9개에서 1위였다.
일본은 지금도 삼성전자를 무척 경계한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그 무엇도 겁나지 않고 우습게 보이는데 오직 삼성전자 하나만 예외"라는 말을 쉽게 듣는다. 일본 경제인들은 지금도 ‘후쿠다 보고서’가 없었더라면 하고 아쉬워한다. 후쿠다 보고서란 삼성전자 디자인 고문이던 일본인 후쿠다 시게오가 1993년 이건희 회장에게 제출한 56페이지 분량의 적나라한 내부 비판 보고서를 말한다. “삼성전자 규모의 회사가 신제품을 만드는데 상품기획서가 없다” “상품을 디자인할 때 A안, B안, C안은 출발부터 개념이 다른데도 윗사람들은 적당히 섞어서 제품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느닷없이 디자인을 사흘 안으로 해 달라고 주문한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격노한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이란 경영혁신을 시작했고 이는 오늘날 삼성을 슈퍼스타기업으로 만든 힘이 되었다.
일본디베이트연구협회는 ‘세계 최강기업 삼성이 두렵다’란 책에서 “일본을 모방해서 출발한 삼성이 지금 일본이 텃밭으로 자부해 온 분야를 휩쓸고 있다”면서 "일본 기업의 경영진은 이건희의 손톱의 때라도 달여 마시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칼을 갈았다. 한국은 회장이 한 시간 만에 수십억 달러의 투자 결정을 내리는데 일본은 왜 한 달 넘게 걸렸나? 왜 호황을 예상하지 못하고 불황 때 성급히 생산을 줄였나? 그래서 일본에선 ‘실패학’ 관련 서적이 날개 돋친 듯 팔리기도 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삼성전자조차 이건희 회장이 쌓아 놓은 영광이 많이 바랜 채, 지금은 슈퍼스타기업 또는 초일류기업이라고 말하기 다소 민망할 정도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삼성전자는 여전히 저력을 지니고 있다.
삼성전자 임원들 모임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노키아, 소니, 모토로라 등의 과거 사례에서 보면 1등 기업이 역성장하는 일은 몰락의 출발점이다." "대마불사? 삼성전자도 몰락할 수 있고 일단 위기가 시작되면 회생이 어렵다. 우리는 정말 실력으로 일등이 됐나? 경쟁자가 부진해서 올라간 측면도 있다." "짐 콜린스가 분석한 몰락의 5단계에서 우리는 이미 3단계에 와 있다. 1단계는 자만으로 반복되는 성공에 도취해 우리의 모습이 을(乙)이 갑(甲)이 되어 거만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2단계는 과거의 성공방식에 집착하며 타성에 젖는 것인데, 우리는 이미 관료주의에 젖어 들고 있다. 3단계는 경영진과 현장, 본사와 지사, 사업부 간 소통이 안 되는 불통이다. 우리는 이미 3단계로 몰락의 한 가운데에 진입해 있다." 모두 솔직한 자기비판인데, 그런 반성이 경영혁신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바이오나 화장품 업계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몇몇 젊은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이 삼성전자와 같은 슈퍼스타기업으로 성장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정부 지원이 탁월하고 국제 여건도 유리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경영혁신으로 도약하는 회사가 진정한 슈퍼스타기업이 될 것이다. 경제단체들의 슈퍼스타기업 만들기 노력을 응원한다.
글/ 최홍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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