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 새 차원 열었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8.16 07:07  수정 2025.08.16 07:07

美 라디오에서 '골든'이 나오기 시작했다

화력 발휘한 팬들 없는데도 1위 등극한'순수 창작물'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열기가 도무지 꺼질 줄을 모른다. 꺼지기는커녕 더욱 뜨거워지면서 이제는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가는 느낌이다. 일단 수치로 보면 8월 14일 기준으로 누적 시청수가 1억8460만으로, 1위인 드웨인 존슨·라이언 레이놀즈 주연작 '레드 노티스'(2억3090만·2021년 공개)에 이어 역대 넷플릭스 영화 2위에 올랐다. 넷플릭스 만화영화 역대 1위 기록은 깬지 오래고 이대로라면 영화 역대 1위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주제가 ‘골든’은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 1위에 이어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도 1위에 올랐다. 만화영화 주제가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건 매우 이례적인 사건인데, 케이팝 여성 가수의 노래가 빌보드 싱글 1위에 오른 건 최초다.


보통 아이돌 음악이 차트에서 위력을 발휘할 땐 팬덤의 화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런데 ‘골든’은 팬덤을 보유한 진짜 아이돌이 부른 노래가 아니다. 최근에 공개된 만화영화 주제가일 뿐이다. 팬들이 많은 유명 원작이 있는 것도 아닌 순수 창작물이어서 화력을 발휘할 팬들이 없는데도 1위에까지 올랐다는 점이 매우 놀랍다.


앨범 차트에선 팬들의 지지만으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반면에 싱글차트에선 대중적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골든’이 1위에 오를 당시 라디오 방송 점수가 전 주 대비 71% 증가했다고 한다. 이건 미국의 일반인들이 본격적으로 라디오를 통해 ‘골든’을 듣게 됐다는 이야기다. 특정 팬덤이 라디오에 신청곡을 보내는 집단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자연발생적으로 미국 라디오에서 ‘골든’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골든’의 인기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는 뜻이다. 이 영화가 제목에서부터 ‘케이팝’을 내세우기 때문에 아무래도 케이팝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먼저 인기를 끌었다. 그게 입소문이 퍼지면서 케이팝과 거리를 두던 미국의 일반인에게까지 케이팝 신드롬이 확산되는 것이다.


케이팝이 미국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긴 했지만 여전히 소녀팬 위주의 비주류 문화였다. 케이팝을 우습게 여기는 서구인들도 많았다. 아이돌 자체가 그렇게 존중받는 뮤지션 형태는 아니다. 하지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몰이를 하면서 케이팝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더욱 주류에 가까워진 것이다. 케이팝이 핫한 트렌드라는 인식도 더 강해질 것이다. 관객이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아이돌에 감정이입하면서 아이돌에 대한 편견도 완화될 수 있다. 케이팝 아이돌의 바쁜 스케줄에 대해 인권 이슈로 부정적 시선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도 이 영화로 어느 정도는 완화될 것 같다.


특히 서구 어린이들이 이 영화에 열광한다고 한다. 과거 ‘겨울왕국’의 ‘렛잇고’ 열풍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미국 유아들이 단체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수록곡들을 부르는 영상이 잇따라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다. 이렇게 어렸을 때 케이팝 콘텐츠에 깊게 몰입하면 나이를 먹어도 친밀감과 호감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 90년대 디즈니 만화영화에 몰입했던 이들이 30~40대가 돼서 디즈니 만화 실사영화를 찾는 것처럼 케이팝 관련 콘텐츠를 계속 찾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 영화의 인기가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케이팝의 지평을 다른 차원으로 넓히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보다 넓게 그리고 보다 깊게 케이팝의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 영화가 미국 영화이니 우리에게 득 될 일이 없다고 하기도 하는데 그건 그렇지가 않다. 제작이야 물론 일본 자본의 미국 회사가 했고, 향후 직접적인 흥행 수익은 미국 플랫폼에게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돌아올 무형의 영향이 엄청나다.


제목에서부터 대놓고 ‘케이팝’을 내세울 정도로 확고하게 한국, 한국문화 그리고 케이팝을 그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회사가 제작했건 간에 시청자는 이 영화를 케이팝 영화라고 생각하면서 본다. 주인공은 케이팝 아이돌이고 그들이 사는 곳은 한국, 그들이 먹는 건 한국 음식이다. 시청자에게 한국이 긍정적으로 각인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대흥행은 우리나라에 틀림없이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아쉬운 건 ‘우리의 전통문화와 노래로 왜 우리는 이런 작품을 만들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동안 서구 진출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만화영화들은 한국적 요소들을 빼왔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적 요소에 세계적 경쟁력이 있다는 점을 일깨웠다. 이런 부분을 잘 반영해 콘텐츠를 만들면 또 다른 성공 사례가 나올지 모른다. 다만 만화영화는 우리의 제작역량이 아직은 미흡하기 때문에 지원 방안을 강구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어쨌든 광복 80주년에, 외국 회사가 한국을 내세워 해외 차트를 휩쓰는 사건이 터졌다는 게 정말 뜻 깊다. 그만큼 한국 문화가 세계의 주류 보편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장차 한국의 모든 사람과 기업에게 큰 기회의 문을 열어줄 것이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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