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 "'전독시' 유중혁, 내면의 끈기로 살아내는 모습에 영감" [D:인터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08.04 15:56  수정 2025.08.05 08:37

"저는 늘 새로운 환경에 저를 던져야 살아 있는 느낌을 받아요."


배우 이민호는 작품을 대할 때 겁이 없는 자신만의 태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20대엔 교복을 입고 첫사랑을 연기했고, 어느 날엔 판타지 속 왕자처럼 백마를 타고 누볐다. 이후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를 통해 방향을 틀며 연기의 스펙트럼을 확장한 그는 새로운 자극과 실험을 망설이지 않는다.


지난달 23일 개봉한 '전지적 독자 시점' 역시 그런 이민호의 성향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작품이다. 웹소설 원작이라는 장르적 특성과 높은 팬덤의 기대치, CG 위주의 촬영 환경,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에서 한 발짝 떨어진 인물로서의 연기까지 여러모로 도전이 필요한 현장이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10년 이상 연재된 소설이 완결된 날 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되어 버리고, 유일한 독자였던 김독자가 소설의 주인공 유중혁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판타지 액션 영화다. 이민호는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멸살법)의 주인공인 유중혁 역을 맡았다. 유중혁은 김독자와 함께 힘을 합쳐 동료들과 함께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아가는 인물이다.


"영화가 강요하는 지점이 없고 모험을 떠나듯이 담백하게 쭉 가는 지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전독시'는 기획아 어느 정도 진행이 되고 오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작품이 하고자 하는 방향과 유중혁이란 인물의 매력 때문에 동료가 돼 함께 하게 됐죠."


원작 웹소설의 팬층이 두터운 '전지적 독자 시점'은 자칫하면 원작의 이미지에 갇히기 쉬운 작품이기도 하다. 이민호는 그런 부담감을 오히려 연기적인 상상력으로 풀어가려 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할 때 일부러 끝까지 보지 않아요. 다 읽고 나서 그 안에 갇히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있죠. 어느 정도 상상력을 덧붙일 수 있게 여지를 남겨놓는 작업이죠. 이 작품의 방향성, 메시지, 정서까지만 숙지한 상태에서 상상하는 대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이민호가 맡은 유중혁은 원작에서 주인공 김독자와 나란히 서는 핵심 인물이지만, 영화에서는 유중혁 서사적 맥락은 김독자의 내레이션으로 설명돼, 많은 것이 생략된 채 등장하는 구조다. 이에 이민호는 관객을 몰입을 이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주인공의 주인공인 느낌이 많아 어려운게 많았어요. 보통 작품에서 주인공이면 어느 정도 서사도 설명이 되고 설득이 됐을 때 빛을 발하는데 유중혁은 그런 부분이 많이 빠져 있거든요. 어떻게 해야 이 세계관의 유중혁을 관객들에게 설득시킬지 고민이 많았죠. 그가 작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 살아내는 모습이 정서에 묻어나와야 했거든요. 유중혁의 표현되지 않은 처절함에 대해 감독님과 많이 대화를 나눴어요. 늘 독자의 서사 속에서만 존재하던 유중혁이 눈앞에 실체로 나타났을 때, 관객은 그 시선을 따라가게 되잖아요. 중심은 교감이 아니라 독자가 느끼는 감정이어야 하며, 그렇기에 유중혁은 오롯이 독자의 인식 안에서 구성돼요. 다만, 독자가 왜 유중혁에게 그런 감정을 품게 되었는지, 유중혁의 단독 장면에서도 어느 정도는 표현될 필요가 있었죠."


유중혁은 단순한 판타지 장르 속 인물이 아니라, 이민호에게는 개인적인 영감의 원천이자 닮고 싶은 태도를 가진 존재였다. 내면의 인내와 끈기로 살아내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는 유중혁 안에서 스스로와의 접점을 발견했다.


"유중혁은 제가 닮고 싶은 모습을 추구하는 지점이 있는 캐릭터예요. 결과와 상관없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묵묵히 나아가는 모습 같은게 말이죠. 사실 유중혁은 작품에서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 인물이잖아요. 그럼에도 감정을 이겨내고 끝까지 싸우는 처연함이 제게 좋은 영감이 됐어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제 모든 행동들이 의미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잖아요. 그게 어떻게 비쳐지는지 신경쓰기 보단 주어진 순간을 살아가는 모습에서 접점을 만들려고 했어요."


유중혁은 전형적인 히어로처럼 화려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타이밍을 조율하고, 정서 속에 액션을 녹여내야 하는 캐릭터다. 이민호는 그 미묘한 리듬을 만들기 위해, 먼저 현장 안에서 자신에게 쏠리는 배려를 걷어내는 것부터 시작했다.


"제가 액션을 계속 했을 때 주변에서 '힘들지 않을까'란 뉘앙스들의 배려가 많았죠. 이럴 때마다 제가 헌 번더를 외치면서 그 무드를 깨려고 노력했죠. 최소한의 에너지로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움직이는 유중혁의 액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것이 제 몫이라 생각했고, 느릿느릿 방관자처럼 있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단 한 번 뛰는 식의 리듬으로, 끊임없이 독자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인물의 감각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이민호는 안효섭, 채수빈, 나나, 신승호 등 후배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특히 안효섭이 이민호를 "동경의 대상"이라고 언급할 만큼, 그는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선배로서의 중심을 잡는 인물이기도 했다.


"막내일 때가 제일 편한 것 같아요. 한국에서의 K장녀 책임감처럼 누가 강요하거나 그런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촬영장에서 제가 맏형이 된 순간 그 책임감을 많이 느꼈죠."


CG 비중이 높은 전지적 독자 시점의 촬영은 배우들에게 낯선 도전이기도 했다. 사방이 블루스크린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상상만으로 감정을 구축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호흡해야 했기 때문이다.


"늘 불안한 마음이 있기는 했어요. CG를 저희가 이렇게 작업해도 괜찮을지, 밸런스는 저희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촉박한 시간 안에 결과물이 잘못 나오면 어쩌나, 혹시 바보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컸고요. 다른 배우들도 모두 불안을 느꼈지만 결국은 믿음의 영역이었어요. 제작진을 믿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민호는 데뷔작 '꽃보다 남자'를 시작으로 '개인의 취향', '시티헌터', '상속자들', '더킹: 영원한 군주' 등 줄곧 주인공을 맡아 작품을 이끌어왔다. 작품의 흐름은 언제나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전개됐고, 그는 한류를 대표하는 배우로서 굳건한 존재감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최근의 행보는 이전과는 다른 궤도를 그린다


"제가 작품을 선택할 때 기준은 늘 심플해요. '상속자'는 20대의 마지막에 교복을 입는 사랑 이야기를 해보자, 그런 마음으로 선택한 작품이었고, '더 킹: 영원도 그런 맥락에서 결정한 작품이었어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작품을 통해 판타지 속 왕자 같은 이미지가 제게 씌워졌는데, 당시에는 '백마 타고 졸업하겠다'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이후 30대에 접어들면서 '파친코' 대본을 봤을 때, 많은 분들이 의외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때 언제든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 경험이 저에게 정말 긍정적으로 작용했고, 앞으로는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더욱 다양한 작품에 도전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생겼어요."


어린 시절부터 주목받는 위치에 있었던 이민호. 책임감으로 버텨낸 시간은 어느덧 10년이 넘었고, 지금 그는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자신을 재정의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처음처럼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서 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사회 속으로 던져져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왔던 사람이라, 사랑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진정성 있게 느껴 왔어요. 그래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컸고요. 10년 넘게 책임감을 원동력 삼아 달려왔다면, 서른 초중반이 된 지금은 20대 때의 경험들을 차분히 정의해보는 시간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는 다시, 처음처럼 무언가를 새롭게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이죠. 같은 감정도 더 깊고 크게 느껴지는 시기이고, 덕분에 다시 무언가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지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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