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심장 [조남대의 은퇴일기(78)]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7.29 14:01  수정 2025.07.29 14:01

가마솥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오래된 산물이다. 문명의 찬란한 기구들이 주방을 점령한 오늘에도 가마솥은 느린 시간을 끓여내며 삶의 온기를 되살린다. 오랜 시간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묵묵히 제 할 일을 다 해온 무쇠의 둥근 품은 어쩌면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빚어낸 가장 따뜻한 도구가 아닐까.


느리게 끓여내는 가마솥 ⓒ

어릴 때 시골 부엌에는 가마솥이 두 개 걸려 있었다. 한쪽에는 밥 짓는 큰 솥, 다른 쪽에는 국이나 반찬을 끓이는 조금 작은 솥이다. 8형제나 되는 데다 아침에 밥 지으면 점심까지 먹어야 하니 솥에 가득하다. 밑에는 삶은 보리쌀을 깔고 가운데에 쌀을 조금 얹는다. 아궁이에 불이 붙고 연기가 눈을 찌르면, 솥 안에는 밥이 지어지며 김이 울컥 치솟고 뜨거운 눈물을 조르르 흘린다. 아궁이의 불을 줄이고 뜸을 들인 후 솥뚜껑을 열면 보리쌀 위에 얻은 한 줌의 쌀이 흰섬이 되어 떠오른다. 아버지의 밥그릇에 하얀 쌀밥이 담겼다. 나머지를 모두 썩으면 대부분은 보리쌀이고 쌀은 드문드문하다. 어린 나이에 그 하얀 밥을 바라보며 언제쯤 마음껏 먹어볼 수 있을까. 꼴깍 침을 삼켰다.


불을 피워 밥을 짓거나 국을 끓이는 가마솥 ⓒ

솥 밑은 두꺼운 그을음이 시커멓게 붙어있지만, 뚜껑과 부뚜막은 어머니의 손길 덕에 언제나 반들반들했다. 7대 종부인 어머니가 아마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세월을 이겨낸 무쇠솥이다. 불길 속에서 수없이 달구어졌음에도 가족의 끼니를 끓어낸 솥이 지금 생각해도 가슴 저리도록 고맙다. 사랑방 부엌의 또 다른 솥에서는 작두로 썰어 볏짚을 넣어 소죽을 끓이며 아버지 옆에 앉아 부자간에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추운 겨울에는 잔불에 고구마를 묻어 두었다가 긴 밤 간식으로 먹었던 달콤한 그 맛이 아직도 허 끝에 어른거린다. 무쇠 가마솥을 이야기하면 지금은 없어진 고향 집과 마을이 떠오르고, 불알친구들과 뛰어놀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주말농장 텃밭에서 상추를 따는 아내 ⓒ


퇴직 후 주말농장을 마련하여 내 마음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도 어릴 때 밥하고 쇠죽 끓이던 가마솥이다. 오일장에 들려 커다란 솥을 사들어 왔을 때 그 묵직한 무게만큼이나 마음이 든든했다. 토종닭을 사 와서 장작을 지펴 엄나무와 대추, 인삼 같은 한약재를 넣어 푹 고아 먹으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았다. 널찍한 가마솥에 토종닭 한 마리를 넣고 물을 어지간히 부어도 잠기지를 않는다. 한참 동안 불을 때도 쉽사리 끓을 기미를 보이지 않아 솥뚜껑을 몇 번이나 여닫으며 익었는지 젓가락으로 찔러 보았다. 시간이 꽤 지나야 했는데 참지 못하고 끄집어냈더니 질기고 국물도 제대로 우러나지도 않아 기대했던 닭고기 맛이 아니었다. 아내와 둘이서 큰 토종닭을 처리하느라 씨름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바알갛게 익은 주말농장의 보리수 ⓒ

닭을 삶았던 무거운 솥에 묻은 기름기를 닦은 뒤 들기름을 발라 창고에 보관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몸보신이 아니라 수고가 더 컸다. 차라리 시골장에 가서 닭 한 마리 사 먹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그 이후 가마솥은 창고 한 귀퉁이에서 녹이 슬며 먼지에 덮인 채 잊혀진 시간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러다 문득 당근마켓이 떠올랐다. 오랜 세월의 무게를 품은 가마솥을 사진으로 찍고 싼값에 올렸다.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고 누군가 그 솥을 보자마자 환한 얼굴로 번쩍 들어 올렸다. 무쇠 덩어리를 다시금 품어줄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한때 내 손으로 불을 지폈던 솥이 다른 이의 식탁에 온기를 더하리라 생각하니 떠나보내는 마음이 조금은 덜 서운했다. 그동안 사용하지도 않으며 푸대접했지만 아끼고 사랑해 주는 곳으로 시집보내는 것 같아 가마솥도 섭섭하기보다는 웃으며 새 주인을 따라가지 않았을까.


문학기행 중에 느티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문우들 ⓒ

이태 전 문우들과 춘천으로 문학기행을 갔었다. 전원주택을 마련한 문우의 초대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집 뒤꼍에는 오래된 무쇠 가마솥이 마치 제자리를 찾은 듯 걸려 있었다. 저녁이 되자 커다란 솥에는 오리 세 마리와 각종 약재가 들어갔고, 작은 솥에는 옥수수가 담겼다. 불 피우는 것도 요령이 있어야 한다. 장작을 지그재그로 쌓아 올리며 불을 때는 일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시 불러냈다. 연기에 눈물을 찔끔거리며 허리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가마솥에서 오리와 옥수수를 삼고 있는 모습 ⓒ

옥수수는 한 시간 정도 지나자 김이 나서 열어 보니 푹 익었다. 두 배나 큰 가마솥은 겨우 눈물 한 방울 흘릴 뿐이다. 세 시간을 넘게 장작을 지피자 서서히 끓기 시작하더니 증기기관차처럼 수증기를 펄펄 내뿜는다. 구수한 마늘과 약재 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들자 시장기가 도는지 문우들이 식탁으로 모여든다. “맛있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는 ‘천국이 있다면 아마 이런 맛일 거야’라는 표정을 지으며, 오직 손끝과 입술만이 움직이는 고요한 잔치가 시작되었다. 뼈까지 으스러질 만큼 푹 익은 고기, 약재 향이 배어든 진한 국물의 만찬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그동안 오리고기를 많이 먹어 봤지만, 이번처럼 맛있게 먹기는 처음이다. 오랜 우정과 삶의 깊이를 함께 끓여낸 시간이었으니 그러하지 않겠는가.


맛있게 잘 익은 오리 고기 ⓒ

가마솥은 단순한 조리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냄비고, 추억이 화로이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동체 심장이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끝내 제 열을 품어내던 솥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게 인내하고 견디며 제맛을 만들어간다. 가마솥에는 많은 양을 조리하여 이웃이나 친구들과 둘러앉아 나누어야 제맛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런 사실을 진작 알았다면 빨갛게 녹이 슬도록 내팽개쳤다 팔아 버리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는 내 곁을 떠났지만, 어디에서 다시 불을 품고 사람들을 모으는 중심이 되어 있으리라.


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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