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우 감독 연출
"이 소설은 최악입니다"
무기력한 일상을 견디며 살아가는 계약직 회사원 김독자(안효섭 분)의 유일한 위로는 10년 넘게 연재 중인 웹소설 '멸살법'(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학창 시절 학교폭력의 트라우마를 겪은 그는, 소설 속 영웅 유중혁(이민호 분)에게서 오랜 시간 구원의 감정을 느껴왔다.
회사와의 계약이 마무리된 날, 김독자는 '멸살법'의 마지막 회를 읽게 된 읽고 충격에 빠진다. 자신이 믿고 따라온 유중혁이 결국 타인을 외면하고 혼자 살아남는 결말에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 김독자는 작가에게 "이 소설은 최압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작가로부터 "결말이 마음에 안 드시면, 직접 써보시죠"라는 답장을 받는다.
그 순간, 지하철 3호선이 동호대교 한복판에서 멈추고 김독자 눈 앞에는 '멸살법' 속 세계가 펼쳐진다.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김독자는 자신이 수년간 읽어온 이야기의 한 가운데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한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연재된 싱숑 작가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영화화 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일었다.
세계관과 설정이 치밀하게 구축된 서사형 판타지물인 원작은 연재 당시부터 열성적인 팬덤을 구축하며 인기를 끌었고, 그만큼 실사화에 대한 반응도 양가적일 수 밖에 없었다.
판타지와 현실이 혼재된 복잡한 설정을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안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캐릭터와 서사를 동시에 살릴 수 있을 것인가 등 원작 팬들은 사랑하는 이야기의 훼손을 걱정했고, 비독자에겐 높은 방대한 세계관으로 알려진 진입장벽이 관건이었다.
결과적으로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원작에 대한 존중과 대중적인 재구성 사이에서 균형을 어느 정도 이뤄낸 작품이란 인상이 강했다.
김병우 감독은 방대한 원작의 세계관을 과감히 압축하고,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핵심 서사와 메시지 구현에 집중했다. 김독자가 동료들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고 행동하는 과정을 통해, 원작의 주제를 명확히 부각 시킨다. 이 여정을 따라가는 관객은 게임처럼 구성된 세계 안에서 주인공과 함께 숨 가쁘게 달린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장르적 쾌감과 맞물리며 더욱 선명해진다. 소설 속 아포칼립스가 현실로 펼쳐지는 순간, 관객은 김독자와 나란히 지하철 3호선에 있는 듯한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퀘스트를 수행하고 스테이지를 돌파해나가는 전개는 마치 RPG 게임을 플레이하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실감 나는 크리처 액션과 빠른 서사 전개는 영화라는 매체가 줄 수 있는 속도감과 몰입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실사화가 어렵다는 원작의 장벽을 효과적으로 돌파해낸다.
성좌, 배후성 등 원작 특유의 복잡한 설정들을 자세하게 다루진 않지만 전개 흐름 속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는 자연스럽게 대사로 흘려준다. 원작 팬에게는 익숙한 세계관이고, 비독자에게도 진입장벽이 지나치게 높게 느껴지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려는 연출 의도가 엿보인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300억 원대 제작비가 투입된 한국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반갑다. 대규모 예산을 바탕으로 구현된 세트, 시각효과, 크리처 디자인 등에서 제작비의 규모가 체감되며,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청각적 몰입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배우들도 제 몫을 해낸다. 안효섭을 비롯해 이민호, 채수빈, 나나, 신승호 등 주요 배우들은 실재하지 않는 환경과 존재를 상대로 한 연기에서도 빈틈 없이 감정을 채워 넣으며,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특히 안효섭은 김독자의 혼란과 성장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극을 안정적으로 이끈다. 이민호 역시 소설 속 불멸의 존재인 유중혁 특유의 냉철함과 고독한 카리스마를 설득력 있게 표현 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유중혁을 따르는 고등학생 이지혜 역을 맡은 블랙핑크 지수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주요 장면에서의 어색한 대사 전달과 감정 표현이 극의 흐름을 끊는 지점으로 작용한다. 세계관의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장면에서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점이 아쉽다. 23일 개봉. 러닝타임 1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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