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쇼트 시네마(127)] 오래된 연인의 '낯선 여름'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07.29 11:28  수정 2025.07.29 11:28

강홍주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무더운 여름, 오래된 연인 새벽(강유석)과 가람(최예빈)은 함께 살 집을 구하러 다닌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집은 비용이 부담스럽고, 감당할 수 있는 집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현실 앞에서 두 사람의 차이는 점점 선명해진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람은 부모님의 지원을 받자고 제안하지만, 새벽은 자신의 힘으로 시작하고 싶다.


가람은 하고 싶은 공부에 더 집중하길 바라지만, 당장의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하는 새벽에겐 여유가 없다.


걷고, 부딪히고, 설득하다 결국 가람은 울음을 터뜨리고, 새벽은 익숙한 듯 안아 위로해 준다.


하지만 새벽은 가람을 뒤로 하고 홀로 돌아선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이들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낯선 여름과 감정이다.


'낯선 여름'은 '함께'라는 말이 이토록 다를 수 있음을, 무더운 여름이라는 계절감 안에 새겨 넣는다. 구체적인 사건보다는 무더운 공기 속 미세하게 틀어지는 감정선에 집중했다. 함께 집을 구한다는 연인의 행복한 일상 속에 경제적 배경과 가치관의 차이, 그리고 관계의 균열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연출은 땀이 밴 셔츠, 끈적한 공기, 길 위에서 흘러가는 대화처럼, 여름의 물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더위에 지쳐 말없이 걷는 두 사람의 뒷모습, 햇빛에 지는 표정, 냉방되지 않은 실내의 무력감 등은, 감정적 갈등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관계의 피로감과 답답함을 시각적으로 전한다.


'낯선 여름'이라는 제목은 계절만 가리키지 않는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사이가 점점 어색해지고 멀어지는 순간을 함께 비유했다.


짧은 러닝타임 안에 '같이 있는 것이 더는 즐겁지 않은' 여름날의 뜨거운 공기를 생생하게 포착한 연출력이 인상적이다. 러닝타임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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