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석에서도 편안했던 주행감, 전기차 멀미 편견 지운 안정감
스포츠 모드 전환 시 즉각 반응…제로백 7.9초에 체감은 더 빠르게
공간성은 C-세그먼트 이상, 수납과 적재 실용성도 충실
노면 소음은 아쉬워…전기차 특유의 정숙성과는 거리가 있어
전기차는 운전자가 아닌 동승자로서 타게 될 때는 어떤 각오를 하게끔 한다. 울컥이는 출발, 예고 없는 급감속, 성질 급한 가속 반응까지. 옆자리에 앉아 있으면 이 차가 얼마나 민감한 기계인지 온몸으로 느껴진다. 눈앞은 멀고 속은 울렁인다.
르노코리아의 첫 번째 순수 전기차 ‘세닉 E-Tech’ 조수석에 올라탈 때도 반쯤은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빈 속으로 탑승한 걸 후회했고 예고 없이 밀려올 울컥거림에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하지만 세닉 E-Tech는 가속해도 쏠리지 않았고 멈출 때도 울컥거리지 않았다. 출발부터 감속까지 매 순간이 부드럽고 조용했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기분 좋은 반전이었다.
전기차의 편견을 깨뜨린 세닉 E-Tech를 지난 16일 서울 성동수에서 강원도 춘천시까지 왕복 약 200km을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시승해봤다.
이날 시승 행사 중에는 노트북을 무릎에 펼쳐놓고 일을 해야 했다. 주행이 이어지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화면을 바라보며 계속 타이핑을 했다. 차는 도심을 지나 고속 구간에 들어섰고 그때까지도 멀미 기운은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이미 속이 울렁였을 상황이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멀미를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세닉 E-Tech는 조수석에서도 편안함을 유지해줬다.
물론 조수석에서 느낀 편안함은 운전자의 실력과도 연관이 있겠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설명되진 않는다. 이 차는 애초에 내연기관차를 개조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전기차로 설계된 모델이라 가능했던 안정감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앉은 운전석에서는 안정감이 더욱 확실하게 체감됐다. 전체적인 주행 감각은 SUV보다는 세단에 가까웠다. 강원 산길의 급한 와인딩 코스를 서툰 솜씨로 돌아 나갈 때도 차체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고 코너를 지날 때마다 바닥에 단단히 밀착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체가 낮게 깔려 있어서 자세는 안정적이었고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대로 차가 따라오며 일체감이 느껴졌다. 심지어 빗길 속에서도 차는 노면을 단단히 붙잡고 나아갔다.
주행 성능은 처음엔 다소 답답하게 느껴졌다. 가속 페달을 밟아도 차가 기대만큼 튀어나가지 않아 반응이 느린 듯했다. 하지만 드라이브 모드를 에코에서 스포츠로 바꾸자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다. 페달을 밟는 즉시 반응했고 가속은 시원하게 붙었다. 최고 출력은 160kW(218마력), 최대 토크는 300Nm이며 비교적 가벼운 공차 중량(최소 1855kg) 덕분에 이런 출력이 부담 없이 살아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7.9초다.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 제품으로, 87kWh 용량이라 한 번 충전하면 최대 460km까지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실제 주행 중에도 배터리 소모는 빠르지 않았고 남은 주행 가능 거리 예측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급속 충전도 130kW까지 지원돼 20%에서 80%까지 채우는 데 30분 남짓 걸린다니 장거리 여행 중에도 큰 부담은 없겠다 싶었다. 전비도 인상적이었다.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약 200km를 달리는 동안 평균 전비는 7.0km/kWh를 유지했다. 에코 모드 위주로 주행하긴 했지만 중간중간 스포츠 모드로 가속을 해본 구간도 포함된 결과다.
적재공간과 실내 공간도 SUV답게 넉넉했다. C-세그먼트급 모델이지만 차 안에 앉아 있으면 차급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뒷좌석에 앉았을 때 무릎 앞 공간은 충분했고 머리 위 공간도 답답하지 않았다. 장거리 주행 중 가족과 함께 이동해도 답답할 일은 없겠다 싶었다.
트렁크 공간은 짐을 넉넉히 실을 수 있을 만큼 깊고 넓었다. 2열을 접으면 공간이 확장돼, 캠핑 장비나 여행 캐리어를 싣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실내 곳곳에는 생활밀착형 수납 공간이 알차게 배치돼 있었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이 가능한 공간 아래로는 소지품을 넣기 좋은 수납공간이 있었다. 컵홀더가 하나인건 조금 아쉬웠다.
자체 내비게이션은 없었지만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를 모두 지원해 길 찾기나 음악 재생에 큰 불편은 없었다.
다만 단점도 분명했다. 세닉 E-Tech는 전기차는 멀미가 난다는 편견을 깼지만 동시에 전기차는 조용하다는 인식도 함께 깨버렸다. 주행 중 노면 소음이 너무 가까이에서 들려 귀가 아플 정도였고 잔상처럼 소리가 귀에 남는 느낌마저 있었다.
가격은 세제 혜택 전 기준 트림별로 ▲테크노 5494~5634만원 ▲테크노 플러스 5847~6166만원 ▲아이코닉 6337~6656만원이다. 르노코리아에 따르면 환경부와 서울시 보조금을 합할 경우 ▲테크노 4649~4813만원 ▲테크노 플러스 4980~5313만원 ▲아이코닉 5440~5773만원으로 예상된다.
▲타깃
–“멀미 없는 전기차요?” 조수석 탈 일 많은 당신
–SUV는 타고 싶고, 세단 승차감은 포기 못하는 욕심쟁이
–트렁크엔 캠핑, 뒷좌석엔 가족, 머릿속엔 전비까지 계산 중인 전략가
▲주의할 점
–“전기차는 조용하다며?” → 노면 소리에 귀가 먼저 놀람
–자체 내비 없음, 스마트폰 없으면 길도 음악도 암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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