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민생’ 명분으로 전 금융권에 출연 압박
배드뱅크 재원 절반 전금융권서 부담…카드사엔 수수료 인하
“정부 정책 취지엔 공감하지만, 업계 부담 큰 게 사실”
정부가 최근 배드뱅크 설립을 위한 재원 분담을 은행권은 물론 제2금융권 전체로 확대하고, 동시에 소비 진작을 위한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을 앞두고 카드사들엔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고 나섰다.ⓒ연합뉴스
정부가 ‘상생금융’을 기치로 내세우며 금융권을 정면으로 압박하고 있다.
최근 배드뱅크 설립을 위한 재원 분담을 은행권은 물론 제2금융권 전체로 확대하고, 동시에 소비 진작을 위한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을 앞두고 카드사들엔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민생 회복’이라는 명분 아래 사실상 재정적 부담을 금융사에 떠넘기는 ‘팔 비틀기식 상생’이란 비판도 나온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최근 2차 추가경정예산으로 배드뱅크 설립 예산 8000억원 중 절반인 4000억원을 확보한 가운데, 나머지 재원 마련을 위해 전 금융권과 협의에 돌입했다.
당초 은행권이 단독으로 출연할 것이란 예상이 있었지만, 장기연체 채권의 상당 부분이 제2금융권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 반영됐다.
실제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 장기연체 채권 규모 16조3613억원 중 은행권이 보유한 비중은 1조864억원(6.6%)에 불과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을 중심으로 전 금융업권이 일정 부분 역할을 분담하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제2금융권도 사회적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는 기조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제2금융권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저축은행과 상호금융권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로 재무 건전성에 부담이 큰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이 저축은행 79곳에 연체율 관리 강화를 주문하는 등 업계 전반의 리스크 관리도 강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분담 비율을 두고 금융권 내부 갈등도 예상된다.
정부의 압박은 카드사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달 중 12조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을 앞두고 행정안전부는 카드사에 영세 소상공인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율 추가 인하를 검토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소비쿠폰 사용처가 연 매출 30억원 이하 소상공인으로 제한된 만큼, 실질적인 혜택이 소상공인에게 돌아가도록 카드사가 수수료 부담을 덜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신용카드 우대 수수료율은 매출 규모에 따라 0.40~1.45% 수준인데, 정부는 이를 체크카드 우대 수수료율인 0.15~1.15% 수준으로 추가 인하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에 업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수익성 악화에다, 과거 2020년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당시 카드사들이 인프라 구축과 관리 비용으로 약 80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오는 9월 배드뱅크 설립을 완료하고 연내 장기연체채권 소각 및 조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이달 중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한다.
이처럼 두 정책 모두 금융권의 재정적 협력이 전제인 만큼, 향후 금융권의 반응과 협상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회적 책임엔 공감하면서도 “형편은 제각각인데 일방적 요구”라며 부담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민생 경제 회복이라는 명분 아래, 금융사들의 사회적 책임이 너무 강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카드업계 관계자도 “지난 긴급재난지원금 때도 실질적으로 적자가 난 상황에서 이번에도 유사한 구조로 가는 건 업계 입장에서 부담이 큰 게 사실”이라며 “정부 정책 취지엔 공감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 수수료 인하가 어렵다면 기금 출연이나 간접 지원 방식 같은 대안도 검토할 여지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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