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10·26 없었으면 국민 100만명 이상 희생됐을 것"
변호인단, 비상계엄령 아래 김재규 수사·재판 절차 문제 삼아
검찰, 특별한 입장 밝히지 않아…2차 공판, 9월5일 진행
지난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한 혐의로 그 다음해(1980년) 사형을 인도받은 고(故)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대한 재심이 16일 시작됐다.
유족은 10·26 시해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고 변호인단은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인 10월27일 공포된 비상계엄령에 따른 김 전 부장 수사 및 재판 절차 일련의 과정의 적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이재권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내란 목적 살인죄와 내란수괴 미수죄를 받았던 김 전 부장에 대한 재심 1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번 공판은 김 전 부장 유족이 지난 2020년 5월 "10·26과 김 전 부장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필요하다" 등의 이유로 재심을 청구한지 약 5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김 전 부장은 지난 1979년 10월26일 저녁 궁정동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과 차지철 전 청와대 경호실장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이듬해 5월 사형에 처해졌다.
유족 대표로 발언에 나선 김 전 부장의 여동생 김정숙씨는 "1980년 당시 오빠(김 전 부장)는 최후진술에서 '10·26의 목표는 민주주의 회복과 국민들의 크나큰 희생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며 "오빠가 이렇게 막지 않았다면 우리 국민 100만명 이상이 희생됐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는 평생토록 김재규의 동생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며 "재심이 우리가 기나긴 세월 가슴에 피어온 이 신념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계속해서 진술 기회를 얻은 유족 측 변호인단은 김 전 부장에 대한 사형 선고 및 집행은 당시 사법부의 치욕이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당시 대법원에서 내란목적 범죄사실에 대해 8대 6으로 팽팽한 대립이 있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6명 중 1명은 서빙고 보안사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했고 다른 대법관 역시 법복을 벗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란 방조죄를 받았던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며 "사법적 정의가 회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이와 함께 10·26 시해 사건 다음 날인 1979년 10월27일 새벽 4시에 공포된 비상계엄령 이후 김 전 부장에 대한 수사 및 군법회의의 재판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변호인단은 계엄령 선포 전인 10월26일 오후에 발생한 박 전 대통령 시해 사건에 대해 당시 보안사령부에서 수사가 가능한지, 또한 군법회의 재판 권한이 있는지 등을 문제 삼았다.
또한 "살인 행위가 있었다 하더라도 폭동을 야기할 만한 권한도 없었고 한 지방에 평온을 해할 만큼의 폭동은 없었음이 명백하다"며 내란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10·26과 지난해 12·3 비상계엄은 45년 만의 데자뷔"라며 "윤석열이 다시 45년 전 김재규를 불러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 측은 이날 증거와 사실관계가 확정될 경우 입장을 정리해서 추후 밝히겠다고 하는 등 재심과 관련해 특별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았다.
변호인단은 이날 김 전 부장의 국선 변호인이었던 안동일(84) 변호사를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김정숙씨 등 재심 주요 관계자가 현재 고령인 점 등을 들며 재판부에 신속한 재판을 요구하기도 했다. 다음 공판은 오는 9월5일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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