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의무화 급물살…방어 수단 잃는 재계 '멘붕'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입력 2025.07.15 16:13  수정 2025.07.15 16:13

추가 상법 개정 움직임에 기업 부담 가중

"경영권 위협 전략적 대응 수단 사라져"

"차등의결권·포이즌필 등 함께 도입해야"

정부·여당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를 본격화하면서 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데일리안 AI 이미지 삽화

정부·여당이 집중투표제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를 위해 2차 상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는 가운데,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까지 본격화되며 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해외와 달리 국내엔 차등의결권,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제도) 등 경영권 방어 장치가 부족한 상황에서 자사주 소각까지 의무화되면, 국내 기업들이 외국 투기자본이나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취득 후 1년 내 소각하도록 하고, 예외적으로 임직원 보상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보유를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김 의원의 발의안 보다 기간을 절반으로 줄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도 전날 등장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전날 대표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회사가 자사주 매입 시 취득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의무적으로 소각하도록 했다. 회사를 분할하거나 분할합병하는 경우 분할되는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도 금지했다. 신주배정을 통해 지배력을 높이는 이른바 '자사주 마법'을 막겠다는 취지다.


자사주 매입은 기업이 자사 주식을 다시 사들이는 것으로, 주가가 과도하게 하락했을 때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주거나, 남는 현금을 활용해 주주 환원 효과를 노리는 목적에서 이뤄진다.


자사주 비율이 높은 기업이 이를 전량을 소각하면 발행 주식 수가 줄어들고, 이로 인해 주당순이익(EPS)이 증가하면서 주주의 가치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이런 점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표면적으로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정책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법상으로 자사주 외에 뚜렷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어 이를 법적으로 제한할 경우 투자자 공격에 대응할 수단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우호세력에게 매각하거나 교환사채(CB) 발행 시 의결권이 부활해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상장사 1666개사(전체의 73.6%)가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자사주의 가치는 64조4580억원에 달한다.


재계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할 경우 기업이 시장 변동성이나 경영권 위협 등에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진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경영 판단의 유연성을 제약하고 기업의 위기 대응 능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통화에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으니 우호적인 제3자에게 넘겨주면 의결권이 되살아나 기업이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그것마저 박탈하는 것"이라며 "최근 행동주의 펀드 공격이 중소·중견기업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이사 선임 분쟁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 교수는 최근 추가 상법 개정안 공청회에서도 "기존 자사주까지 소급해 소각하게 하려는 입법 움직임으로 최소한의 경영권 방어 수단도 소멸될 위기"라며 "기업이 성장과 투자, 주주환원에 자원을 투입할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의 경영권 방어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기업의 재산권 침해 소지도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자사주는 법적으로 기업이 취득한 '자산'인데, 이를 반드시 없애도록 강제하는 건 기업의 재산권을 법으로 제한하는 조치라는 지적이다 .


이에 따라 재계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불가피하다면 그동안 논의가 보류됐던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황금주 등 경영권 방어 수단도 함께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차등의결권은 특정 주식에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포이즌필은 경영권 침해 시도에 맞서 기존 주주가 시가보다 싼 가격에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장치다. 황금주는 주주총회 안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주식이다. 미국·일본·프랑스 등 주요국은 방어 수단을 폭넓게 시행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방향은 경영권 위협에 직면한 기업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자사주 외에 다른 방어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소각 강제는 기업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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