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부터 '역차별' 호소 부른 규제까지
변화 필요한 방송사들
넷플릭스 서바이벌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은 5월 6일 열린 제61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예능프로그램이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예능’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걸 제대로 실감케 한 예시가 됐다.
시청자들도 큰 이견 없이 ‘흑백요리사’의 대상을 받아들였다. 지난해 9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이 프로그램은 맛 하나는 최고라고 평가받는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셰프 ‘백수저’들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치열하게 맞붙는 100인의 요리 계급 전쟁으로, 전 세계 넷플릭스 구독자들의 뜨거운 호응 속 ‘한식’ 열풍까지 불러일으켰었다. 재미와 감동, 여기에 특별한 의미까지 모두 잡으며 그 어떤 드라마보다 울림이 있고, 영향력이 컸다는 것을 인정받은 셈이다.
한국 예능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정받으며 존재감을 뽐내기 시작한 배경으로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넷플릭스를 빼놓을 수 없다. 2021년 넷플릭스 ‘솔로지옥’이 한국 예능 시리즈 중 최초로 글로벌 톱10 TV(비영어) 부문에 진입하며 ‘K-예능이 해외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입증한 이후 이 시리즈는 시즌5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이후 ‘데블스 플랜’, ‘대환장 기안장’ 등도 해외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물론 한류예능의 원조 격인 SBS ‘런닝맨’도 중국 시청자들의 사랑 속 15년째 프로그램이 지속되고 있다. 다만 다른 문화권에서 ‘웃음 코드’를 인정받기 힘들다는 한계로 인해 예능의 글로벌 흥행은 ‘드문’ 사례로 꼽혔다. 하지만 OTT의 등장은 이 한계를 넘어 한국 예능 글로벌 흥행이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나 높아진 예능 위상을 향한 ‘반가운’ 시선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OTT 예능들이 스케일을 키우며 부지런히 흥행 가능성을 확장하는 사이, 예능프로그램에 ‘과감한’ 투자가 힘든 TV 예능들은 빠르게 설 자리를 잃었다.
2020년대부터 시청률 10%를 넘긴 예능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시청률 파이가 줄기는 했지만, 글로벌 OTT를 넘어 유튜브 플랫폼에도 화제성을 빼앗기면서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정성껏 준비한 신작들이 줄줄이 ‘쓴맛’을 보면서 이 같은 분위기는 심화했다.
지금 방송 중인 예능프로그램 중 4%를 넘기는 프로그램은 MBC ‘나 혼자 산다’, ‘푹 쉬면 다행이야’,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SBS ‘골 때리는 그녀들’, ‘미운 우리 새끼’, KBS ‘살림남’, ‘1박 2일’ 등인데,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프로그램이 최소 4년을 넘긴 ‘장수 프로그램’이다.
신작들의 성적은 처참하다. 대표적으로 ‘개그콘서트’도 밀어내고 일요일 오후 9시 20분 자리에 과감하게 등장한 KBS2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은 2%대로 시작해 1%대로 하락했고, 톱스타 이민정이 MC로 나선 ‘가는정 오는정 이민정’도 1~2%대를 전전 중이다.
방송사 PD들은 ‘투자’ 규모 자체가 다르다며 글로벌 OTT 예능과의 경쟁이 힘든 이유를 설명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방송 광고 매출은 2조 4983억원으로, 전년(3조819억원) 대비 5836억원 줄었는데, 방송 시장 내 미디어·콘텐츠 제작비는 2019년 4조 9037억원에서 2023년 5조 6488억원으로 늘어나며 제작비 부담은 증가했다. 방송가의 ‘재정 압박’ 호소가 이어지는 이유다.
반면 앞서 언급한 큰 스케일의 OTT 예능들은 적게는 50억원에서, 많게는 100억원까지 투입해 ‘영화 드라마급’ 스케일을 구현해 낸다. 반면 TV 예능의 평균 제작비는 여전히 1억 내외인데, 이마저도 줄어드는 기회 속 ‘어렵게’ 이어지고 있다.
물론 OTT 예능은 12부작 또는 10부작 등 드라마처럼 한정된 회차만 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TV 예능의 제작비와 같은 선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또 넷플릭스도 30분 내외의 미드폼 일일 예능을 선보이며 제작비를 절감하는 등 모든 예능 콘텐츠에 마냥 큰 제작비를 투입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청자들의 관심이 더 멀어지기 전, ‘돌파구’ 마련이 필요하다. “이미 모든 기획안은 넷플릭스를 향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넷플릭스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분위기 반전’이 이뤄지지 못하면 결국 예능프로그램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우선은 지상파를 향한 엄격한 잣대를 완화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글로벌 OTT는 갈수록 영향력을 키우는데, 지상파는 엄격한 규제에 묶여 ‘역차별’을 받고 잇는데, 이 역차별을 완화할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회원으로 있는 한국방송협회는 지난달 정책건의서를 통해 “낡은 규제는 국내 사업자를 위축시키지만 글로벌 사업자에게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사업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며 방송광고 금지 및 제한 품목을 완화하고 장르 편성 규제를 폐지하는 조치 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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