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컬 시장은 지난해 티켓 판매액 4651억 원이라는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고, 올해 1분기 역시 1339억 원의 판매액을 기록하며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양적 팽창은 라이선스 뮤지컬이나, 여러 해에 걸쳐 공연되면서 이미 검증된 뮤지컬들이 이끈 성장이라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특히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증감률을 살펴보면 공연 건수와 공연 회차, 티켓 판매율은 각각 10.2%, 8.5%, 7.1% 증가했지만 티켓 예매 건수는 불과 3.4%, 유료 티켓 예매 비율은 단 0.9%포인트에 불과하다. 공연 건수와 회차는 늘었지만, 실제 티켓 예매 건수는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은 현재의 성장이 작품의 다양성보다는 소수 흥행작의 ‘반복 관람’과 ‘티켓 가격 상승’에 기인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잘되는 공연에 관객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시장 논리지만, 그 정도가 특정 작품, 특히 해외에서 이미 검증된 라이선스 뮤지컬에 과도하게 집중된다는 점은 한국 뮤지컬 생태계의 허리를 약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최근 대극장 무대를 점령한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러한 쏠림 현상은 더욱 명확해진다. 디즈니의 세계적인 히트작을 기반으로 한 ‘알라딘’과 수많은 시즌을 거듭하며 막강한 팬덤을 구축한 ‘지킬 앤 하이드’가 대표적이다. 이 두 작품은 6개월 이상의 장기 공연을 통해 꾸준히 관객을 끌어모으며 1분기 뮤지컬 티켓 판매액 상위 10개 공연 상위 1, 2위를 차지했다.
반면 이 순위에서 올해 초연된 창작뮤지컬은 ‘스윙데이즈’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다. ‘알라딘’ 역시 국내 초연이지만, 이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흥행이 보증된 콘텐츠라는 점에서 온전한 의미의 ‘신작’으로 보기 어렵다. 결국 대극장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안전한 선택’이 반복될수록, 창작뮤지컬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의미 있는 도전을 이어가는 창작뮤지컬의 존재는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스윙데이즈’는 10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대형 창작뮤지컬로, 유일한 박사의 독립운동을 모티브로 한 탄탄한 서사와 제이슨 하울랜드의 음악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재치 있는 대사와 속도감 있는 전개, 스윙 재즈의 강렬하고 웅장한 음악을 통해 관객들에게 신선한 경험을 선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라이선스 뮤지컬의 화려함에 익숙해진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면서도, 우리 고유의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창작뮤지컬의 진화 방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하지만 ‘스윙데이즈’와 같은 개별 작품의 성공만으로는 전체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창작뮤지컬이 꾸준히 제작되고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업계에선 중소극장 창작뮤지컬의 성공 모델을 대극장으로 확산시키는 전략을 고민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한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대학로를 중심으로 하는 중소극장에서는 이미 신선하고 실험적인 창작뮤지컬이 꾸준히 관객과 만나며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면서 “이들 작품 중 잠재력 있는 작품을 발굴하여 대극장 규모에 맞게 발전시키는 ‘스케일업’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흥행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작품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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