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이상 연체된 개인 채무자 5000만원 이하 채권 매입
연체채권 16조4000억원 규모…소요 재원 절반은 추경
"부실채권 해결책 과거에도 반복…기본 구조는 동일"
"선심성 정책으로 보여…도덕적 해이 심화시킬 수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금융시장 전반이 거센 파고에 넘실거리고 있다. 부동산 시장 반등 조짐과 맞물려 가계부채가 다시 급증하면서 금융당국은 뒤늦게 대출 규제에 나섰지만, 한편으로는 금리 인하와 경기 부양이라는 또 다른 정책 기조로 충돌을 야기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가계부채는 줄이고, 금리는 내려라"는 엇박자 신호에 혼란이 커지고 있다. 이에 더해 '빚 탕감'과 '배드뱅크' 설치 등 더없이 민감한 정책들이 정치적 명분 아래 추진되며, 금융의 안정성과 형평성 논란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위·금감원 개편, 제4인터넷은행 신설 등 시스템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까지 예고되면서 우리 금융체계는 17년 만에 가장 큰 전환점을 맞고 있다.
데일리안은 '긴급 금융시장 점검' 기획을 통해 현 정부의 금융정책이 시장에 미치는 파장과 그 실효성을 집중 점검한다. 금융 규제와 완화, 소비자 보호와 도덕적 해이, 혁신과 무분별한 확장 사이에서 정부와 시장이 나아가야 할 길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이재명 정부가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부실채권 정리를 위한 '배드뱅크'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책 취지에는 공감이 따르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여전히 제기된다.
과거 정부들도 유사한 형태의 채무조정 정책을 시행했지만 성과는 제한적이었던 만큼, '선심성 공약의 재탕'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재명 정부, 배드뱅크 설립 추진… 7년 이상 연체 채권 집중 정리
20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3분기 중 7년 이상 연체된 개인 채무자의 5000만원 이하 무담보채권을 일괄 매입하는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시행할 계획이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전액 탕감하고,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엔 원금의 최대 80%를 감면하거나 10년에 걸쳐 분할 상환을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번 조치를 통해 약 113만 명이 보유한 16조4000억원 규모의 채무가 정리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업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출자하는 배드뱅크를 통해 진행되며, 소요 재원 약 8000억원 중 절반은 추경을 통해, 나머지는 금융권의 분담으로 충당될 예정이다.
새출발기금도 확대돼 총 채무 1억원 이하 소상공인의 경우 최대 90% 원금 감면이 적용된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제시했던 배드뱅크 구상의 구체적 이행으로 해석된다. 당시 이 대통령은 "단순한 채무조정을 넘어 실질적인 탕감이 필요하다"며 배드뱅크 도입을 약속한 바 있다.
배드뱅크는 민간 금융사가 회수하지 못한 부실채권을 매입해 정리하는 기관으로, 금융권 리스크를 해소하고 채무자 재기를 돕는 역할을 한다. 이재명 정부 역시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자영업자 대출 부실 우려를 배경으로 제도화에 나서는 모습이다.
과거 정책과 유사… 실효성·도덕적 해이 우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과거 정부 역시 유사한 방식의 채무조정 기구를 운영했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시킨 국민행복기금, 2018년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재단, 2022년 문재인 정부의 새출발기금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제도는 모두 부실채권 매입 후 감면이나 분할상환을 통해 재기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배드뱅크와 유사하다. 그러나 회수 실적 위주 정책, 대상 선정 기준의 불명확성 등의 문제로 실질 효과는 제한적이었다는 평가다.
또한 무분별한 감면 혜택이 성실상환자와의 형평성 논란,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단순한 '선심성 탕감'으로 그친다면 제도 신뢰가 떨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구상은 과거 정책과 실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 구체적인 기한이나 감면 기준은 다를 수 있겠지만, 기본 구조는 유사해 보인다'며 "아무래도 은행, 국민의 돈으로 정부 정책을 하는 것이니 선심성 정책으로 비춰지는 건 사실이다. 반복적으로 채무불이행을 겪는 이들의 빚까지 탕감해주면 도덕적 해이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근본적으로는 반복적인 부실채무를 양산하는 구조를 방치한 채 감면만 반복할 경우, 정책의 정당성과 지속 가능성 모두 훼손될 수 있다"며 "일정 요건을 갖춘 채무자에게는 생계비 지원이나 자녀 교육비 보장 등 간접적인 방식의 지원이 대출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채무조정 제도들은 신용 회복과 재기 지원 명분에도 실질적 효과가 미흡했다"며 "이번 배드뱅크가 실효성을 갖추려면 부채 고통 계층에 혜택을 정밀하게 집중시키고, 신용 회복 이후 자립까지 연계하는 통합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상환 유인을 포함한 감면 구조, 채무자 대상의 맞춤형 상담·재정교육, 고의적·비고의적 채무자의 정교한 구분 기준과 신속한 심사 체계 등 보완 장치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긴급 금융시장 점검⑤] 또 다른 '제2금융권' 만들기?…인터넷은행 신설도 의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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