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발 전력 대전...K-원전은 도태 '기로'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5.05.31 07:00  수정 2025.05.31 10:59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급증...글로벌 빅테크 ‘SMR’ 투자

트럼프 ‘원전 4배 확대 행정명령’...한미 공급망 협력 기대감

‘세계 최고 기술력’ K원전산업, 정책 혼선에 방향성 오리무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백악관 집무실에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가속화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전 세계가 다시 원자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원전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원전 르네상스’ 흐름 속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을 갖추고도 정책 혼선과 수출 구조의 제약으로 도태될 위기에 놓여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에너지 패권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50년까지 원전 발전용량을 현재의 4배로 확대하겠다는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시장의 기대를 한층 높였다.


미국이 추가로 짓겠다고 공언한 300기의 원전은 전 세계 수주 판도에 지각변동을 예고한다. 벨기에와 독일, 스웨덴 등도 잇달아 탈원전 정책을 철회하거나 원전 정책을 전환하며 글로벌 원전 수요가 되살아나고 있다.


원전 수요 확대의 배경에는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급증이 자리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세계원자력협회(WNA)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원전 발전 용량이 최대 2.5배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도 오는 2028년까지 자국 전력 생산량의 최대 12%가 데이터센터에서 소비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오픈AI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 역시 안정적인 전력 공급망 확보를 위해 원자력 발전 투자에 나섰다. 특히 기업들은 기존 대형 원전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안전성과 효율성이 높아 ‘미니 원전’으로 불리는 소형모듈원전(SMR)에 주목하고 있다.


원전은 국가 간 협력이 필수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한국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출을 계기로 원전 기술력을 세계에 입증했다. 미국과 유럽의 안전 인증을 모두 통과한 APR1400 원전 모델은 대표적인 수출 사례로 꼽힌다.


블룸버그 통신도 최근 “원전 수출에서는 비교적 신흥국인 한국이 수익성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서 “전 세계에서 계획·제안된 원전 사업 400여건을 분석한 결과, 한국이 이 중 43%를 수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평가했다. 이를 통해 향후 10년간 한국이 최대 원전 기술 수출국 중 하나로 발돋움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다만 국내 혼란과 정치적 변화를 변수로 꼽았다.


실제 국내 원전 산업은 정책 혼선과 내부 갈등으로 인해 제대로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의 수출 주도권 다툼은 UAE 바라카 원전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1조원대 추가 공사비 부담 문제로 심화됐고 최근에는 국제 분쟁으로까지 번진 상태다.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 3월 25일(체코 현지 시각)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 두산스코다파워를 방문해 손승우 두산에너빌리티 파워서비스BG장(오른쪽 세 번째)과 증기터빈을 살펴보고 있다.ⓒ두산에너빌리티

국내 정치 상황도 원전 산업의 미래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이전 정부의 탈원전 기조를 윤석열 정부가 뒤집으며 마련한 ‘2050 중장기 원전 로드맵’은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으로 인해 사실상 추진력을 잃었다. 더불어민주당의 반발로 신규 대형 원전 건설 계획도 3기에서 2기로 축소된 가운데 로드맵 자체가 폐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선 국면에서도 원전 정책은 주요 후보 간 입장 차이가 뚜렷하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대형 원전과 SMR 조기 상용화를 통해 원전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기후에너지부 신설과 재생에너지 중심의 탈탄소 산업구조 전환을 약속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업계는 미국과의 공급망 협력을 통한 돌파구 마련에 기대를 걸고 있다. 미국이 수십 년간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면서 자국 내 공급망이 붕괴돼 한국 등 해외 기업과의 기술 협력을 늘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뉴스케일파워·테라파워·엑스에너지 등 미국 3대 SMR 기업과 협력 관계를 구축했고 국내 유일 SMR 주기기 파운드리로서 기술 공급 확대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문경원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행정명령은 구체적 숫자보다는 ‘원전에 진심’이라는 의지 확인 측면에서 중요하다”면서 “현실적인 제약으로 SMR 쪽으로 무게가 옮겨질 가능성도 높지만, 대형 원전과 SMR 어느 방향으로 전개되든 한국의 원전 밸류체인 수혜 폭은 기대보다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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