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극심해진 어족자원 고갈
명태 이어 오징어도 흔적 감춰
어업 방식·정부 제도 둘 다 ‘구멍’
더 늦기 전 과감한 개혁 필요한 때
“오징어가 다 커서 내려와야 하는 데 위에서 싹쓸이하니 내려올 게 없지. 2박3일 출항해서 500마리쯤 잡았는데, 기름값이랑 인건비, 보험료 빼면 적자라니까. 기자 양반도 못 믿겠지만 진짜 적자야. 현실이 그래.”
50년 전 이길운(70) 씨에게 자원의 보고였던 바다는 이제 없다. 예전에는 오징어만 잡아도 1년 먹고사는 게 해결됐다. 지금은 아니다. 오징어는 이미 적자 어종이다. 이번 출항에도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이 씨 일행이 20일 출항해 2박3일 배에서 숙식하며 잡은 오징어는 500마리 정도다. 22일 기준 오징어 1마리 경매가는 5000원 남짓이다. 이 씨는 이번 2박 3일 출항에서 인건비와 기름값, 어구비 등으로 400만원 가량을 썼다. 그런데 잡아들인 오징어는 250만원에 그친다. 단순 계산으로 150만원을 손해봤다. 갈수록 이런 날이 잦아진다. 만선의 꿈은 ‘신기루’로 끝난다. 현재 바다 상황이 그렇다.
이 씨는 앞으로 오징어 어획량이 좋아질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그럴 리 없다. 만에 하나 나아지더라도 아주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몇 년 전부터 오징어 대신 홍게와 대기 잡이도 시작했는데 신통찮은 건 마찬가지다. 배도 한 척 팔았다. 그런데도 이 씨의 눈에 희망은 안 보인다.
굳이 이 씨 사례가 아니더라도 바닷속 어족자원 고갈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명태가 사라진 지 10여 년 만에 오징어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연근해 어업 총생산량은 84만1000t이다. 전년 생산량 95만1000t 대비 11.6% 줄었다. 최근 5년 평균 생산량 95만5000t과 비교해도 9.1% 감소했다.
구체적으로 전년대비 오징어와 갈치는 각각 1만3000t, 4만4000t씩 생산해 전년대비 42.1%, 26.6%씩 줄었다. 꽃게는 2만t을 잡는 데 그쳐 23.3% 감소했다. 멸치도 같은 기간 12만t을 잡으며 전년대비 18.8% 쪼그라들었다.
치어까지 씨 말리는 ‘자망 어업’ 언제까지?
바닷속 자원 감소 원인은 다양하다. 기후 변화부터 해양 오염, 불법 어업, 남획 등 고쳐야 할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정부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도 이유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후 변화 대응이나 해양 오염 문제는 뒤로하더라도 불법 어로행위나 남획 문제는 즉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해양경찰청에서 무허가·무면허 어업이나 조업 구역 위반, 불법 어구 사용 등 2018년부터 2023년까지 불법 어업 행위로 검거한 숫자만 2만8949건에 이른다. 해마다 5000건에 달하는 불법 어업 행위가 반복된다는 의미다.
어업 방식도 살펴봐야 한다. 현재 국내 연안 어업을 대표하는 조업 방식은 ‘자망(刺網)’이다. 그물을 쳐 수산물을 잡는 방법이다. 자망은 물고기 종류나 크기 등을 막론하고 잡아 어린 개체에 특히 치명적이다.
나아가 그물을 이중, 삼중으로 치는 불법행위는 어족자원을 ‘학살’하는 행위라 표현해도 과하지 않다. 자망 어업을 하는 어민 스스로도 “자망 어업을 그대로 두고 어족자원 고갈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말할 정도다.
총허용어획량(TAC) 제도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참고로 정부는 특정 어종에 대해 연간 잡을 수 있는 어획량을 설정하는 TAC 제도를 2028년까지 모든 어선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어민들은 TAC 제도 효과에 의문을 던진다. 필요한 어종에 대해 적절한 규제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고 꼬집는다. 그러다 보니 TAC 소진율이 60%에도 못 미친다고 지적한다.
실제 한국수산자원공단에 따르면 2021~2022년, 2022~2023년 TAC 전체 소진율은 각각 71.12%, 48.5%에 그쳤다. 2023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는 약 절반(50.9%)만 소모했다. 지난해부터 올해 3월까지도 54.1%에 머물렀다. 실제 허가량보다 잡는 양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반대로 TAC 허가량보다 많은 물고기를 잡아 불법 거래하는 행위도 있다. 경매를 통하지 않고 어민들이 상인들과 직거래하는 방식으로 TAC 규제 법망을 피한다.
‘팔고 사기’ 반복…감척 사업, 손질 급선무
해양수산부가 지속가능한 어업의 중요 수단으로 생각하는 ‘감척(減隻, 배의 수를 줄임)’ 사업도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현재 감척 보상 기준은 어선·어구 잔존가액에 어로행위로 거둔 3년 치 평균 수익을 더한다. 여기에 어선원 생활 안정 자금 등을 포함한다.
문제는 감척 대상 어선 현실과 보상 기준이 맞지 않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정부(해수부)가 줄이고 싶은 배와 어민들이 실제 팔려고 하는 배가 일치하지 않는다. 해수부는 감척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물고기를 많이 잡는 배를 줄이려 한다. 그런데 배를 내놓는 어민은 물고기를 못 잡는 어민들이다. 물고기를 잘 잡는 배라면 굳이 팔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보상 방법에서부터 해수부와 어민 간 생각 차가 크다. 해수부는 3년간 영업 실적을 기반으로 보상하는 데, 물고기를 못 잡아서 내놓는 배라면 3년 영업 실적이 좋을 리 만무하다. 어민들이 어업 실적이 아니라 어선 가격을 기준으로 보상해 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배를 감척한 어민이 다른 배를 사서 어로행위에 다시 뛰어드는 문제도 있다. 현재 규정으로는 감척한 지 3년이 지나지 않으면 같은 업종에 재진입할 수 없다. 현실은 친인척 명의로 배를 산다거나, 다른 업종으로 등록해 얼마든지 어업을 계속할 수 있다.
김성호 경북 포항시 구룡포수협 조합장은 “감척 효과를 제대로 거두기 위해서는 한꺼번에 과감히 줄일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찔끔하는 감척으로는 문제 해법이 못 된다”며 “더불어 현재 감축 규정과 보상 기준을 현실화하지 않으면 보상비(폐업 지원금)를 노리고 배를 사고파는 행위가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명태 따라 사라진 오징어, 다음엔 누구 [씨 마른 바다②]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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