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전략'으로 뭉쳤는데, 한국은 여전히 '기술만'
'기업 기술만 좋으면 된다'는 믿음, 여전히 유효할까
'삼성'으로 대표됐지만, 사실상 외면당한 것은 한국
아시아 최대 IT 박람회로 급부상한 '컴퓨텍스' 전시회가 23일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올해 전시회를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공통점은 주인공이 AI 생태계를 주도하는 'GPU 제왕'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최고경영자)였다는 점, 차이점은 주인공이 깊숙한 곳에 자신만의 요새를 짓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주인공의 글로벌 기자회견을 기다렸다. 공식 기자회견에 앞서 현지 언론들과 스탠딩 인터뷰를 가진 젠슨 황은, 대만 미디어로부터 "대만, 미국, 중국 세 시장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CEO"라는 평을 받았다. 다양한 질문 세례에 대한 젠슨 황의 대답은, 공고한 '팀 타이완'.
"대만이 변화의 중심에 서야 합니다."
"엔비디아 파트너사들이 성공하길 바랍니다."
한국에 대한 언급은 전무했고, 그가 언급한 엔비디아 파트너사에도 한국 기업들은 사실상 거의 포함돼있지 않다는 사실을 전시회장을 돌며 깨달았다. 공식 기자회견장에서도 막바지에 겨우 질문 기회를 얻은 한 한국 기자의 삼성전자 기술 관련 질문에도 젠슨 황은 의도적이란 인상을 줄 만큼 답을 회피했다.
사실 지난해와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고 보긴 어렵다. 이제까지 의례적으로 미디어의 다양한 질문에 여느 기업가와 마찬가지로 '열린 자세'를 취해왔을 뿐이다. 하지만 올해 그가 던진 메시지는 명확했다. 전략적이고도 철저히 계산된 '파트너 생태계'를 외쳤고, 자사의 공급망에서 '거리를 두겠다'는 시그널을 보냈다.
반면 'TSMC, 폭스콘, 미디어텍, 에이수스, MSI' 등 대만 현지 기업들의 이름은 거의 연호하듯 언급했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를 지켜보고 있자니 한국인으로서 소외감이 들 지경이었다. 아니나다를까. 해당 업체들은 '엔비디아 파트너'라는 마패(馬牌)를 일제히 전시 부스에 내걸었다.
물론 대만이 AI 생태계의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어서도 있겠으나, 과연 지정학적 이유가 배제됐다고 볼 수 있겠는가. 심지어 젠슨 황은 숨기지 않았다. AI 인프라(팀 타이완)는 과학 기술을 넘어 국가 안보 전략이고, 그 전략의 중심이 대만이라고 그는 '무려' 직접 인정했다. 국가 차원의 동맹과 진영의 대결이라고 선언한 셈이다.
단순히 삼성전자의 HBM이 엔비디아의 퀄테스트(품질검증)를 언제 통과하느냐와 같은 문제를 벗어났다. 이번 젠슨 황 입 속의 '삼성' 부재는 사실상 한국 산업 전체가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점차 외면 받고 있음을 의미하는 바로 읽혔다. 젠슨 황은 "사랑해 SK하이닉스!"를 외쳤지만, 냉정히 보면 SK하이닉스 또한 엔비디아와 대만을 중심으로 짜여진 'AI 인프라' 서사에서는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다.
이번 컴퓨텍스에서 '삼성'으로 대표되는 한국은 없었다. 각개전투를 벌이는 일부 한국 기업들은 존재했으나 그들을 모아줄 전략은 부재했다. 반면 대만은 기술을 넘어 '서사'를 써가고 있었다. 생존과 연대를 강조하며, 국가와 산업이 하나의 전략으로 움직였다. "기술만 좋으면 선택받는다"는 믿음도 국가 전략이 뒷받침될 때에야 비로소 통하는 법이다. 전략 없는 기술이 얼마나 외로울 수 있는지를 실감한 자리였다.
이제는 산업과 정부, 외교가 맞물려야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는 시대다. 대만 총통이 컴퓨텍스를 찾은 것도 같은 맥락 아닐까. 기업을 중심에 두고, 국가가 전략을 짜며 산업 전체가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한국도 더 늦기 전에 민관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기술을 넘어 생태계를 설계하는 '전략의 시간'이 온 게 아닐까.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를 포괄하는 국가-산업 차원의 '팀 코리아'가 일어서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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